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양 석
유양석치과 원장
여기서 군의병과와 치의병과의 차별과 갈등을 절실히 느꼈으며, 군의병과는 수가 많고 직위도 많아서 여유가 있는데 치의병과는 수가 적고 좁아서, 계급이 선임이고 자격을 갖추었어도 진급을 못하고 괄시를 당하고 있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군의병과와 치의병과는 상호 협력하고 협조하여 공존함으로써 상호발전해야 하는데, 대립이나 대항하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필자는 군 입대 전에 미국 C A C 의료반에 근무하여, 전시(戰時)이기 때문에 치과 진료보다는 피난민 응급환자들의 외과 진료뿐 아니라 내과 진료까지도 도와가며, 부족한 일반의들의 하는 일을 도왔다.
치과의사는 일반의사의 일을 대신할 수 있어도 일반의사는 치과의사의 일을 대신할 수 없다. 나는 미군 야전 의무시설과 치과 시설도 견학할 기회가 있었기에, 입대 전의 견문과 경험을 살려 그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면 되므로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최전방 야전에서 근무할 당시, 후방은 암흑시대로 전기도 안 들어오고 약품 재료가 없어서 제대로 진료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비록 야전 천막 시설이었지만 가능한 최대한의 환경을 갖추고, 미 10군단 의무참모에게 말하여 발전기를 신청하니 한 달 만에 보급을 받았다. 그래서 발로 밟는 소위‘foot engine’으로 진료하던 시절에 나는 전기조명과 전동력을 이용하여 진료하였으며, 미군 야전장비 세트 내에는 금(金)을 위시하여 도치(陶齒)며 각종 치과재료가 있었고, 학교에서는 물론 생전 처음 보는 원심주조기와 아세틸렌 화염까지 갖춘 최신장비가 있었으니, 영문 설명서를 사전을 뒤져가며 사용법을 익혀 사용하느라 힘들었지만, 신기하기도 하였다.
환자를 색출하여 열심히 일하니, 소문은 군단사령부까지 알려져 군단 참모들은 물론 군단장(軍團長)까지 치과치료를 받으러 오게 되었다.
군단장이 치료를 받으러 오니, 사단은 비상이 걸리고 헬기를 타고 사단사령부에 내린 군단장은 헌병백차의 호위를 받으며 필자의 치과진료 천막을 찾으니, 의무참모는 짤짤 매며 몸 둘 곳을 몰라 안내하기에 바쁘고 필자는 점잖게 내 자리를 지키니, 상상에 맡기겠다. 그 뒤로의 의무참모가 필자에게 대하는 태도는 180도로 달라져 필자의 동정만 살피는 듯하였고, 나는 그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었다.
전시에 최전방 야전에서 금(金)을 사용하여 치과보철을 해주니 내가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군단장은 바로 정일권 대장(大將)이었으며, 후일의 참모총장과 국무총리다. 그에게 야전에서 금 인레이(inlay)와 크라운을 해 주었으며, 14년 후인 1967년에는 국무총리가 되어 수도육군병원에서 다시 한국최초로 내가 직접 일본에 가서 연수과정을 거쳐서 도입된 포세레인 금관으로 바꾸어 보철해 주었다. 그 당시 필자는 정일권 국무총리에게 수도육군병원 앞 중학천(中學川)을 복개해 줄 것을 건의하여 지금의 국립중앙미술관 앞과 삼청터널 길을 깨끗이 포장하게 된 것을, 치과치료의 대가로 시민에게 바친 것을 지금도 자랑스럽고 보람되고 흐뭇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