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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12/24  치학신문
나의 진로 탄생기, 1973년
릴레이수필

 “자서전은 인생의 최종정리가 아니라 중간정산이다”


 인생 별 ‘정언적 명령’처럼 온 원망(願望) 충족 순간


 

 

 

 박 용 호

 

 박용호치과원장

 

 

 

 

 

 

 

 예상했던 은퇴 시기를 넘기고 보니, 동창들은 중소업체 사장들 외에는 전부 물러났는데 본인은 개업의를 아직 유지하고 있으니 감사한 생각이 든다. 인생의 중요한 직업선택을 잘했다고 자평한다. 생리적 나이 65세가 되면 행복감도 있지만 과거 회상도 뒤따르게 마련이다. 우연히 대학 총동창회신문에서 ‘정대영의 자서전 특강’이란 책을 접했는데 이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자서전은 인생의 최종정리가 아니라 중간정산이다.” 그래 치과의사가 된 동기에 대해 피력해보았다. 중2 때 어느 날 저녁, 술 드시고 기분이 좋으신 부친이 말씀하셨다.“용호는 의사가 되고 용완이는 사업가가 되거라. 나도 일제 때 연세의전에 가라고 할아버지가 권유했는데 시체 해부가 무서워 의대 안가고 보성전문(고대)법과로 갔다.”
 부친 말씀이 씨가 되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초등학교 시절, 자연 과목이 그리도 재미있었다. 5학년에 배운 인체구조와 생리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심심하면 백과사전을 섭렵했다. 겨울밤 다다미방에서 유담프 끼고 이불속에서 인체 장기 구조와 역할을 읽는 것이 낙이었다. 그때 집안의 ‘신데렐라’ 사촌 누님이 있었다. 이북에서 남매만 월남해 부친의 도움을 받아가며 어렵게 간호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인천도립병원에 근무하다가 단신으로 도미, 미국 종합병원에 취업했다. 몇 년 후 첫 귀국 했는데 상추쌈을 먹으며 이게 몹시 그리웠다는 특유의 소프라노 목소리가 지금도 쟁쟁하다. 친척들 선물이 그득했다. 선망의 대상이었다.
 고1 때 생물 과목에서 DNA와 세포구조를 처음 배울 때는 거의 흥분해서 참고서로 복습하고 미리 예습할 정도였다. 지금도 바로 그날이 생생하다. 6월 초순 막 하복을 입기 시작하고 상쾌한 온풍이 불던 날, 집에 오자마자 생물공부를 했다. 자율 지적 충만감으로 뿌듯했다. 평소에는 영어, 수학에만 몰두했지 타 과목들은 시험 때만 학습했기 때문이었다.
 생물은 이은복 선생님 담당이었다. 인체구조를 가르치며 사람과 동물들의 치식을 비교해 주셨다. 교과서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치과의사가 될 운명이었는지 비교동물학에나 필요하지 시험에는 안나올 법한 수치를 달달 외웠다. 가령 사람의 치식은 2123(전치2개, 송곳니1개, 작은어금니2개, 큰어금니3개)이라고 말이다. 별명이 ‘쩝쩝이’였던 그분의 선행교육에 감사드린다. 중1년, 처음으로 누나와 시내 경동 부근 치과를 갔었다. 흔들리는 위 젓니를 빼기 위해서였다. 1층에 위치한 그 치과는 한가했다. 근엄한 선생님이 아무 말씀 없이 마취를 했다. 따끔하고, 바로 집게 감촉과 치아 움직이는 소리, 하나도 안아팠다. 하얀 가운이 경외스러웠다. 치과와의 첫 대면이었다. 집에 와서 어머니께 물었다. “치과의사는 몇 년 공부해야 하느냐”고. “글쎄, 왜정 때는 4년이었는데, 지금은 의대같이 6년이던가? 모르겠네….” 그 순간 연민과 불공정의 감정이 들었다. 구강도 인체 일부이고 같은 의사이니 당연히 6년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나중에 알고 보니 똑같이 6년이었다. 고3 대학입시와의 전쟁 시절, 가을이 되도록 구체적인 목표 학과를 정하지 못했다. 오로지 서울대에 가겠다는 지상과제가 있을 뿐이었다. 학교 교육도 그런 식으로 몰아쳤다. 당시 제물포고는 서울대 합격자 70~80명을 목표로 했다. 그 수치로 전국 일류고 서열이 정해졌다. 선생님들은 수시로 사당오락(4시간 수면하면 합격, 5시간 수면하면 불합격)을 강조했다. 교과목도 서울대 위주였다. 전체 석차 100등 이내면 적성·흥미 불문하고 서울대를 강권하는 분위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못된 일방적인 교육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성적은 720명중 40등 정도였다. 만족했다. 과외 한번 안받고 매일 새벽 1시까지 공부한 노력의 결과였다. 10월에 접어들어 ‘학원’ 청소년 잡지의 입시정보를 분석했다. 전국대학 학과와 커트라인 점수가 망라된 유일한 잡지였다. 의사의 꿈이 있었다. 그러나 서울의대는 20등 내에 들어야 가능했다. 그러면 당연히 연세의대에 가야 했다. 그러나 사립대는 학비가 비싸다는 선입견(당시 사립대 학비는 국립대의 10배 정도였다)과 서울대 목표에 경도되어 망설였다. 경로 이탈이 쉽지 않았다. 직업적성이 우선인가 타이틀이 우선인가, 고민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비는 아무리 높아도 장학금이든, 아르바이트건 부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누나가 자월도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었고, 어머니도 한국사회봉사회 직원으로 계셨기 때문에 그리 어렵진 않았다. 인천교육대학 교수로 계시던 숙부의 도움도 가능했다. 허나 혼자 끙끙했다. 터놓고 식구들과 의견 교환을 못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누나는 섬에 떨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전혀 말씀을 안하셨다. 어머니는 교육자 경험으로 성격이 차분하고 묻기 전에는 미리 앞서서 지적하지 않으셨다. 난 이점을 오히려 고맙게 생각한다. 어머니가 간섭하셨으면 자기 결정에 혼란이 왔을 것이다. 고민은 계속됐다. 더군다나 입시제도가 바뀌어 학과별 모집이 아닌 첫 계열별 모집이었다. 자연계열에는 관심 있는 전공이 식품공학, 섬유공학, 미생물학, 약학이었다. 그러나 큰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국립대인 충남대 의대로 갈까? 자고 일어나면 생각이 바뀌었다. 거긴 하숙 부담이 되고, 차라리 문과로 바꾸어 법대로 가서 고시 공부를 할까?
 11월이 왔다. 어느 일요일, 도서관에서 공부 중이었다. 인생 계기는 우연에서 온다. 잠깐 휴식 중 J와 입시정보를 나누었다. 느닷없이 그가 치대를 가겠다고 했다. 순간 머리에 섬광이 번쩍하고 가슴이 뛰었다. 하나에 몰두하면 다른 게 안보인다. “아! 왜 치대를 생각 못했지? 치과의사도 똑같은 의사인데.” 인생 별의 순간이었다. 그것은 ‘정언적 명령’처럼 왔다. 원망(願望)의 충족 순간이었다. 목표가 분명해졌다.
 연말 즈음에 어머니가 안정열 담임 선생님을 찾아 뵈셨다. 선생님이 뭐라 하셨느냐고 여쭈었더니 웃으시며 “성적을 보여주시며, 좋습니다, 가능합니다, 하시며 유망한 학과입니다, 그러시더라.” 두 분 다 합리적인 분이라 그러셨을 것이라 생각하며, 인정받은 느낌이 왔다. 쉽게 대학원서 쓰기의 통과절차를 밟았다.
 나의 선택에 선한 자극을 주었던 그 친구는 외국어대학을 나와 외국계 은행에 근무했다. 40대 중반 동기회장 할 때 그에게 연락해서, 자네 덕에 치과의사 됐다고 크게 한 턱 낼 터이니 한번 나오라고 했더니, 반색했었다. 인생 살다 보면 친구에게 예기치 않은 큰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의료인에 대한 동경심과 경외감이 무의식에 잠재해있다가 부친의 권유와 친구의 자극으로 격발된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나 혼자의 노력이 아니다. 부모님, 선생님, 친척들, 친구들, 사회, 국가의 합작으로 면허가 탄생된 것이었다. 인생진로의 씨앗을 뿌려주신 부친은 중3 때 갑자기 가셨다. 온전히 스스로 택한 진로, 평생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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