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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11/13  치학신문
우리 동네 Y 원장- ‘그때가 가장 좋았던 걸 그땐 왜 몰랐을까?
릴레이수필

병 앞에서 인간이란 의사나 환자나 모두 똑같은 처지

 

 

 

 

 이 흥 우

 

 인천 이흥우치과의원 원장

 

 

 

 

 

 

 세월을 같이 보내는 동안만 보통 인간에겐 인연 허락우리 치과는 신도심이 아니라 구도심에 있다. 개업 초엔, 시장 입구 버스정류장 앞에 있어서, 명절엔 과일이나 제례물건 사러 오는 사람들 어깨에 치여 나무 간판이 떨어진 적도 있었다. 몇 년이 지나, 길 건너 모퉁이 하나를 돌아 조금 한적한 지금 장소로 이사를 왔다. 건물 뒤로 작은 아파트 단지가 새로 생겨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이 동네가 인천에선 가장 옛날 정취가 많이 남아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그러니 시골 장터에는 못 미쳐도 좌판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옛 재래시장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고, 마실 다니는 사람들의 정거장처럼 느티나무 정자 대신 노인정이 있다. 의자에 앉으면 항상 생선비린내가 나던 시장 아주머니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치과에 단골로 오고 있어, 몇 주 전에도 치료를 받고 막 나가던 차에 대기실에서 들어오는 동네 환자와 마주쳐 “아이구, 사돈 어찌 오셨수?”하며 서로 인사를 한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치과 바로 옆에는 작은 동네 의원이 있다. 거기 의원 Y 원장과 내가 같은 동네에서 일하게 된 지가 벌써 20, 30년 되었을까? 한 주에 한두 번 함께 점심을 먹기도 하고, 주사실로 쓰는 그의 의원 2층 한구석에 마련된 당구대에서 식사 후 자투리 시간에 당구를 치기도 했다.
 종일 의원 진료실에 갇혀있는 의사들에게 점심시간은 그나마 잠시라도 형광 불빛이 아닌 햇빛과 울타리 밖의 작은 사회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해서, 젊은 시절엔 동네 의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잡담으로 꽃을 피우기도 했다. 그런 멤버 중에서도 특히 Y 원장은 일터가 옆에 있는 만큼 사이가 돈독해서, 언젠가는 애들까지 몽땅 서해안 해수욕장으로 함께 여름휴가를 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15년 전쯤이었을까? Y 원장네 가족 모두가 7년 정도 캐나다로 들어가는 바람에, 한동안 그와 서운한 이별을 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대학을 마치면서 부부는 되돌아와 그가 진료를 다시 시작했으니, 그가 곁에 있는 반가움은 예전보다 두 배로 컸다.
 그러던 그가 작년 겨울 여러 날 보이지 않고, ‘개인적 사정으로 한 달 휴진합니다’란 종이쪽지가 의원 벽 바깥에 붙었다. 깜짝 놀라 전화를 해 봤더니 2주 전 갑자기 쓰러져 입원해있단다. 병상 옆 의자에 쪼그리고 걸터앉아 쪽잠에 빠져 있던 마나님과 그를 본 건, 며칠 후 그가 입원한 대학병원을 찾아가서였다. 평생, 불빛이 그리 밝지도 않던 의원 구석에서 일하던 30년 지기 동네 친구가 손발이 불편한 채 누워있었다. ‘아, 병 앞에서 우리 인간이란 의사나 환자나 모두 똑같은 처지이어서…’
 다급한 입원 때문인지 다인용 병실의 환경도 넉넉하지 않아, 목 잠긴 우리의 대화는 옆 침대에서 계속되는 가래 기침 소리로 점점이 끊겼다. 2 주쯤 지났을까? 조금 나아져 다른 종합병원으로 물리치료와 재활치료를 받으러 옮겨갔다는 얘기를 듣고, 마침 성탄절이 임박해 찾아가, 힘내라며 아무렇지 않은 듯 가벼운 농담과 웃음을 섞어가며 “나중에 또 올게” 하며 돌아왔다. 그러다 이따금 문득 생각이 나면 저녁 산책길에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했지만, 인간사가 그때 마음처럼 그렇게 되던가? 이젠 그를 찾아보기는커녕, 요즘은 전화도 자주 못 하고 있다.
 옆에 있을 때 그리고 세월을 같이 보내는 동안만, 보통 인간에겐 인연이 허락된다는 걸 그땐 몰랐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오직 그 시간 그 자리에서만 대부분 인연이 있다는 사실을, 건방져서 옛날엔 잘 몰랐다. 세월이 흘러도 곁에서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큰 복인 걸, 그땐 깨닫질 못했다.
 코로나 때문에, 식당에서도 몇 사람씩 떨어져 밥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그의 의원 앞을 지나오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는다.
 그때 저기, 옆 동네의 내과 원장이 근처에 있는 자택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지, 마나님과 손을 꼭 잡고 오다, 나와 마주치자 슬며시 손을 놓는다. “손잡고 다니니 좋네.” 하며 ‘그냥 잡고 가라’는 무언의 뜻으로 그의 등을 가볍게 툭 쳤다. 이따금 동네에서 마주치던 그들 부부가 옛날엔 서로 2m쯤 멀찌감치 떨어져 다니곤 하여, 사이가 별로인가 하였는데, 오늘 Y 의원 앞 거리에서 애틋하게 손잡고 걷는 걸 보니 새삼 그 모습이 반가워 나도 모르게 손이 먼저 말을 했나 보다. 아, 오늘은 Y 원장에게 전화해야겠다. 집사람과 저녁 산책을 하다 전화를 걸면, 그는 내게 조금 너스레를 떨겠지. 그러다 얘깃거리가 떨어지면, 유난히도 서로 눈초리가 다정했던 마나님에게 전화기를 건네며, 오늘도 또 내 집사람을 바꾸라며 안사람들끼리의 작은 넋두리들을 이어가게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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