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판결로 본 현실과 이상, ‘사실이라고 믿는 것’과 가치(眞實)의 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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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05/24 치학신문

법원판결로 본 현실과 이상, ‘사실이라고 믿는 것’과 가치(眞實)의 간격
인문학칼럼

이 흥 우

李興雨齒科院長, 哲博

세월호 참사 보고 시점 등을 조작해 국회 답변서를 제출한 혐의로 1·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 대법원은 작년 8월 19일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이와 관련해 함께 재판에 넘겨진 김장수,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도 무죄가 확정됐다.
‘청와대 안에서 굿판을 벌였다’, ‘성형수술을 했다’라는 괴담 등은 검찰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으나 국회에 허위답변서를 제출했다며 기소한 것이지만, 대법원은 ‘비서실에서 20~30분 단위로 유·무선 보고를 했기 때문에 대통령은 대면 보고를 받는 것 이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답변서 내용은 허위가 아니라고 했다(2022.8.20. 조선일보).
탄핵 사태 즈음 함께 점심을 먹던 후배들이 ‘형, 청와대에서 굿을 했대’ 하며 흥분하길래 “그래? 설마, 굿까지야 했겠어?”라고 반문했지만, 모두 정말 그런가 하며 선동에 휩싸였던 당시 사회 분위기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참 허망하다.
재검표에서 빳빳한 투표지 다발들과 배춧잎 모양 등 기괴한 비정상 투표지들이 대거 발견되었음에도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누가 범행을 저질렀는지 원고가 말하지 못하므로(다큐멘터리 영화, ‘당신의 한 표가 위험하다’: 제작 VON, 감독 김덕영), 민경욱 전 의원이 제기한 선거무효 소송을 작년 7월 28일 대법원은 소송 2년 3개월 만에 기각했다. 전자는 4년 반 만에 기소가 잘못되었음이 밝혀졌고, 후자는 부정선거를 의심하게 하는 증거가 있음에도 선거무효 소송이 기각되었다. 도둑 신고했더니, 누가 도둑인지 말하지 못하면 도둑질이 없는 셈이라고?
중앙선관위는 신문광고나 집회, 유튜브 등을 통해 4.15 총선 사전투표가 조작되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해 선거 참여를 방해한 혐의가 있다며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민 전 의원을 공직선거법 위반 및 공무집행방해로 22년 3월 1일 중앙지검에 고발했다(9.3.파이낸셜뉴스). 검찰은 이를 영등포경찰서로 이관했고, 경찰은 8월 25일 무혐의 처리하고, 검찰에 불송치를 결정했다(뉴데일리). 불복한 선관위는 8월 30일 검찰에 다시 이의 신청했지만(9.3.파이낸셜뉴스), 9월 7일 검찰에서도 무혐의 처분했다(9.7.조선비즈닷컴). 이에 선관위는 다시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했지만, 서울고등법원은 올 4월 4일 선관위의 재정신청을 기각했다(권순활 TV).
‘사실이라고 믿는 것’과 가치(眞善美)의 간격은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사실을 판단하는 법원의 예를 들더라도, 선거 무효소송의 경우 같은 사건에서도 대법원판결과 고등법원 판결이 보여주는 ‘사실이라고 믿는 것’과 가치(眞)와의 거리는 각기 다르다. 법원의 판결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사실이라고 믿는 것’과 가치(眞)와의 거리는 좀 떨어져 있다. 현실과 이상의 간격이다.
인간사에서 옳고 그름의 푯대는 한 지점에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 여기서는 옳고, 언제 저기서는 그르다. 불변이라고 믿고 싶지만, 그건 반쪽의 진실만 보는 것이다. 다른 반쪽의 진실, 즉 현실의 푯대는 진영의 싸움에 따라, 파도처럼 위·아래로 흔들리고 좌우로 이동한다. 현실 세계에서 정의의 푯대는 시대의 대세에 따라 움직인다. 어떤 때는 자유가 득세해서 그쪽에 푯대가 있다가, 어떤 때는 평등이 득세해서 푯대가 그쪽에 가깝게 있다. 물살과 파고에 따라 부표는 움직인다.
코페르니쿠스가 살던 시대엔 대다수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어서 지구가 돈다고 주장했다가 그는 화형까지 당했다. 이 순간에도 1년 3개월째 벌어지고 있는 비참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떠올리며, 이 부조리한 모순이 다 인간성 아니냐고 스스로 마음을 위로해보지만, 그래도 세월이 흘러 지구가 돈다는 과학적 사실이 다수의 상식으로 되었던 것처럼, 언젠가는 또 사랑도 가치가 되어, 소수의 운동이나 선동이 아닌 보통 사람의 생활이 근간이 되어, ‘사실이라고 믿는 것’과 가치(眞)의 간격이 좁혀져 있는 선진사회를 꿈꾸어 본다.
세상이 꼭 바라는 대로 가겠는가. 그러나 소망에 담겨 반사되는 세상사가 음양으로 어우러지고 또 인간은 늘 자기의 생각에 갇혀 영리함은 우직함을 넘어서지 못하지만, 그래도 긴 역사의 물살 속에서, 자연의 법칙이란 파고 속에서, ‘사실이라고 믿는 것’과 가치(眞實)는 결국 일치하겠지. 그래서 옛 성인은 깨어나 보니 삶이 한갓 꿈이라 하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