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興 雨
이흥우치과의원 원장,哲博
대지 위로 눈이 내린다.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층층이 쌓인 눈밭을 누군가 밟고 지나 봄이 오면, 눈 속에 쌓인 낙엽을 뚫고 새싹이 움터 오리라.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변하듯 지구의 생물들은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화한다. 꽃이 피듯, 인간도 몸과 마음으로 만개한다.
장엄한 우주의 역사가 138억 년 광활한 시공에 쌓였듯, 46억 년 지구의 역사가 35억 년 생명의 역사와 700만 년 영장류의 역사로 땅 위에 겹쳐 쌓인다. 여느 동물처럼 인간도 무리를 지어 사회를 이루며, 자연에 물들고 길들은 본성이 만든 체제와 문화를 차곡차곡 쌓는다. 우린 지구에서 먹고 마시고, 후손을 만들어 대를 이으며 생명을 유지한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욕망을 품고, 신체 감각으로 내·외부 세계를 느끼고, 반응하여 감정으로 표현하며, 생각과 상상으로 앞날을 대비한다.
인간의 몸과 마음을 이해하려면 차라리 단세포 생물을 보면 된다. 단세포인 아메바는 세포질 돌기인 위족(僞足)을 내밀어 먹이로 이동한다. 세포 하나에 ‘감각과 감정과 생각’이 한데 모여 있어, 세포 전체가 곧바로 행동한다. 몸과 마음이 하나이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의 다섯 감각으로 진화한 인간은 오 감각을 통합하여 내·외부를 감지하고 세상에 반응하며 살아간다. 시청각을 잃은 헬렌 켈러는 폭풍을 냄새로 알았다니, 후각은 그녀의 모든 감각을 대신한 셈이다. 몸과 함께 있는 마음,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감각, 감정, 생각이라고 구분한 어휘 대신 ‘몸의 지각’이란 통칭하는 표현을 사용했다. 보는 것이 지각하는 것이요, 느끼는 것이 지각하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이 지각(知覺)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 전체가 바로 지각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몸과 마음을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로 보는 사고방식을 우리 옛 한글에서 찾아보면, 몸과 맘이 한 글자 ᄆᆞᆷ으로 표시된다.
몸은 지각하고, 몸과 함께 있는 마음도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눈으로 우리 몸의 기원이었던 ‘우주 속의 나’ 즉 별들의 운행을 전파망원경으로 관측하고, 마음은 별자리의 온갖 이야기들을 상상 속의 신화로 만든다.
‘우주에서 온 우리’는 내면으로 깊이 내려가, 마음에 비친 별과 나무들을 예술이란 거울을 통해 밖으로 비추어 낸다. 깊은 터널을 지나, 마치 동화 속의 엘리스가 상상의 나라에서 다른 우주를 여행하고 왔듯, 또 다른 내면의 우주 바다로 떠가는 것이다. 우주, 자연, 사회가 우리에게 들어와 인간 본성을 만들고, 그 본성의 물감으로 그린 ‘내 속의 우주’ 즉 예술, 철학과 종교, 과학적 상상이 진선미와 사랑의 가치로서 마음에 피어난다.
인간 본성에는 자연이 녹아있어 우리는 자연을 인간처럼 여길 수 있으며, 그래서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 살결이 떨려 괴로워했고, 시인 폴 발레리는 바람이 부니 살아 보아야겠다고 했다.
예술은 자연과 사회가 어우러진 인간 심연을 보여주는 반사경이다. 우주선이 우주로 나가 지구에 사는 나를 바라보게 하듯, 예술은 인간 심연으로 내려가 나를 보게 한다. 예술과 과학을 통해 우리는 세상과 나의 비밀을 엿본다.
지상에 한 점으로 머문 내 몸이 과학의 산물인 망원경을 통해 멀리 바깥 우주 어느 별까지의 물리적 거리를 측량하였듯이, 마음은 예술과 철학, 종교와 과학을 통해 ‘내 속에 잠긴 우주’의 심리적 깊이, 가치를 찾아낸다.
35억 년 생명 진화의 역사에서 몸과 마음으로 만개한 나, 내 몸은 우주로부터 왔고, 내 마음은 상상의 우주로 간다. 나는 한때 우주였고, 앞으로도 나는 우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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