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분 다량 함유 소화 잘 돼 환자나 허약체질에 좋다
조 재 오
경희대 치전원 외래교수
살을 에는 추운 겨울저녁, 호롱불 밑에서 손을 불며 장작불 화로에서 구수한 군밤을 구워 파는 군밤장수가 나타날 즈음이면 동짓달이 가까워 오고 한해가 저물어 간다. 한잔 술에 얼큰히 올라 귀갓길을 재촉하는 가장들은 집에서 가장의 귀가를 기다릴 가솔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 따끈한 군밤 한 봉지를 사가는 정겨운 마음……. 민초들의 생활을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추석 전후로 밤나무 숲에서 탐스런 알밤을 줍는 재미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그 즐거움을 안다. 광주 조선치대에 몸담고 있을 시절 필자가 속해 있는 여러 학회를 조선치대에 유치하였었다. 어느 해 가을, 학회 후 식사할 장소를 물색 차 담양의 식영정 근처의 한식집을 찾았었는데, 주인과 이야기 중 마침 바람결에 밤나무에서 떨어진 알밤을 본 진돗개 누렁이가 행여 누군가 밤에 손을 댈세라 으르렁거리며 쏜살같이 달려와서 밤을 껍질 채 아삭아삭 먹는 것을 보고 밤맛을 즐길 줄 하는 식도락 개(?)에 놀란 기억이 난다.
밤(Castanea crenata )은 “한국밤”으로 부르며 알이 크고 질이 좋고 평균 수분 60%, 녹말 30%, 당분 5%, 단백질 4% 정도를 함유한다. 한국에서는 남부 지방에서 주로 재배하는데, 부여, 공주 등 충청남도 지역과 광양, 순창, 임실 등 전라남도 지역, 하동, 산청 등 경상남도 지역이 대표적인 재배지이다. 대한민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 밤 생산 2위 국가로 전 세계 밤 생산량의 7% 가량을 차지한다.
밤나무 품종분류는 1931년 일본인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되어 밤나무가 가장 많이 재배됐던 시기는 1941년경으로 당시 약 9천t의 밤이 생산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밤나무는 관리소홀 등으로 해마다 줄어들었는데 설상가상으로 1960년께 강원도 원주지방에서 발견된 밤나무 혹벌로 인한 피해가 막심하여 재래종 밤나무는 모두 전멸되다시피 하여, 그 이후 밤나무 품종개량이 본격화되어 혹벌에 강한 범나무 품종이 12개종이 선발되고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국내 선발종 8종과 일본종 8종 등 16종이 널리 식재되고 있다.
식물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꽃을 피운다. 물론 밤도 예외 없어 밤꽃을 피우며, 밤꽃 필 시절에 밤나무 숲에서 진동하는 밤꽃 냄새는 정액 냄새와 비슷하여 ‘밤꽃 필 때 과부 바람난다!’는 속설이 전해온다. 실제로 밤꽃과 정액에는 spermidine과spermine이라는 물질이 공통적으로 포함되어 있고, 염기성인 이 물질로 인해 독특한 냄새가 나는 것이라고 한다.
밤을 먹는 방법으로는 그냥 모든 껍질을 다 까서 먹는 것과 까서 하루 정도 물에 넣어뒀다 먹는 방법, 구워 먹는 방법(군밤), 쪄 먹는 방법(찐밤), 돌로 굽는 방법(약밤)등 다양하다. 쪄서 으깨 만드는 한과인 율란도 있다. 군밤을 상품화한 것으로는 맛밤이라는 제품이 가장 대표적으로 시판되고 있고, 요즈음은 젊은 층을 노려 몇몇 밤 생산지에서는 막걸리에 밤의 맛을 접목시킨 밤 막걸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또한 밤은 설탕이나 꿀물 꿀물에 조리기도 하고, 밤가루를 내어 죽이나 이유식을 만들기도 한다. 밤가루는 각종 과자와 빵, 떡 등의 재료로도 사용하며, 아이스크림 등의 여러 가공 식품에 쓰이기도 한다. 이외에도 밤은 한약재로도 쓰이는데, 만성 구토증과 당뇨병을 치료하고 위장과 신장을 튼튼하게 한다.
밤은 양질의 전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몸을 살찌우기에 용이하며 특히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환자나 허약체질인 사람에게 좋다.
대부분 문화권에서 식용 밤은 군밤, 삶은 밤, 제과용으로 익힌 상태에서 소비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밤을 김치 등 요리의 부재료 및 제사 의식용으로 생밤 형태로 상당량을 소비한다. 특이한 것은 전국 밤 소비량의 절반가량이 추석 때 소비된다고 한다.
지방과 집안마다 제사나 차례상을 올리는 풍습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과일이 바로 깎은 밤이다. 다른 식물의 경우 나무를 길러낸 최초의 씨앗은 사라져 버리지만 밤만은 땅속에 들어갔던 최초의 씨밤이 그 위의 나무가 커져도 절대로 썩지 않고 남아 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애초의 씨밤은 그 나무 밑에 생밤인 채로 오래오래 그냥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밤은 조상의 뿌리를 기억하자는 맥락에서 제사상에 올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이한 의미로 이름자에도 율(栗)자를 포함하여 이름을 짓곤 하는데, 과일 이름이 이름자에 포함될 정도로 밤은 우리의 정서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http://www.chihak.co.kr/news/13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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