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가 안락사 밖에 방법이 없다는 말을 빙빙 돌려
죽음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짐 의미한다는 사실이 야속
김 병 준
서울네이처치과 원장
아내는 부모님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은 후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아내가 결혼 전에 키우던 강아지 주핀을 안락사 시켜야 할 것 같다는 수의사의 소견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16년 전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갓 태어난 암컷 요크셔테리어 한 마리를 입양해서 키웠다. 대부분의 강아지가 그렇듯이, 주핀도 애교가 무척 많아 고작 한 가족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강아지 키우는 것을 반대하시던 부모님도 얼마 못가서 주핀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뒤로 쭉 주핀은 가족의 재간둥이 막내딸 역할을 잘 해왔다. 그러니까, 필자의 아내는 주핀의 언니이고 필자의 처남, 장인, 장모는 주핀의 오빠, 아빠,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주핀은 점점 나이가 들어 1~2년 전부터는 부쩍 힘이 빠진 모습을 보였고, 올 초와 작년에는 수술도 몇 번 받았다. 올해 초에 자궁에 염증이 생겨 농으로 가득 찬 자궁을 적출하는 수술을 집도했던 수의사는 더 이상의 그 어떤 수술도 주핀에게 이제는 무리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간이 약해서 항생제 등의 약을 쓰는 것도 무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강아지에 관심이 전혀 없던 필자는 강아지의 평균 수명이 15년 쯤 되며, 20년을 사는 강아지는 극히 드물다는 사실도 아내를 만나고서야 알았다. 말하자면 16살이었던 주핀은 노년의 강아지인 셈이었다.
필자가 주핀을 만난 것은 3년이 좀 넘었는데, 주핀은 신기하게도 첫날부터 필자에게 전혀 적대감을 보이지 않았다. 강아지가 낯선 사람을 보면 당연히 짖기 마련인데 주핀은 첫날부터 오히려 드러누워 배를 보여주며 필자에게 애교를 부렸다. 필자가 곧 언니의 남편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마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강아지는 눈치가 빠른 동물이라 본능적으로 그런 것을 안다고 했다. 아내가 필자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강아지는 처가에 두고 오기로 결정했다. 만약 데려온다면 우리 부부가 각자 일터에 있는 낮 시간에는 주핀이 계속 혼자 집에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주핀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필자도 강아지와 함께 사는 것은 썩 내키지 않았는데, 무엇보다도 똥오줌 치우는 것이 자신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혼한 이후에도 우리는 별일이 없으면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처가에 갔기 때문에 자주 주핀과 만났지만, 주핀은 아무래도 언니(필자의 아내)보다는 자신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주는 아빠(필자의 장인)를 더 따르게 되었다.
그런데 주핀이 1주일쯤 전부터 뒷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앞다리 만으로 하체를 질질 끌고 겨우겨우 힘겹게 움직이고 있었다. 동물병원에서는 주핀이 나이가 많고 간이 안좋아서 검사도 어렵고 수술은 더더욱 어려울 뿐 아니라 약처방도 어렵다고 했다. 필자가 보기에 가장 걱정되는 것은 배설이었다. 소변이나 대변을 볼 때 언제나처럼 다리를 들거나 엉덩이를 들어야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걱정이 되어 아내의 눈치를 살폈는데, 아내와 처남은 강아지 휠체어를 알아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얼마 못가 주핀은 통증이 심해졌는지 하루종일 울부짖었고, 결국 다음날 다시 동물병원에 데려갔을 때, 수의사는 안락사 밖에 방법이 없다는 말을 “안락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약 5분에 걸쳐 빙빙 돌려 말했다.
주핀과 함께 보냈던 16년의 시간이 무색하게도 안락사는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안락사를 위해 두 가지의 약물을 사용하는데, 첫번째 약물 투입으로 강아지를 잠재운 후 두번째 약물로 심장을 순식간에 멈추게 하여 고통없이 보내준다고 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날 온 집안이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이 새삼 슬펐고, 죽음은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헤어짐을 의미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야속했다. 그 날은 주핀의 16번째 생일을 딱 1주일 남겨둔 날이었다.
유난히도 흐린 날 어둑어둑해질 무렵 필자는 처남과 함께 주핀의 주검을 안고 차로 두어시간 거리에 있는 화장터에 도착했다.
필자는 강아지 화장터가 있는지도 처음 알았고, 강아지를 임의로 땅에 파묻는 것이 불법인지도 처음 알았다. 우리보다 먼저 강아지를 화장시킨 것으로 보이는 두 모녀가 훌쩍거리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주핀을 잠깐동안 쓰다듬어 주고, 뜬 눈을 감겨주었다. 무척이나 차가운 주핀의 몸을 만지는 순간 필자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안녕 주핀, 잘가라. 이제 좋은 곳에서 편히 쉬렴. 그동안 내가 갈 때마다 재롱 떨어주고 즐겁게 해줘서 고맙다.” 화장은 이삼십분쯤 걸렸고, 곧 주핀은 하얀 가루가 되어 작은 항아리에 담겨져 나왔다. 정말이지 고작 한주먹도 되지 않는 양이었다. 주핀의 뼈가루는 처남이 가지고 가서 주핀이 자주가던 산에 뿌려주었다고 했다.
아내는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아이를 돌보느라 주핀에게 신경을 잘 못써준 것을 무척이나 미안해 했다. 공교롭게도 주핀이 죽은 날은 새로 잉태된 둘째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은 날이었다. 한 생명이 가고 한 생명이 왔다. 아내는 앞으로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했다.
http://www.chihak.co.kr/news/1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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