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효능감 실감할 기회는 상당 부분 타인에 대한 영향력에서”
“젊게 살려면 변화를 도모하는 직업인으로 살아야 순수해질듯”
정 유 란
모두애치과의원 원장
‘선생님. 우리 아이한테 양치를 꼭 3분씩 해야 한다고 혼내 주시면 안 될까요? 양치를 30초 만에 하고 나오는데, 도저히 제 말은 듣지를 않아요.’
가끔 어린이 환자의 보호자가 필자에게 이런 은밀한 부탁을 해 온다. 필자는 이런 부탁을 받을 때 마다, ‘내가 먼저 구강 위생 교육을 했어야 했는데 진료에만 매몰되다 보니 교육에는 전혀 신경을 못 쓰고 있었구나.’ 하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부모가 아무리 뭐라 해도 안 된다면서 내가 무슨 수로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면서 약간은 영혼 없는 목소리로 그 아이에게 거울과 익스플로러로 치태를 확인시켜주고 양치를 오래, 똑바로 할 것을 권했다. 그러면 뒤에 있는 아이의 보호자 (주로 어머니)분은 진심으로 감사한 표정으로 나에게 눈인사를 하면서 ‘들었지?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해.’라며 체어에서 내려오는 아이에게 재차 당부하는 내러티브다.
부모가 아무리 야단쳐도 안 된다는 걸 내가 무슨 수로? 사실 최근의 내 교육관(넓게는 가치관)은 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겠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타인에게 잔소리를 안 한다. ‘잔소리? 해도 어차피 거의 못 고쳐.’ 그래서 어린이 환자를 앉혀놓고 단 것 먹지 마세요, 양치 잘 하세요, 교육하는 시간에 치태의 부착력을 약화시킬 수 있도록 레진 폴리싱을 좀 더 해주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 젖어들게 된 것이다. 그러다 가끔 위의 사례의 보호자분과 같은 분들이 나에게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상기시켜 줄 때 마다, 나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곤 하는 것이다.
꽤 오랜 시간동안 치과에서 비슷한 진료를 하며 비슷한 환자를 만나고 비슷한 직원들과 일하다보니, ‘사람은 잘 변하지 않더라’는 방어적인 사고방식에 매몰되어 버렸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아, 그러니까 그들을 설득하는 시간에 내 일을 열심히 하는 편이 나아.’ 이렇게 말이다. 이 편이 사실 마음이 더 편하고 효율적인 것은 맞다. 아마도 치과 스트레스에 대한 방어기제의 한 종류일 것이다. 그래서 내 삶은 나아졌을까, 스트레스는 줄었을까.
필자가 그다지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길지 않은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사람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들수록 열정도 줄어들고 동기도 상당히 사라지는 것 같다.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 내에서 자기효능감을 실감할 기회는 의외로 타인에 대한 영향력에서 나온다. 타인이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고 나는 이미 ‘선생님’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어쩐지 좋은 기회를 발로 차 버리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비난한다.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비효율적이라서, 귀찮아서, 오해받기 싫어서,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닫는 나 자신이여. 그게 열정이라는 불꽃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인지도 모르고, 다시 부채질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너는 그러면서 늙어가고 있어. 너의 조언으로 다른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해봐. 상상을 했는데도 선생님이기를 포기한다면- 너는 이미 늙은 것이라고.
최근에 교권 추락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세태가 이러하다보니 교실에서 학생들의 일탈적 행동(훈육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을 모른척하는 교사들도 많다고 한다. 교실에서 뿐 만이랴. 일터에서든 어디서든 남의 일에는 신경을 끄는 편이 낫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훈계와 조언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도 싫고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도 싫어한다. 각자의 에어팟을 끼고 손바닥 위의 작은 액정을 들어다보며 살아가는 세상, 쿨하고 젊어 보이는가. 내가 보기에는 늙어 보인다.
http://www.chihak.co.kr/news/17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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