신승철
단국대학교 치과대학 명예교수
짜증나는 뉴스들이 매일 들려와 정말 짜증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같았는데, 가끔은 의외로 의협심을 발휘하여 귀중한 생명도 구하고 사회에 기쁨을 전해주어서 흐뭇할 때도 있다. 운전 중 돌연적 심신 마비나 발작으로 운전대에 쓰러져 고속도로 중앙분리대를 긁으며 굴러가는 자동차를 알아보고 얼른 자신의 차로 목숨 걸고 앞을 가로막아 정차시킨 일이나, 불심검문하던 경찰을 매단 채 도주하는 차를 보고, 반대 차선의 차가 도주 차 앞을 들이받아 세운 일도 있단다. 어느 대기업에서는 오래 전부터 해마다 그러한 의인을 발견하면 큰 상금과 함께 사회적인 모범시민으로 표창을 해왔다고 하는데, 그 재벌 기업이 바로 치과계와 관련 깊은 치약 제조로부터 창립되었던 기업이란다.
해방 후 구씨 성을 가진 집안의 젊은 청년이 미국에 유학 가서 콜게이트 회사에서 연수하며 이닦는 재료 제조법을 전수 받아 왔다. 그리고는 신제품 이닦는 재료의 명칭을 무엇으로 붙일까 고민하였다. 미국에서는 Dentifrice 또는 Toothpaste 라고 하고, 쉽게는 덴탈크림이라고도 한다. 당시 비슷한 제품을 막 생산하기 시작한 일본 라이온 회사에서는, 치아를 연마하는 재료라는 뜻으로 ‘치마제‘라고 이름 지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해방 후 미군들이 잘 듣는 양약을 갖고 와서 소개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소염제인 설파 파다이아진이었다. 당시 우리 국민들은 약에 대한 내성이 거의 없었기에 이 약은 먹어도 병이 낫고 심지어는 상처에 바르기도 하고 만병통치약으로 통했고 역시 미제 약이 최고라는 입소문으로 약 전성시대였다. 그 청년 사업가는 생산한 세치제 명칭을 치아를 튼튼하게 하는 약이라는 개념으로 ’치약’이라 하였다. 이왕이면 깨끗한 치아로 행복한 생활을 하자는 뜻에서 행운을 뜻하는 영어 Lucky를 따서 락희치약으로 제품을 팔았다. 이름 탓인지 치약이 잘 팔려서 돈도 많이 벌게 되었다. 그 후 이를 따라서 약이란 말을 쓴 제품들, 구두약, 광약, 건전지약 등 약사법과는 관계없이, 아무거나 약이라 명명하였고, 약발 받는다는 말도 생겨났다. 그 락희 회사는 후일 금성이라는 전자 회사를 인수하여 럭키 금성 회사로 한동안 불리다가 후일 국제화 바람을 타고 럭희와 금성의 앞 이니셜 영어 한자씩만 따서 현재의 국내 5대 재벌회사가 되었다. 학술적으로 치약은 분명 약이 아니고 의약부외품이다. 하기야 간혹 최근에는 특별한 약제를 넣어 약효를 인정받은 후 약으로 분류된 치약이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치약은 약이 아니고 의약부외품이다. 세치제가 맞는 표현이나 이미 구씨 청년이 오래 전에 명명하여 전 국민에게 사용하게 한지 70년째 이르는데 지금 와서 아무리 학계에서 떠들어도 그 명칭을 바꾸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런데 이 기업에도 60여 년 전 과거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당시 막 잘나가려던 참인데 이를 보고 부산에 또 하나의 깜도 안 될 것 같은 경쟁 벤처 치약 회사가 설립되었다. 동산불소치약이라는 것인데, 충치예방용 불소를 함유시킨 최신품이었다. 깜도 안 되는 것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이를 처리하기 위해 작전을 썼다는 후문도 있다. 회사 자금을 이용하여 시중에 있는 동산 불소치약을 계속 많이 사들여 창고에 쌓아두는 비밀 작전에 그만 동산치약은 잘 팔리니까 빚까지 내어 공장을 최신식으로 크게 확장하였는데, 몇 달 후에 락희 회사에선 자신의 치약 가격을 거의 공짜에 가깝도록 사은 대잔치를 하며 헐값으로 내렸단다.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가격 경쟁에서 버티지 못한 동산불소치약은 망하게 되는데, 그 거대한 공장을 살 사람은 락희 밖에 없다. 최신 공장을 헐값에 인수하는 행운을 잡게 된 락희는 치약으로 시작하여 전자, 그 후 화학제품 등 중,경공업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고, 집안 4대에 걸쳐 성장을 지속한 후 오늘날 굴지의 대 재벌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근래에 다른 재벌가에선 욕먹을 짓을 많이한다며 비난 받는 요즈음, 사회 기여도 많이 하고, 대학에 연구비도 많이 낸다. 향후 치약 개발엔 치과의사를 정규직 연구원으로 모시겠다고 하며, 의인에 대해서 아낌없이 후원 격려하는 치과 관련기업의 면모를 보니 역시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아무쪼록 최근 작고하신 이 재벌가 회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http://www.chihak.co.kr/news/1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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