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興 雨
이흥우치과의원 원장,哲博
우리는 감각과 감정과 생각을 통해 세상과 교감한다. 그리고 우리를 움직이는 힘은 욕구나 소망이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인간의 본질을 무언가 하려는 욕망으로 보았고, 막스 쉘러는 추구하려는 가치로 보았다.
여행을 갈까, 친구를 볼까, 오늘 점심은 무얼 먹을까? 하루하루 일상의 작은 소망들과 자기를 보존하려는 소소한 욕구들이 길을 찾아 나선다. 우리는 흔히 정신적이거나 긍정적인 뜻으로 소망이나 바람이란 말을 쓰고, 신체적이거나 부정적인 뜻으로 욕구나 욕망이란 단어를 쓰는데, 스피노자는 정신적 욕구나 신체적 욕구에 상관없이 욕망이란 어휘를 사용했다.
스피노자는 신체보다 정신을 우선시하는 서양철학사에서, 신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욕망을 과감하게 인간 앞에 등장시켰다. 신체와 정신은 하나의 실체인데 두 가지 양태로 나타나고, 정신과 신체에 다 작용하는 욕망이 정신보다 우선하며, 능동적인 정신의 관념 못지않게 수동적인 정신의 감정(정서)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무엇이 좋아서 욕구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바라서 그것을 좋아한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욕구가 성취되면 기쁨이 생기고, 안되면 슬픔이 생긴다며, 그는 인간의 본질을 욕망으로 보았다.
욕망은 감정이나 생각보다 우선적이고 근원적이어서. 감정과 사고를 은밀히 왜곡시키기도 한다. 생존을 위해 인간은 자기합리화를 하고 스스로 속여 환영도 만들고, 그런 망상에 상응한 감정을 만들기도 한다.
진화론적 증거에 따르면, 사고의 토대는 감정이고 감정의 토대는 감각이다. 한데 어울려있는 인간의 몸과 마음에서, 감각을 토대로 감정이 일어난다. 얼음에 닿으면 몸은 차가운 감각을 느끼고, 애잔한 선율에 마음은 슬픈 감정을 느낀다. 흔히 신체가 느끼는 것을 감각, 정신이 느끼는 것을 감정이라 하는데, 우리는 감각으로 외부 대상이나 내부 사정을 알아차리고 여기에 반응하거나 감응하여 감정이 발현한다.
감정은 감각과 달리 정신적 의미를 포함해서, 일찍이 데카르트는 감정을 타락한 영혼이라 불렀다. 때론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다 화도 내고, 희망에 차다 금방 불안해 후회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감정(정서)을 심리학자 피에르 자네는 ‘주어진 상황에 대한 유용하고 체계적인 반응’이라고 정의했다.
감정은 내부나 외부 세계에 감응한 내 영혼의 반응이어서, 내부 반응을 표현해주는 신호이며 외부 세계와 감응한 반향이기도 하다. 게다가 대상이나 상황에 관한 알아챔이 여러 종류의 다른 감정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표출된 감정(느낌) 자체가 무엇에 대한 확실한 인식에 각각 상응한다. 아름답다고 느끼면 ‘아름다움이란 가치’를 인식한 것이고, 사랑을 느낀다면 ‘대상이 내포한 사랑이란 가치’를 인식한 것이다. 파스칼과 베르그송은 직관을 통해 감정이 가치를 인식한다고 했고, 쉘러는 감정 중 특히 사랑이 대상에 대한 본질직관을 수행하며 또 사랑은 자체로도 최고의 가치라고 말했다.
쉘러는 인간의 본질을 가치로 보았고, 우주에서 어느 한 사람의 가치를 그 사람의 인격이라 불렀다. 인격은 곧 정체성이고, 한 사람의 인격은 그가 평소 어떤 감정을 품고 사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사랑을 품고 위선자는 분노를 부추긴다.
우리는 스피노자가 인간의 본질이라던 욕망을 넘어 인격의 산으로도 올라가지만, 때때로 소소한 욕구들을 가치라 부르며 다양한 감정의 흔적들을 낙엽처럼 남긴다. 인생에서 생존을 위한 근본적인 욕구를 넘어서는 건 항상 겸허한 도정(道程)이었고, 인간 사회에서 오랫동안 바람직한 인격으로 칭송받던 대표적인 가치는 진선미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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