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 윤
덕영치과병원장
본지 명예회장
봉사는 서양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가문의 의무로 생각했던 명문가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사립 고등학교가 많은 이유도 유지들이 전답을 내고 곡식을 내어서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대학을 다니느라 유학을 하면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였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 학교를 만들려고 했으나 국가재정이 따르지 않자 사립학교를 많이 만들도록 장려하였습니다. 선비들은 어려운 살림을 하면서도 나라를 위해 투신하였습니다.매천 황현(1855 -1910)이 남긴 절명시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지나간 천년 세월을 회상하니 인간으로서 식자노릇하기가 정말 어렵구나’ 결국 자결했지만 선비가 지조를 지키며 사는 것도 참으로 쉽지가 않습니다. 서양에도 마찬가지로 시민들(귀족)의 의무(Noblesse oblige)가 있습니다. 1347년 도버해협 양쪽의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때의 일입니다. 1년 가까이 영국의 공격을 막던 프랑스의 북부도시 칼레는 원병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백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칼레시의 항복사절은 도시 전체가 불타고 모든 칼레의 시민이 도살되는 운명을 면하기 위해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였습니다. 시장 비엔은 피해는 최소로 줄이되 존엄만은 지키려고 적장들과 담판을 벌였습니다. “우리는 프랑스 왕의 명령에 따라 이곳을 명예롭게 지켰소. 온힘을 다했으나 먹을 것조차 떨어졌소. 당신들의 국왕이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우리는 굶어 죽습니다. 도시 전체를 바치니 우리 모두 무사히 떠나도록 해주시오“ 늠름한 태도에 감동받은 영국의 장군들은 왕에게 그의 말을 호의적으로 전했습니다. 사실 영국 왕은 전쟁을 하는 동안 필사의 저항하는 칼레 시에 원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완강한 태도를 보이던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항복의 조건을 내놓았습니다.“좋다. 칼레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동안 짐에 대한 어리석은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
이 도시에서 가장 명망이 높은 대표적인 시민 6인이 교수형에 사용될 밧줄을 목에 걸고, 자루 옷을 입고,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로 영국군 진영으로 가서 이 성의 열쇠를 건넨 다음 목을 매 처형을 받아야 한다.“시민들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6명이 그들을 대신해 죽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용감하게 6명이 선뜻 나섰습니다. 모두 그 도시의 핵심인물이며 절정의 삶을 누리던 부유한 귀족이었습니다. 칼레에서 가장 부자인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가장 먼저 자원했습니다. “나는 시민 여러분 덕분에 부를 쌓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했습니다. 나는 시민을 위해 기꺼이 지원하겠습니다.자 칼레의 시민들이여.. 나오라. 용기를 가지고” 그러자 시장이 나섰습니다. 상인이 나섰습니다. 그의 아들도 나섰습니다. 드디어 일곱 명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빠져도 되었지만 모두들 거부했습니다. 제비를 뽑자는 말도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생 피에르는 “내일 아침 장터에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 제의했고, 이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들의 고통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습니다.
약속된 시간에 인질들이 시청 앞 장터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던 생 피에르는 끝까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분노하고 동요하는 시민들 사이로 생 피에르의 아버지가 관을 든 하인을 앞세우고 조용히 등장했습니다. 곧이어 관 위에 있는 천을 벗기자 평화롭게 누워있는 생 피에르의 시신이 드러났습니다. 칼레시를 위해 희생하기로 자원한 여섯 명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용기를 꺾지 않기 위해 생 피에르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영국군 진지 앞에 서자 왕과 장군들은 물론 임신 중인 왕비까지 늘어서서 그 광경을 지켜봤습니다. 왕이 처형 명령을 내렸습니다. 장군들이 나서서 그들을 처형하면 국왕의 명성에 누가 된다고 구원을 간절히 청했습니다. 왕이 뜻을 굽히지 않자 왕비 필리파가 나섰습니다.
“왕이시어,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부탁을 드린 적이 없습니다. 겸허히 청하오니, 성모 마리아와 당신이 제게 잉태시킨 사랑의 이름으로 저 여섯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잠시 침묵을 지키던 왕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왕비에게 그대의 뜻대로 하라고 말했습니다.
희생을 자청한 지도층, 왕에게 간청한 장군들과 왕비, 그들의 참뜻을 받아들인 왕. 그 모두가 우리에겐 부러운 귀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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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댕 작 |
백년전쟁 때 프랑스 칼레시를 구한 영웅적 시민 6명의 기념상이다.
목에 밧줄을 메고 자루 옷을 입고 있다.
그로부터 550년이 지난 1895년 칼레시는 이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기 위해 생피에르 조각상을 제작하기로 하고 조각가 로댕에게 의뢰했습니다. 이 작품이 바로 <칼레의 시민>입니다.
1895년 6월 3일 기념상이 제막되었습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고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제(귀족들의 의무)라는 단어도 칼레의 용감한 시민에서 나왔습니다.
원래 노블레스는 닭의 벼슬을 의미하고 오블리제는 달걀의 노른자를 의미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닭의 사명이 벼슬을 자랑함에 있지 않고 알을 낳는데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사회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리는 명예(Noblesse)만큼 의무를 다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이 이야기에서 주의해야할 대목은 용감한 7명의 시민 뿐 아니라 이들을 좋게 이야기해준 영국의 장군, 또 명조각가인 로댕, 6인의 사형을 면해줄 것을 이야기한 왕비,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어준 영국의 에드워드 3세 등 여러 사람의 미담에 주의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영화도 훌륭한 주연 뿐 아니라 빛나는 조연들이 활약해야 명화가 되듯이 용감한 여섯 명의 시민과 그 주위 인물들의 역할도 귀담아 봅시다!
<언어학박사 jaeyoon3700@hanmail.net>
http://www.chihak.co.kr/news/14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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