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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10/15  치학신문
선과 악에 대하여
오복만평

 


 이 재 윤


 덕영치과병원장


 본지 명예회장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가?
 선과 악의 대명사 ‘흥부와 놀부’를 예로 들어보자. 과연 흥부는 착하고 놀부는 악한가? 권선징악의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서 예전에는 흥부는 선하고 놀부는 악하다고 가르쳤으나 요즘 젊은이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오늘날 선악은 반대개념이 아니고 서로 구분되는 성격이 다른 개념이다. 또한 상호보완적인 개념이다.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은 원래 심성이 착해서 교육을 제대로 받고 잘 갈고 닦으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했고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했는데 인간의 품성은 욕심 많고 악해서 교육을 통해 수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결국은 내용이 같은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양면성이 있다. 선한 마음도 있고 이기심도 좀 있다. 모든 게 다 양면성이 있는데 이것이냐 저것이냐, 어느 것이 옳으냐 처음부터 선악을 구분해서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누가 죄를 지은 것을 분석해 보면 하나는 모르기 때문에 짓는 죄이고 다른 하나는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짓는 죄(어떤 동기가 있다)이다. 모르기 때문에 지은 죄는 무지하다는 죄명밖에 씌울 수 없다. 또 알면서도 지은 죄는 반드시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 사정을 이해한다면 동정심이 갈 것이다. 어떤 순진한 소녀가 죄를 지었다고 하자. 어린 소녀가 때가 묻었으면 얼마나 묻었을 것이며 악한 일을 했다면 또 얼마나 악할 것인가? 그건 일시적으로 돌발 상황에서 죄를 지은 거지 그 사람이 죄를 지을 만큼 충분히 악하다거나 때가 묻어서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몰랐으면 죄가 되지 않는 게 아닌가? 알았다고 하더라도 어떤 동기나 이유가 있었다면 죄가 안되는 게 아닌가? 
 예를 들어 어릴 때부터 계모한테서 핍박받고 학대받아 마음의 상처가 있고 그게 죄를 저지르게 한 원인이 됐다면 그것을 방지하지 못한 우리 어른들의 책임은 없는가? 그 소녀를 죄인으로 몰아세울 수 있는가?
 굳이 따지자면 그 죄는 소녀한테 있는 게 아니고 계모한테 있는 거고 그 계모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외부 환경에 있는 게 아닐까? 알고도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동기가 있다는 뜻이다.그 동기를 규명하고 그 동기를 나무라야지 덮어놓고 죄만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총으로 사람을 죽여서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람이 있다. 국민들 대다수가 공분을 느끼고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사람이 심각한 정신병을 앓고 있다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모든 걸 이원론적으로 선악을 구분하면 안 된다. 과연 세상의 모든 현상을 그렇게 정확하게 A or B로 구분 지을 수 있는가? 예전에는 죄가 안 되었는데 요새 와서 죄가 되는 게 얼마나 많은가?
 70년 전만 하더라도 딸만 있고 아들이 없는 경우 득남하기 위해 두 번째 부인을 얻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과거에는 딸이 시집가면 그 집 귀신이 되라고 할 정도로 이혼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않다. 시대에 따라,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대중의 기호에 따라 선과 악의 기준은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선과 악을 구분해서 선은 좋다 악은 나쁘다고 단정 지어 말해서는 안 된다. 선과 악은 서로 반대의 개념이 아니고 안전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위한 상호보완의 관계이다.
 법이 정한 기준의 문제가 아니고 그것이 사회에 해를 끼치는가 아닌가로 판단해야 한다. 런던파크에는 원래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영화감독 지망생인 ‘런던필름스쿨’의 한 학생이 카메라를 들고 들어갈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카메라를 분해해서 숨기고 들어가서 그 안에서 조립해서 영화를 찍었다. 이 경우 법을 어겼다고 할 있는가? 누굴 해코지 하거나 누구하나 피해를 본 게 아니다. 이 경우에는 법의 위반 여부만 따질게 아니라 꼭 필요한 행동이냐 아니냐, 그게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냐 아니냐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 했지만 그 소크라테스의 말을 악용하는 원리원칙만 따지는 무능한 공무원들이 얼마나 많은가? 달성해야 할 시급하고 중요한 과업이 있을 때는 과감하게 판단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지도 않았는데 정해진 어떤 기준을 어겼다고 처벌하는 건 잘못된 것이다.
 IMF 시절 환율이 세배나 올랐을 때 한 유학생이 있었다고 치자. 한국에서 사업하는 부모가 망해서 돈을 받지 못한 유학생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굶어 죽었다고 하면 그 부모가 뭐라고 할까? “그래 규칙 지키고 법을 지켰으니 너 잘 죽었다”라고 하겠나?  “아이고 이 바보야, 뭘 훔쳐 먹더라도, 무슨 짓을 해서라도 우선 살아남았어야지.”라고 하지 않겠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도둑질은 큰 죄가 되지 않는다. 생존 앞에는 선악이 중요하지 않다. 존재는 선악을 뛰어넘는 더 중요한 개념이다. 일본사람들은 참 교통질서 잘 지킨다. 내가 예전에 동경 근처에 있는 로타리 회원 집에 머무를 때 굴다리가 있었는데 도로가 좁아 딱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는데도 일본 사람들 기가 막히게 질서를 지키며 소통을 잘한다. 교통신호도 없는데 어쩜 그렇게 양보해서 잘 지키는지 신기하고 한편으론 부러웠다. 교통신호가 바뀌어도 교통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법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도 되는 그런 사회가 부러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법이 우리에게 필요해야지 우리가 법의 지배를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선악을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없지만 오늘날 선악의 판단의 또 하나의 기준은 환경파괴이다. 경제논리로만 접근해서 멀쩡한 건물 부수고 그 많은 건축 폐기물은 다 어떻게 할 것인가? 열대우림 다 태우고 북극 빙하 다 녹이고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현재는 환경을 파괴하고 이 지구에 엄청난 해악을 끼쳐도 그걸 죄라고 벌주지 않는다. 우리 다음 세대는 환경파괴가 불러온 온갖 자연재해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로 지구 한편에선 유례없는 폭염이 계속되고 다른 한쪽에선 엄청난 물난리로 모든 걸 다 쓸어버린다. 이런 기후변화는 동식물의 멸종, 질병 창궐, 농수산 자원·임야의 심각한 감소를 일으키기도 한다.
 환경파괴가 도둑질보다 인류에게 몇 배나 더 해악을 끼칠 수 있는 현시점에서 선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언어학박사 jaeyoon37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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