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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05/27  치학신문
추억의 강의록
릴레이수필

추억 간직한 물건들에 치위생과 외래강사 강의록 사연

 

전문직 파트너로 걸맞은 합당한 대우와 역할 부여 필요

 

 


 허 용 수

 

 울산시치과의사회 회장

 

 한길치과 원장

 

 

 

 

 

 코로나 사태로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당황스럽기까지 하는 요즘이다. 오지 않는 환자를 기다리며 책 읽고 영화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좁은 원장실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화분에 물 주기를 하는 등 독방에 갇힌 빠삐용이 따로 없다. 그렇게 빈둥대며 멍 때리던 어느 날 급기야 원장실 대청소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책상 서랍과 책장 등을 탈탈 털어 먼지 쌓인 오래된 물건들부터 정리하기 시작한다. 평소 보이지 않던 잡동사니들이 주인을 원망하듯 튀어나오는가 하면 뜻하지 않게 보석 같은 옛 추억을 간직한 애틋한 물건들이 나와 잠시 미소 짓게 한다. 두터운 스프링 노트 몇 묶음도 그중 하나다.
 젊은 날 치위생과 외래강사를 하던 시절 작성했던 강의록들이다. 거의 20년 전 모 대학이 처음 생긴 치위생과에 교수 한 분만을 두고 신입생을 받은 대책 없는 상황이었다. 마침 우리 치과에 근무하던 직원 중 한 명이 신입생이 되면서 해부학 학위가 있던 필자를 소개해 인체해부학과 생리학 등의 기초과목을 강의하게 되었다. 첫해엔 하루의 강의를 위해 일주일 동안 쫓기듯 숨 가쁘게 강의록을 작성하고 컴퓨터로 파워포인트 작업까지 하노라면 강의 전날은 밤을 새우다시피 하였다. 해를 거듭하면서 강의록은 살이 붙어 점점 빼곡해졌으며 강의는 점차 여유로워졌다. 방학 때면 모교의 해부학 교수님의 배려로 해부실습 참관 수업을 진행하는 등 어렵고 딱딱한 과목에 학생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나름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한 일을 그 후로 8년이나 하게 되었다. 소중한 경험이었고 요즘도 제자들이 안부를 전해올 때면 보람도 많이 느낀다.
 무엇보다 강의를 하면서 치위생사에 대한 필자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해부학, 생리학 등의 기초과목들뿐 아니라 치과대학에서 배우는 대부분의 임상과목들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배우고 있었다. 치위생사들이 이런 것까지 배울 필요가 있을까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그들은 필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있었고 임상에서 진료보조 역할만 하기엔 아까울 정도의 교육을 받고 있었다. 강의를 그만둔 8년 후 필자의 치과엔 어느새 자연스럽게 직원들이 치위생사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30년 전 필자가 개원하던 그 당시 치과에는 거의 조무사들이 주를 이루었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무자격자들도 많았다. 치위생사는 치과에 어쩌다 한두 명이고 아예 없는 치과가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나뿐 아니라 주위의 많은 치과들이 치위생사들로만 직원을 채우는 곳이 많아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그간 치위생사들의 배출이 꾸준히 늘었음에도 항상 구인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치과 보조 인력 문제는 이제 만성적인 최우선 민생 문제가 되어 좀처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대체 그 많던 치과 조무사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치위생사들은 대학에서 전문지식을 습득하고 국가고시를 통해 자격증을 취득한 직업전문인들이다. 그들의 입장에선 수개월의 단기 교육을 수료한 조무사들과는 다른 대우를 원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조무사가 아니라 무자격자나 심지어 알바생이라도 정부가 책정한 최저임금을 맞추어줘야 한다. 소규모 개인 치과 의원을 경영하는 대부분의 치과 원장님들은 인건비 부담에 치위생사의 임금을 최저임금에 살짝 상회하는 수준 이상으로는 파격적으로 주기가 어려운 실정이지 싶다. 조무사와 치위생사 직군 간의 확연한 임금 차등을 두자면 최저임금 때문에 치위생사의 임금이 많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조무사들 역시 같은 임금 수준이라면 타 과에 비해 업무 강도가 높은 치과를 기피하는 것이 당연하고, 게다가 법으로 규정한 업무 범위 문제로 치위협과 간무협이 갈등을 빚어 치과에서의 조무사들의 입지가 많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치위생사들은 그들대로 대학을 나와 전문인이 되었지만 현재의 낮은 보수로는 평생 직업으로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잦은 이직이나 결혼과 동시에 은퇴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실제로 내 제자들 중에서도 과 톱을 달리던 우수한 학생들이 현재는 치위생사를 그만둔 경우가 많다.
 보조 인력 문제는 단순히 치위생학과의 증원을 늘리는 데만 기대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치위생사들의 배출을 확 줄여서 그야말로 귀하디귀하신 그들의 몸값이 올라가게 된다면 인건비 부담으로 소수의 인원만 채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비싼 임금만큼 전문 업무에 우선적으로 투입해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 내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직업적 자부심과 만족도 역시 당연히 높아져 최고의 생산성을 나타낸다면 경제적 효과가 오히려 더 커지리라 본다.
 반면 예전처럼 치과에는 다시 조무사들이 주를 이루어서 진료 보조 업무를 담당하게 한다. 이를 위해선 조무사들의 업무 범위를 법적으로 확충하는 한편 치과 분야의 교육을 강화하고 체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이 상훈 신임 협회장님의 공약 중에 한국형 덴탈 어시스트 제도에 거는 기대가 크다.
 우리 치과의사들이 전문직이듯 치위생사들 역시 우리들의 전문직 파트너임을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합당한 대우와 역할을 부여한다면 인력난은 점진적으로 해결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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