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진료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진료가 아니다”
“장애를 이유로 구강 건강 권리 침해 받아서도 안된다”
허 용 수
울산·한길치과의원원장·울산시치과의사회부회장
점심시간. 치과로 웬 케이크가 배달되었다. 겉에 붙은 카드를 펼쳐보니, ‘선생님, 지난 목요일 우리 서정이 치료를 잘 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라고 씌어있다. 아! 서정이 이모구나.
서정이는 장애인 복지관 진료 봉사에서 치료했던 아이다. 12살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작고 연약한 여자아이. 앙상한 팔다리가 심하게 뒤틀려있고 굽은 척추 때문에 똑바로 눕지도 서지도 못하는 중증장애인이었다. 속박을 하고 개구기를 억지로 물리니 꺽꺽대며 숨을 쉬지 못한다. 거의 모든 치아가 삭고 무너져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솔직히 치료 계획보다는 ‘어떻게 다른 병원으로 설득해서 보내나’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의사의 침묵이 불안했던지 “아이가 너무 약해 약물을 이겨내지 못할까 봐 수면 진정이 어렵다고 대학병원에서도 치료를 거절당했다”며 묻지도 않는 대답을 한다.
거 참, 대학병원에서도 치료를 포기한 환자를 이런 열악한 시설에서 내가 어떻게 치료를 한다고……. ‘어쩔 수 없이 여기로 다시 왔습니다. 선생님 밖에는 우리 서정이를 치료해 주실 분이 없네요. 죄송합니다.’ 그제서야 차트를 보니 필자가 예전에 이미 진료한 기록이 분명히 있다. 그것도 마취해서 토미까지 했으니 자신 없다고 거절할 핑계도 없다.
앞니 몇 개로 겨우 밥을 먹는다기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상악 영구 전치를 토미하기로 마음먹었다. 핸드피스를 댈 것도 없이 스푼으로 몇 번 떠내니 금세 pulp가 열렸다. 치수강 내 마취를 하고 치수 절단에 임시가봉 처치까지 채 1분도 안 걸리게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나마 전치부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치료가 끝나자 엄마는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마치 죄인처럼 필자 눈도 못 맞추곤 도망치듯 아이를 안고 진료실을 빠져나갔다. 나중에 담당 복지사 선생님께 들은 바로는, 보호자는 엄마가 아닌 이모였고 엄마는 아이를 낳을 때 이미 하늘나라로 갔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께 큰절을 올리고 싶은 심정이라며 고마워하더란다.
필자의 막내도 자폐성 발달장애 등급을 받은 장애인이기에 어렸을 때 애비도 어쩌지 못하고 소아치과 선생님께 신세를 졌다. 고맙고 미안한 장애인 부모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 후로 가톨릭 재단이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관에 치과 진료실이 개설되면서 뜻있는 몇몇 원장님들과 주 1회씩 돌아가며 진료를 해온 지가 벌써 내년이면 20년째다. 장비와 여건상 중증장애인의 경우 진료의 한계를 느끼고 스스로도 실망할 수밖에 없지만, 소외받은 환자를 진료하고 난 후의 보람은 컸다.
장애인 진료는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진료가 아니다. 장애인의 진료를 특별한 것으로 보는 인식 자체가 장애인들이 치과를 마음껏 방문할 수 없게 만드는 장벽이 될 수 있다. 서영이의 진료는 특수한 기술과 장비로 큰 병원에서 특별한 의료진이 치료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작은 관심과 배려하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
물론 장애인 치료는 비장애인을 치료할 때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면서도 수입 면에서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대개는 장애인이 치과를 무서워하기보다 오히려 치과의사가 장애인 치료를 무서워하여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장애인 복지관에 봉사하시는 원장님들의 수도 초창기에 비해 많이 줄어들어 걱정이다. 더구나 젊고 패기있는 원장님들은 한 분도 없고 모두 50, 60대 중년 원장님들이 침침한 눈을 돋보기 너머로 보면서 고군분투하고들 계신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오늘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각종 질병과 재해, 사고 등으로 나 자신이나 내 가족 그 누구라도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장애인은 장애를 이유로 차별 받아서도 안되고 장애를 이유로 구강 건강에 관한 권리를 침해 받아서도 안되는 것이다. 장애는 심각한 전염병도 아니고 장애인이 죄인은 더더구나 아니다. 보다 많은 치과의사들이 장애인 진료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으면 한다.
울산에는 장애인 복지관 외에도 태연학교, 이주노동자 진료, 구치소 진료 등 어려운 이들을 위한 진료 봉사 단체들이 많이 있다. 가장 강하고 우수한 사람이 제일 높은 단상에 오르는 올림픽 시상대와는 달리, 가장 강한 사람이 낮은 곳에서 든든한 기단이 되어 주고 최종적으로 소외되고 가난한 약자들을 떠받쳐주는 인간 탑 쌓기와 같은 구조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증장애인 진료처럼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드는 치료를 몇몇 봉사자와 협찬에만 의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공공의료의 일환으로 장애인 구강 진료 센터를 정부와 지자체가 제도적으로 설립하고 운영해야 할 것이다. 울산에서도 마침내 장애인 구강 진료 센터 건립 계획이 확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부디 영리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공공의료의 성격에 충실하도록 운영되어지길 기대해 본다.
http://www.chihak.co.kr/news/13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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