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해 보이는 사람에게 자신의 결점 내보이기 싫어
열정 가진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빈틈이 인간의 모습
김 동 석
춘천예치과 원장
매년 이맘때쯤이면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립니다. 최근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은 지역축제일 뿐이라고 폄하했지만 그 상업성과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 자신도 분명 욕심을 내고 있을 법한 시상식일 겁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끔 기립박수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공로상을 받는 영화계 원로들의 경우입니다. 하지만 간혹 기립박수를 받는 현역배우가 있습니다. 필자가 가장 감명 깊은 기립박수로 기억하는 것은 1993년 <여인의 향기>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알 파치노입니다. 당시 53세의 명배우가 기립박수를 받은 것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대부>, <형사 서피코>, <허수아비>, <칼리토>, <뜨거운 오후>, <스카페이스>를 통해 잊을 수 없는 열연을 펼쳤던 그가, 당연히 남우주연상을 이미 두어 번은 받아 마땅한 배우가 5전 6기만에 이룬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직도 그 장면을 인상 깊게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카리스마 있고 청산유수로 말하는 그 알 파치노가, 안경을 쓰고, 안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더듬으면서 시상 소감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감사드리고 싶은 많은 사람의 이름을 행여 놓칠까 봐 써놓았다며 천천히 그것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저는 그 명배우의 인간적인 모습에 더욱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만약 그가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청산유수의 언변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시상 소감을 말했다면 아마 사람들은 “그래, 정말 말 잘하는 잘난 배우구나”라고 생각을 하지 그의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을 겁니다. 저는 아직도 카리스마 넘치는 영화 속 알파치노를 보면 그때의, 시상식장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이 생각나서 아무리 고약한 악역을 맡아도 그를 미워할 수가 없더군요.
실수를 하고, 빈틈이 많다는 것이 꼭 인간적인 매력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똑같은 실수를 자꾸 반복한다면 오히려 매력이 없어지겠죠. 하지만 지나치게 완벽해 보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열등감과 시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상대방을 불편하게 합니다. 또한 완벽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결점을 보이기 싫어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따라서 경계를 하게 되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심리학자들은 빈틈을 보이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첫째, 자신이 우월감을 갖게 되어 그 사람과 있으면 우쭐한 마음이 들어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둘째, 빈틈을 보이는 사람에 대해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셋째, 결점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사람에게는 경계심이 없어지고 마음을 열 수 있게 됩니다. 그 사람에게는 자신의 결점을 이야기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말을 잘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실언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이야기하려고 하면 진솔하지 못하고 비인간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20세기 정치인 중 최고의 연설가로 유명한 처칠의 한 일화입니다.
어느 초선의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완벽하고 유창한 연설을 마치고 처칠에게 자신 있게 다가가서 자신의 연설이 어떠했는지 물었습니다. 연설의 대가 처칠이 해준 충고는 이랬습니다.
“다음부터는 좀 더듬거리면서 말하게.”
치과에는 간혹 사회적으로 유명인사이거나 누가 봐도 예쁘고 잘생긴 환자가 찾아옵니다. 직원들의 부러움을 받고 완벽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막상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아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치과질환의 특성상 대부분 ‘게으름’이 유발한 병이라는 생각 때문에 무척 창피해합니다. 필자는 그럴 때 그분의 인간적인 빈틈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저의 빈틈을 살짝 알려드립니다.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는 계기는 의사의 완벽함으로 환자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빈틈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허점투성이인 사람에게 있는 빈틈은 인간적인 빈틈이 아니라는 겁니다. 무능력하고 별 볼일 없게 보일 뿐입니다. 노력하고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진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빈틈이 인간적인 것입니다. 당신에게 보이는 결점이 바로 그런 빈틈이 되었으면 합니다. 스펀지는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물을 흠뻑 빨아들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빨아들일 수 있는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빈틈이 있으십니까?
http://www.chihak.co.kr/news/1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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