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성
前경기도치과의사회 회장
이지치과 원장
지체된 정의도 여전히 정의다
민법은 오랜 시간 사회적 발전과 함께 진화해왔다. 그 시초는 인류가 수렵에서 농경으로 이행하며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던 시기와 맞닿아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농경의 정착은 사람들로 하여금 함께 살아가게 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긴장을 관리할 장치가 필요했다. 법은 그러한 갈등을 조정하고 질서를 확립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종교와 더불어 법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기둥이 된 것이다.
역사 속 민법의 발전은 이러한 본질을 잘 보여준다. 로마 제국은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각 지역의 관습을 시민법과 만민법으로 통합하려 했고, 그 대부분이 사인(私人)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세밀한 고찰이었다. 이는 법이 단순히 국가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개인 상호 간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학문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법학은 중세의 도덕신학, 즉 신의 의지에 근거한 도덕적 질서로부터 출발해, 근세 인문주의와 자연법사상의 영향을 거치며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중심가치로 삼게 되었다. 근대 민법전들은 이를 토대로 사적 자치의 원칙을 최고의 이념으로 삼으면서도, 필요할 경우 국가 권력이 보충적으로 개입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
정의와 질서를 지탱하는 법의 정신이 2천 년을 넘어 이어져 온 것이다.
치과계 선거, 질서와 신뢰의 기초
법이 공동체 질서를 지탱하듯, 선거의 공정성은 직역 사회의 신뢰를 지탱하는 기초가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치과계의 선거제도는 어떤가. 민법이 사회 공동체의 최소 질서라면, 선거제도는 직역 공동체의 민주적 질서를 유지하는 근간이다.
직선제는 회원들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되었으나, 시행 과정에서 오히려 수많은 법적 분쟁을 낳았다. 선거 때마다 소송이 반복되었고, 결국 부정선거에 따른 당선무효 판결까지 이어졌다.
최근 선고된 1심 판결문은 6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선거 과정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판결문에 적시된 사실관계는 치과계 민주주의의 민낯을 기록한 문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냥 덮고 가자”는, 가장 손쉬운 선택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점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란 말인가?’
물론 법원의 판단이 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면 가장 바람직했을 것이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통념은 정의가 실현되어야 할 시점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그러나 임기 3년이 거의 다 지나 내려진 판결이라 하더라도, 그 판결이 규명한 부정선거의 사실과 제도 개선의 계기는 시간의 지연에도 불구하고 정의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치과계 민주주의의 방향을 바로잡는 최소한의 장치다.
지체된 정의의 과제 — 부정선거의 심판과 정상화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내년도 정기선거를 앞두고 출마 의사를 드러내는 이들의 면면이다. 과거 부정선거의 당사자는 물론, 그 과정에서 침묵하거나 동조했던 이들까지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는 학습효과에 따른 잘못된 관행의 고착화를 예고하며, 결국 치과계 스스로 법적 분쟁의 악순환을 반복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법원의 판단은 지체되었고, 직무정지 가처분도 늦어졌으며, 심지어 공금으로 항소와 가처분을 대응하는 비상식적 상황까지 마주했다. 그러나 우리 회원들은 이 혼란 속에서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본질이 있다.
다가올 선거의 핵심은 ‘부정선거의 심판’과 ‘비정상의 정상화’여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지체된 정의도 여전히 정의다.”
만약 이번 판결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같은 문제가 다른 선거에서 되풀이될 것이다.
그때 치과계는 민주적 제도의 퇴행과 공동체 신뢰의 붕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늦게 도착한 정의일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정의로서 존중하고 제도의 개선과 윤리 확립으로 이어가야 한다.
정의는 늦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실현의 순간은 공동체의 미래를 바로 세운다.
그것이 2천년을 이어온 민법의 역사와 공동체가 우리에게 전하는 변함없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