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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05/12  치학신문
어떻게 살 것인가, 세상의 느낌을 흠뻑 담아서
인문학칼럼

 

 


 李 興 雨

 

 이흥우치과의원 원장, 哲博


 

 

 

 

 

 하늘의 별을 보고 지상의 풀잎을 본다. 별빛의 반짝임을 몸으로 느끼고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을 피부로 느낀다. 이 느낌을 화가는 색채로 표현하고, 작곡가는 선율로, 문필가는 글로 표현하는데, 가치론을 펴는 철학자에게 무언가 느낀다는 것은 대상의 본질이나 의미를 알아채는 것이다.
 파스칼과 쉘러는 각각 창조적 감정과 사랑이 직관을 통해 대상의 본질을 꿰뚫어 알게 한다고 했고, 화엄경에선 ‘一卽多 多卽一’이라 하여 대상과 내가 결국 하나에서 나온 것이어서 서로 연결되고 의존된 것임을 깨달으라고 하였다. 메를로 퐁티는 별을 보면 별의 의미가 내 몸으로 들어와, ‘세계-내-존재’인 내 몸이 자연히 별의 의미를 지각한다고 했다.
 필자는 이 세상에 무엇을 만들기보다는 세상을 그대로 느끼는 것을 더 좋아한다. 젊어선 풀밭에 누워 하늘에 떠가는 구름보기를 좋아했고, 아직도 더러는 창문 밖 빈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를 즐겨한다.
 새벽 동 터오는 도로에서 하염없이 차로 달리는 것도 좋아해서, 차창 틈으로 들어오는 상큼한 바람에 머리카락은 흩날리고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로 흥얼댄다. 멀리 겹겹이 쌓인 산등성이 위에 떠 오른 해를 향해 차가 달리면, 어느새 산자락은 성큼 내 앞으로 달려와 지나쳐 가고,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타이어의 쿠션은 나지막한 능선을 따라 덩달아 부드러워진다. 되돌아올 때 마주친 석양의 불그스레한 햇살도 좋아하고, 저녁 어스름으로 축축해진 녹음의 산자락 또한 좋아한다. 아마 메를로 퐁티라면, 산기슭에 걸친 붉은 해가 제 본뜻을 모두 내보이며 지그시 내게 달려 들어왔다고 말했으리라.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은 그냥 순간 느낌을 즐기는 것이다. 요즘은 좀 뜸하지만, 마지막으로 그랬던 것이 언제쯤이었을까? 이른 아침엔 차들이 별로 없어, 몸이 달리는 것처럼 차와 하나가 되어 거리를 달린다. 동서로 뚫린 도로라면 달려도 달려도 커브 길이 없어, 해를 바라보며 달릴 수 있어 더욱 좋다. 먼 옛날, 초원을 달리는 말을 탄 기분도 이랬을까?
 멍하니 달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갈림길에서 자주 표지판을 놓친다. 달리면서 눈앞 경치에, 떠오른 생각에, 다가온 느낌에 그냥 젖는다. 시간은 멈춘 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예정 목적지도 공간 의식에서 멀어진다. 그래서 아내와 동승 했을 때는 길을 놓쳐 자주 잔소리를 듣는다. 그래도 나는 그런 도로를 좋다며 마냥 달린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샛바람에, 방금 투덜대던 아내의 표정을 떠올리다 슬며시 웃는다. 아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나, 나는 글을 쓰지만 사실 쓰지 않고 느끼기만 해도 좋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하는 천상병을 좋아하니, 느끼는 것으로 족한 사람이 시인이라면 아마 나도 시인이랄 수 있겠다. 언제 가장 행복했을까? 모자랄 수도 있었지만, 풍족히 그냥 있었던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햇살을 흠뻑 즐기고 있었을 때, 나는 행복했다. 그때 선물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인생의 선물은 느낌의 총화이다. 내 감성이 파릇하여 온갖 느낌으로 가득 찰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채 느낌들의 총체만 쌓여있어, 나는 나를 잊은 채 무아지경에 빠진다.
 집착과 번뇌를 벗는 열반의 경지까지야 아니겠지만, 혹 내 몫이 있다면 세상에 와 무엇을 담아갈 것인가, 하늘의 별과 대지의 풀을 담을 것인가. 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이 바람을 흠뻑 들어 마시고, 이 구름을 따라 흘러가고 싶다. 세상은 얼마나 느낄만한 것들로 가득 찼는가!
 꿈이라도, 별과 풀이 그리고 햇살과 바람과 구름이 나와 놀고 있는, 그런 세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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