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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09/15  치학신문
원로 인사가 엮는 회고록 - 岩泉 邊碩斗 (79)
계급 정년으로 병과장 10개월 만에 이임식도 없이 떠나다

치무병과 발전을 위한 선배들의 철학 인격 품성 존경

 

자기가 한 말을 지키지 못하면 집을 팔아야 한다 명심

 

군진치과종합학술대회 개회식에서 치협 이유경 회장이 축사를 하고있다.

 

  1974년1월31일 제4대 육군본부의무감실치무병과장 김유선 대령이 지난해(1973년3월17일) 부임하였다가 이날 대령 계급 정년으로 10개월 만에 예편하고 제5대 치무병과장으로 제1치과진료소장(전 중앙치과진료소장) 조일 대령(예육대령.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제8회. 작고)이 동일부로 취임하였다.
 당시 이재철 장군이 유사 보직이라는 미명아래 의무차감으로 건재하고 있었기에 그들 일생에 한번 뿐인 치무병과장으로서의 이임과 취임인데 요식행위이지만 이취임식도 없었다 함은 여간 서운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치협 기관지 1974년1월10일자 “치과월보(치의신보 전신)” 제79호3면에 1단 기사로 “치무병과장 경질(更迭) 조일 대령 취임”으로 되어 있다.
 이임하는 김유선 대령과의 군 생활에서 필자와의 인연은 대위 때는 육군본부 의무감실 치무인사행정장교로 중령으로 육군본부 치무과 선임장교격인 치무운영장교였으며 필자가 중령으로 치무병과장보좌관으로서는 대령인 치무병과장이었으며, 취임하는 조일 대령과는 필자가 대위로 육본 치무인사장교이고 조 대령은 소령으로 같은 과 치무기획장교로 모두 필자의 군 생활 멘토인 당시 치무과장 최형곤 대령을 정점으로 같은 사무실에서 하나같이 육군 치무병과 발전을 위하여 열정적으로 일을 추진한 선배들이기에 그 분들의 철학과 인격과 품성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나 이제는 모두 고인(故人)이 되었다. 진심으로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기원 드린다.
 뿐만 아니라 매년 11월 28일 육군치무병과 창설 기념일을 전후하여 개최하던 군진치과종합학술대회도 1972년11월28일 용산 역전“용사의 집”에서 제18회를 끝으로 우리 단독 군진치과학술대회도 종적(綜跡) 없이 사라져 버렸다. 군 치무병과의 큰 자랑이고 창설 후 매년 이어져 온 빛나는 전통이었는데…….
 1972년 개최된 제18회는 필자가 중령으로 육본 치무병과장 보좌관일 때 실행한 것으로 이것이 마지막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되지 않는 행사였었다.
 이렇게 된 원인을 분석해 보면 그때 대한군진치과의사회장과 군진치과학회장은 의무차감 이재철 준장이 치무병과장에게 그 직위를 이양하지 않아 치무 쌍두마차로 서로 무관심했고 미루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치학신문 그때 그시절-71, 72, 73-참조).
 한편 지난해(1973년) 7월1일 창설된 육군제3군사령부 의무참모부 치무과 치무관리장교로 보직되어 필자가 9월22일 치무과장으로 보임되기 전 2개여 월간 과장 공석 상태에서 창설요원으로 혼자 고생한 박선조 소령(예육소령.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제20회. 서울 중랑구. 1974년5월31일 예편)이 2월 말 전역지원서를 제출함에 따라 그 후임을 물색 충원하여야 되는데 모두가 필자의 10여년 후배들이라 잘 모르기 때문에 몇몇으로부터 3명의 추천을 받아 우선 후보자들의 객관적 타당성(客觀的妥當性)으로 각종 보고 서류를 검토하고 그들의 실 근무상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부대 방문을 실행하여 적임자로 제2기갑여단 의무실 치과반장 장영일 대위(예육소령.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제24회. 치의학박사. 치과교정학 전공. 서울대학교 치과병원장 역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상임감정위원)로 심증(心證)을 굳히고 귀대하여 즉각 제3군사령부 의무참모부 치무과 치무관리장교로 전속 명령을 내렸다.
 1974년4월 군사령부 행정요원으로 전속된 장 대위는 의무참모 박성대 장군에게 보직 신고를 하고 각 과장 및 과원들에게 전입 인사를 하고 필자에게 자기는 교정학을 전공한 킴스플렌 출신인데 어떻게 행정 요원으로 근무할 수 있느냐 하기에 군인은 인사 명령에 따라야 하며 또한 필자가 적임자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니 좋은 경험으로 생각, 열심히 근무하면 1년후 에는 필자가 책임지고 본인이 희망하는 곳 어디에도 갈 수 있도록 할 터이니 믿고 같이 고생하자라고 설득시켜 군사령부 생활에 점차 적응 익숙하여지고 이듬해(1975년)4월에는 소령으로 진급도 하였고 1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본인이 희망한 제5야전병원(현 덕정병원) 치과부장으로 보임 되었다.
 북유럽 “핀란드” 속담에 “남자가 자기가 한 말을 지키지 못하면 집을 팔아야 한다”라고 했으며 리더는 “신뢰(信賴)와 책임감(責任感)이 충만(充滿)하여야 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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