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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9/02/04  치학신문
아버지와 오토바이
릴레이수필

과학적인 심오한 원리 있어 이것저것 사용해보는 재미

 

여러 종류를 사서 비교하고 테스트하며 튜닝해야 만족

 

 


 김 재 영

 

 서울·혜정치과 원장

 

 서울치대 총동창회 명예회장

 

 

 

 

 

 필자는 무슨 일이든 너무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오디오를 좋아 할 때는 오디오 마니아가 되어서 앰프와 스피커를 수십 개나 바꾸었다.
 필자가 매일 스피커 앰프를 들고 다니니까 아파트 경비원이 내 직업을 오디오 딜러로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나중에는 앰프 부품을 사다가 직접 진공관 앰프를 조립하기도 했다.
 골프는 1981년 개업한 다음해부터 치기 시작했는데, 현재도 거의 골프를 치기 위하여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골프채도 그냥 사서 쓰면 될 것을 헤드를 사서 스윙 스피드 파워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감안하여 샤프트를 구입하고 조립하여 사용한다. 골프채도 수 없이 여러 종류를 사서 비교하고 테스트를 해보며 튜닝을 한다.
 단순한 골프채 속에도 여러 가지 과학적인 심오한 원리가 있어서 골프채를 이것저것 사용해보는 재미가 있다.
 얼마 전에도 골프채를 하나 새로 구입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근력과 스피드가 떨어지니 골프채는 샤프트가 부드럽고 쉬우며 가벼운 채를 사야 한다. 그런데 요즘 여자 프로들이 샤프트가 메탈인 골프채를 쓰는 것을 보고 객기가 발동하여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메탈 샤프트 아이언을 구입했다. 메탈 샤프트는 무겁고 치기 힘들지만 카본 샤프트보다 볼의 방향성이 좋다.
 하지만 구입하여 쳐보니 무겁고 힘들어 일단 연습을 더하고 근력을 키운 뒤에 쓰려고 창고에 두면서 생전에 아버지께서 사 놓으신 뒤 한 번도 못타고 돌아가신 오토바이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일제 때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집에서는 엄한 독재자였다. 어머니도 평생 하인 취급을 당했고, 우리도 무서워했다. 필자는 평생에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한 시간도 안 되는 것 같다. 잘못하면 일방적으로 야단만 맞았고, 내가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한 적은 거의 없다.
 그래도 젊은 시절 농림부 고급 공무원을 지내고, 은퇴한 후에는 정미소를 운영하여 제법 잘사는 집안이었다. 그런데 정미소가 불이 나서 문을 닫은 뒤 아버지는 회사를 잠깐 다니다가 퇴직한 후로는 가세도 기울고, 사교성이 별로 없는 고지직한 성격이라 50세 이후로는 10여년 이상을 집에 칩거하며, 주로 술만 드셨다.
 그러다가 내가 치과 개업을 하고, 용돈을 드린 후부터는 조금씩 집 밖으로 나가고는 했는데 무엇을 하시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나는 1980년 개업 후에 바로 소형 승용차 포니를 구입하여, 대학원도 다니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야외를 많이 다녔는데 아버지는 어떻게 지내는지 몰랐다.
 하지만 십여년을 집에서 칩거하신 아버지는 외롭고 심심했는지 오토바이를 하나 구입했다. 돌아가신 후 알아보니 그 오토바이로 설악산 진해 벚꽃축제 등 전국을 다니셨던 것 같다.
 오토바이로 노인네가 전국을 다닌 것을 내가 알았으면 오토바이는 운전하기 위험하니까 차를 한 대 사 드렸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후 아버지는 형제들이 사는 미국 산호세로 가서 10여년을 지냈다. 미국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여, 어머니를 장보러 모셔가며 생색을 많이 냈다고 한다. 그러나 72세에 몇 번의 운전 미스로 사소한 사고가 나서 운전 면허증을 반납한 후에는 그나마 미국 생활의 재미를 잃어,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셨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서 잘 걷지를 못하셨다.
 서울에 와서 어머니가 밖으로 모시고 나가 산보를 시켜 간신히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또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싶었는지 어느 날 50cc 스쿠터를 하나 사오셨다. 그러나 오토바이를 버틸 다리 힘이 없어, 몇년 동안 한 번도 못 타시고 집에서 술만 드시다가 78세에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오토바이는 옆집에 사는 이모부가 가져갔다.
 살아생전에 우리 형제들은 모두 아버지에게 늘 구박을 받는 어머니 편이었고. 심지어 아버지를 미워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하니 그 시절 아버지의 역할은 엄한 가장이었고, 어릴 때 받은 일제의 교육과 6.25 한국전쟁 등의 격동 속에, 가장으로서의 역할의 무게 등을 생각하면, 50세에 은퇴하여 집에서 10여년을 칩거한 아버지의 고통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생전에 내가 좀 더 아버지를 이해하고, 좀 더 잘 모시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도 오토바이를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이번에 사용도 못할 어려운 골프채를 사서, 연습하고 체력을 키워 사용해야지 하며 창고에  보관하는 골프채를 보니 말년에 사서 한 번도 못타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오토바이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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