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건 망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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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9/10/13 치학신문

시사칼럼 '건 망 증'

신 승 철

단국대학교 치과대학 명예교수

나이가 들면서 점차 ‘깜박’하는 일이 많아졌다. 누군가를 마주쳐서 상대가 갑자기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인사해 오면 가물해 진다. 그분의 체면을 생각해서 “아 그럼요”라고 말하지만 어색하다. 궁여지책으로 “혹시 전생에는 무엇-?”하고 되물으면 많은 남성들은 개였다고 말하고 여자들은 어느 곳의 공주였다 대답한다. 그러면 함께 그 옛날 추억의 은행나무와 침대 이야기도하며 기억의 단서를 찾으려고 농담을 이어가다보면 ‘아- 이사람 이제 생각이 났어’ 하는 경우도 있다. 건망증에 대한 치부를 슬쩍 넘긴 셈이다. 주위 사람들은 요사이 들어 내가 과거에 했던 약속이나 주장을 잊어버리고 딴말하는 일이 잦아졌다며 치매의 초기 증상이라 놀리기도 한다. 그러나 살다보면 ‘잊어서 모르겠다’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편리할 때도 많다.
근래에 의료기관 개설이 ‘1인 1개소’만 허용으로 법제화 되었다고 한다. 치과대학 졸업 후 처음 면허증을 받았을 때 생각으로는 당연히 한 개의 의료기관을 개설 할 것이라는 개념을 갖지만, 오랜 개원 후 부와 명예와 능력이 많아졌다고 생각되면 더 많이 더 크게 하고픈 욕망이 생기게 될 수 있는 것 같다. 초년 치과의사 때의 사회적 봉사직업이란 개념을 잠시 잊어버리고, 보다 수익을 높이고, 자신의 의술을 더 넓게 펴보고 싶은 마음에 욕심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물론 자신의 명의로 개설되지 아니하고, 정기적 부정기적으로 여러 치과진료기관에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며 자신의 독특한 전문분야를 진료하거나, 진료봉사에 기여 하는 것은 이 조항에는 해당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명의로 두 곳 이상 개설한 진료기관은 예전부터 치과계에 문제가 많았기에 이를 망각한 분들을 위해서 근래에 다시 한 번 법제화 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요즘 세상에 잦은 건망증으로 잠시 초심을 잊었더라도 빨리 정신 차리고 모든 의료인들이 면허 받을 때의 진료봉사 마음의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건망증은 필자나 일부 의료인들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있어 국민건망증 추세인 것 같다. 대통령도 한두 해 전 취임 무렵에는 입바른 소리와 정의로운 말씀을 많이 하셔서 국민의 존경을 받았었다. 그런데 불과 한두 해 만에 벌써 많은 것을 망각하시고, 내가 언제 국민들에게 그런 말을 했는가 모르시는 것 같아 못된 얘들 말로는 ‘생까신단다’ 군중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서 자신에게 반대하는 말을 하면 마주앉아 끝장토론이라도 벌이며 소통하겠다고 대통령 당선 직전에 공약하셨다. 집권 기간 동안 모든 국민에게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하시겠다며, 과거 어느 대통령, 어느 나라 국가원수의 취임 연설문 보다 가슴 울리는 명연설을 하시고는 두 해만에 다 잊어먹었다. 어느 의원이 혹시 치매에 걸리신 것이 아닌지 보좌관들은 잘 보살피라고 충고했다가 맹추종하는 분들에게 야단맞았다.
그런데 수십 명을 살해하고 30여건의 성범죄를 저지른 희대의 살인마도 조사과정에서 증거물이 나오니 20여 년 전의 사실도 잘 기억해 내었고, 심지어는 그와는 무관하다고 여겨왔던 그간 미제사건 마저 자신이 진범이라고 수사관에게 다 털어 놓았단다. 그러나 요즈음엔 불과 몇 해 전 사실을 뚜렷한 증거물로 제시했는데도 기억이 안 나고 모르겠다는 가족들도 있어서 몇 달 째 전국적으로 화제이다.
어느 세도가의 부인이 어릴 때 한 쪽 눈은 실명하고 커서는 유학 중 두개골을 다치는 불운을 겪었단다. 그 후유증으로 비록 매일 자동차를 몰고 장거리 여행은 지장 없지만, 자신을 조사하는 검사와는 눈도 못 마주치고, 대학에서 연구 논문 쓰고 강의는 가능하지만, 정신이 없고 쉬 피로해서 검사가 엄중히 묻는 말에는 뭐든 잘 모르겠다고 말한단다. 그렇게 기억력이 없으면 일반 사람들이 너무 복잡해서 엄두도 못 낼 사모펀드와 주식 돌려치기 같은 것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그 집안에서는 공적 문서를 임의로 만들고 위조하는 것도 별것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세상이니 문제가 되거나 비난받으면 필요에 따라 불리한 기억을 망각하는 것도 복잡한 인생을 요령 있게 살아가는 방편인 것 같다. 비록 한 명 때문에 오천만이 힘들어도 이를 ‘난 모르겠다’면 통하는 세상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