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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10/28  관리계정
원로인사가 엮는 회고록-김희경
고향 떠나 다시 상경

98년 10월25~27일 금택 능등반도 兼六園에서 기념촬영

어느 날 서대문 사거리 한 점포에 충전된 밧데리를 배달하다 적십자병원 앞길에서 우연하게도 적십자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석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자네 이물건 배달하고 있나?”는 말씀에 다소 창피했지만 “놀고 있지는 못하겠고 딴 지업을 물색 중에 있다”고 말했다. 석 선생은 “돌아오는 일요일 우리 집에 놀러오게” 하시며 병원으로 향하셨다. 석 선생은 일본 ‘기다사도’ 연구실에서 근무하시다 동대문 앞에서 피부과를 개업하시다가 적십자병원 제2피부과 과장으로 재직중이었다. 형님 되시는 분은 나비박사로 유명하신 석주명씨.
누님은 일본서 수학하시고 한국에서 고전의상의 권위자이시고 단국대학교에서 의상학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석주선 고전의상 박물관을 관할하신 분이시다. 세 자매가 한국에 유명이사였다.

적십자병원 피부과 조수로

약속한 일요일 나는 석주일 선생님 집으로 방문했다. 석 선생 누님 석주선씨를 나는 고모님이라고 불렀다. 석 선생님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노총각님. 누님과 같이 살고 계셨다.
과일을 먹으면서 “자네 적십자 병원에 취직할 생각 없냐?”고 물으신다. 나는 놀란 표정으로 “제가 무슨 기술로 병원에 취직 합니까?”하고 반문했다. “자네가 응한다면 내 밑에서 일하게” “치과도 아닌 피부과라니…”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의 나의 처지가 쓰다 달다 가리는 입장이 아님으로 즉석에서 “취직만 된다면…”하고 답했다.
며칠 후 나는 흰 위생복차림으로 제2피부과 조수 생활이 시작됐다. 각 과 젊은 간호사들은 제2피부과에 인턴의사가 왔느냐고 야단이었다. 제2피부과에는 수간호사 외 2명의 간호사가 있었다.
피부과에 대하여는 일자무식한 나를 음양으로 많은 협조를 받았다.
아침 왕진 입원실로 가면 모든 것은 간호사가 진료하고 나는 목석처럼 같이 따라만 다녔다. 피부과에는 성병환자 특히 남성들에게 많은 현상이었으므로 남성 환자는 주로 내가 주사를 시행하는 것이 나의 주 임무였다.
비록 병세에 대하여는 낯설고 익숙지 못했지만 병원 생활은 나로서는 흥미 있고 좋은 직업이라 생각됐다. 조수생활이지만 항상 환자로부터는 선생님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고마웠고 감사했다.

국립 서울치대에 복학

세월은 흘러 흘러 일제 시 나와 동기생이던 박상모군이 적십자병원 치과로 취직이 되어 부임하게 됐다. 반대로 나는 정들었던 병원생활을 하직하고 복학을 해야 했다. 일 년 간에 병원직원 특히 간호사들과 작별을 고하고 복학을 하게 됐다. 복학이 되고 보니 학교 명칭도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에서 국립서울대학교 치과대학으로 변경됐다.
학장은 박명진 박사였다.
일제 시에는 나보다 한반 아래인 1944년 입학생들과 동급생이 됐다.
그 중에는 김유선, 정청규, 김영해, 배택, 이종섭 등 5명의 옛 동기생이 있다. 우연하게 우리보다 2년 선배인 김로현도 동기생이 됐다. 이 모두가 38선이 만든 귀연이었다.
나는 조선공제회라는 주로 이북 고학생들이 있는 숙소에 있었다. 운이 있었는지 적십자 병원에 취직과 동시에 조선공제회에 신세를 지게 됐다. 을지로6가 장충동에 3층 건물 일제 시 아파트였다고 생각된다. 각방이 6조, 8조 일본 다다미방이고 하층에는 커다란 식당으로 된 건물이었다.
한방에 3~4명 학생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나는 층 1호실 6조방에 세브란스의대, 서울대 공대 학생들과 3사람이 한방을 쓰게됐다.
이 공제회 운영은 확실치 않으나 이 모씨인데 과거 친일을 했다고 한다.
우리의 주식은 점심은 없이 조석으로 배급되는 밀가루로 수제비가 주식이었다. 또 과거 수용소 생활을 상기 하게 되지만 그때와 비교한다면 이것은 고급 음식에 배부른 음식이었다. 워낙 수용소 생활에서 좋은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나의 지금의 일상생활은 낙원처럼 생각됐다.
그러나 인간이란 욕망이 가득 차 있는 동물. 무럭무럭 김이 올라오는 흰 밥을 먹고 싶다는 욕망은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형님 집으로 가면 해결은 간단했지만 수용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30일간의 구걸 행각으로 충분했다.
또한 수용소에서 먹지 못하고 사는 길도 충분히 훈련했다. 남자의 오기라 할까? 그러한 행동을 하기가 싫었다.

무의촌 치과진료 봉사 자원

아침 등굣길에 교무과 앞 흑판에 여름 무의촌 순행 진료 반 학생 모집이란 공고가 나왔다. 기간은 1개월이다. 무의촌 환자도 볼 겸 흰 쌀밥도 오랜만에 대접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되어 지원하기로 했다.
A반은 충청남북도, B반은 제주도. A반 지도교수님은 보전과 김만수 교수였다. 수행 학생은 기창덕, 강홍철, 김희경으로 결정됐다. 앰블란스는 보사부에서 제공한다.
출발 날 아침 모든 준비가 끝나고 대기 중에 있는데 보사부 치무국장과 학장님이 동승했다. 우리 일행은 7명이 됐다. 처음 도착한 곳이 조치원. 미리 연락이 됐는지 도청직원과 치과의사회 간부들이 나와 있었다.
조치원에서는 유명한 식당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잠시후 식사가 나왔다. 나로선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하얀 쌀밥이었다. 매일 수제비만 먹다 오랜만에 기름이 잘잘 도는 쌀밥을 보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옆에 있는 기창덕 군이 제사밥을 받었느냐 왜 우느냐고 한다. 나는 여름철 땀이 눈에 들어갔다고 응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먹는 쌀밥이었다. 씹지 않아도 저절로 밥이 살살 녹아들어 가는 듯 했다. 특히나 높은 고관이 두 분이나 오셨으니 대접도 대단했다. 덕분에 나는 충분한 영양가 있는 음식을 대접 받아 의기 양양 마음과 몸이 하늘로 날아 갈 듯 즐거웠다.
다음 도착한 곳은 ‘온양’. 온양은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그곳은 온천이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고관께서 참석해 대접이 대단했고 숙소는 철도 호텔이었다. 이곳에서 향연은 호화판이다. 기생들이 접대했다.
우리 학생 3명은 말석에서 안주만 소비시켰다. 우리 3사람은 무의촌 순행중 치무국장님과 학장님이 1개월 내내 따라다니시면 대접은 최상급이 될 거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치무국장 원재신 국장과 치과대학 박명진 학장님은 온양에서 1박 후 귀경하셨고 김만수 교수님과 3학생은 본격적으로 무료진료 봉사를 시작했다.
행선지는 미리 정해져 있었으므로 충청도 치과의사회에서 목적지마다 우리 일행을 환대해 주셨다.

하얀 쌀밥 대접받고 눈물

우리 일행이 청주에 도착했다. 청주에서는 치전9회 졸업생 민생치과의원 원장 박창희 선배님과 경치전10회 졸업 상당치과의원 이세근 선배님이 우리 일행을 환영해 주셨다. 도착한날 밤 요정에서 접대를 받아 송구스럽고 감사한 마음 금할 길 없었다. 그날 밤은 이세근 선배님 자택에서 하룻밤 휴식을 했다.
다음 행선지를 향했으나 일기가 불순해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나 목적지로 가서 진료 봉사를 끝마치고 공주로 향했으나 장맛비는 사정없이 내리고 공주로 가는 뱡향 다리 길에서 강물이 범람해 다리 통행이 위험하다고 통과를 못하게 한다.
할 수 없이 다시 청주로 돌아와 상당치과로 갔다. 염치없지만 또 하룻밤을 폐를 끼치게 됐다. 다음 아침에는 이세근 원장님이 청주시에다 전화를 걸어 가교 통과 사항을 문의한 후 출발해 공주에 도착했다.
1개월도 어느 덧 지나가 버리고 귀교 길에 평택에서 마지막 진료봉사가 끝이 났다. 마지막날은 경치전16회 졸업 후생치과의원 김의식 선배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다음날 아침 출발 무사히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에 도착 통신란을 보니 이북에서 부모님이 38선을 넘어 서울에 안착하셨다는 통지가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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