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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07/24  치학신문
끈적한 잎사귀를 사랑하며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무엇보다 삶을 사랑해야 한다”

 

 


 유 선 태

 

 포천시 이동열린치과 원장

 

 

 

 

 


 모든 어려움 끝나고 다시 만나 어울릴 수 있기를 꿈꾼다“사람에겐 크게 세 종류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실내외 모두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 무조건 밖으로 나돌아야 하는 취미, 그리고 방 안에서만 가능한 취미 이렇게 세 가지를 이르는 말이다. 요즈음처럼 이 ‘실내에서의 취미’가 간절했던 적이 없다. 아껴 두었던 영화들도 전부 봐 버렸고, 이제는 드라마도 지겹고, 그렇다고 마냥 창밖만 바라볼 수는 없고……. 그러다 마침내 몇 년 전 사 두고 거들떠보지 않았던 책들에까지 눈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봄, 나를 찾아온 책이 <카라마조프 가(家)의 형제들>이다.
 하필이면 이 작품을 골랐던 건, 조금 부끄럽지만, 이번을 계기삼아 고전에 도전해 보겠다는 그런 기특한 결심에서는 아니었다. 서가에서 먼지만 쌓여 가던 고전문학 시리즈 중 이 책이 가장 두꺼웠기 때문이었다.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다 보면 시간도 금방 가겠거니 하는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필자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수많은 걸작들 중에서도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 특별한 이유는, 이것이 작가의 유작이기 때문이리라. 나이 60에 이른 대문호가 평생을 걸쳐 고민해 온 문제가 책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신은 있는가, 없는가. 신이 있다면 도대체 이 세상은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 작가는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입을 빌려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무엇보다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이 작품은 대체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단 말인가? 역시 ‘사랑’ 일까? 소설가 커트 보니거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인생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안에 있다.” 우리는 이 말에서 아름다운 희생, 극적인 사랑, 구원과 부활 등을 상상한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은 그리 위대하지 않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그들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 하나하나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19세기 중엽 제정 러시아의 소도시를 무대로 한다. 주요 인물들을 소개하는 데만 해도 한참이 걸리는데,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방의 소지주 표도르에게는 두 명의 정실부인에게서 얻은 세 아들이 있다. 첫째 부인의 아들이자 장남인 드미트리는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퇴역한 전(前) 장교다. 그는 아버지를 닮아 성질이 불같은데, 어머니의 유산을 받으러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표도르와 마찰을 빚는다. 차남 이반은 둘째 부인의 첫 아들로, 모스크바로 유학까지 다녀 온 지식인이자 냉소적인 무신론자다. 그런 형과는 반대로, 둘째 부인의 둘째 아들이자 막내인 알료샤는 사제의 길을 걷고 있다. 표도르의 서자(庶子)로 추정되는 하인 스메르쟈코프도 빼놓을 수 없다.
 세 여인에게서 난 네 형제라니, 벌써 파란의 예감이 들지 않는가? 거기에 드미트리는 약혼녀를 두고 그루셴카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아버지 표도르도 그루셴카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이반은 형의 약혼녀인 카체리나를 사랑하게 되고, 차남 이반과 막내 알료샤를 동시에 흠모하는 귀족 영애 리즈까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한창 복잡해진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막장 집안이 따로 없다.
 이렇듯 변변찮을 정도로 평범한 이들이 진득한 사랑과 증오로 뒤엉키는 이야기가 바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다. 1,6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방대한 양의 글 사이에서 유난히 마음에 꽂히는 부분을 하나만 골라보자면, 둘째 이반이 친동생 알료샤에게 마음 속 고민을 털어놓는 장면이다. 이반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봄날의 끈적끈적한 어린잎들을, 푸른 하늘을 나는 사랑해. 바로 그거야! 여기엔 지성도 논리도 상관없어. 이건 오장육부로, 배 속으로 사랑하는 거야. 자신의 최초의 젊은 힘으로 사랑하는 거지…….”
 그렇다면 이 냉정한 둘째는 왜 하필이면 ‘끈적한 나뭇잎’만큼은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걸까? 봄날 주변을 한 번이라도 둘러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그 답을 알 수 있을 터다. 새순에서는 으레 끈적끈적한 점액이 묻어나오기 마련이다. 매섭고 혹독한 러시아의 겨울을 견디고 피어난 새 어린잎들을, 그 생명과 부활의 징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이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이반의 말대로 이것은 대단한 지성이나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순수한 기쁨과 열망이리라.
 곧 봄을 지나 여름이다. 창밖엔 벌써 푸름이 성큼 다가와 있다. 맵찬 겨울 같은 시련의 계절이 지나고, 끈적끈적한 새 이파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싶어지는 날씨다. 이 모든 어려움이 끝나,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 어울릴 수 있기를 꿈꾼다. 그때가 되면, 책 속 문장을 빌려 이렇게 외쳐야겠다. “삶을 사랑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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