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특정 풍경들이 과거를 소환하는 모습으로
치과의사는 새삼 ‘먹게 해주는 봉사직’임을 깨달았다
박 용 호
서울·박용호치과원장
치과 근처 김포공항 입구에 폐쇄된 부대가 남아있다. 유사시 공항방어가 주 임무였다.
30여 년 전 고교동창이 대대장으로 근무했던 인연으로, 점심때 산책할 겸 들른다. 거기에 가면 시간이 정지해 있다. 나의 뇌변연계에 각인된 한국 전쟁 참상의 사진과 구전들.
우크라이나 전쟁, 마리오폴 제철소 지하항전 때 두경부에 Barton’s 붕대법으로 동여맨 군인 영상에 먹먹해진다. 전형적인 본부단과 군 막사들, 높게 솟은 플라타너스 잎새들 바람결 소리와 세동, 황톳빛 연병장. 특정 풍경은 과거를 소환한다.
군의관 첫해 근무지였던 강원도 현리 102 야전병원의 구강악안면외과장 보직은 필자의 수술 실력을 연마할 수 있는 직분이었다.
국립경찰병원 전공의 시절 배운 수술기법을 내 주관대로 행했다.
겁이 없었고 의욕으로 충만했다. 수술, 입원 환자는 항시 10여 명으로 사고, 폭발, 총상에 의한 안면부 골절, 봉와직염, 농양, 낭종 등이었다. 특히 골절과 봉와직염은 생명을 위협하므로 수술이 어려운 만큼 보람감은 컸다. 건강을 회복하고 거수경례하며 퇴원할 때는 성취감이 왔다.
그때 필자의 별명은 ‘환자 중대장’이었다. 군기 세게 다룬다고 대학동기 임윤식 치과부장이 지어줬다. 다른 과 군의관들은 조용히 회진해주고 지나갈 것을 필자는 외래진료실이나 병실에서 일렬로 세워놓고 위생병이나 입실 선임병의 보고를 받았다. 연후에 건강수칙, 수술 상처 위생수칙 등을 설명해주고 군가를 제창했다.
명령어는 일정했다. “반동 준비! 지금부터 반동 간에 군가 한다. 군가는 사랑하는 전우야!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입실병들은 열렬히 불렀다. 발음도 괴상하고 가관이었지만 진지했다.
대부분 악간고정으로 입을 벌릴 수 없음에도 그렇게 우렁찬게 기특할 따름이었다. 밥도 제대로 못먹고 측은한 느낌도 들었으나 그런 기백이 있어야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어제 신문에서 정상 사병들이 아침점호를 생략해달라는 청원을 올린다니 군대 기강과 사기가 염려된다.
한 사람씩 앞에 서면 자동적 부동자세로 얼어붙고 관등성명과 病歷을 외쳤다. “일병 홍길동! 하악 우각부골절 6월1일 입실, 2일 일차수술, 4일 이차수술” 바이탈 불안정자는 열외였다.
군대문화가 생리에 맞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융통성이 없었고, 장교경력의 부친 영향이 투사됐을 것이고, 전두환 정권 분위기로 경직된 탓이었을 것이다.
밥풀이나 빵조각이 장치에 끼어 있으면 그대로 엉덩이를 군화발로 걷어차던가 푸쉬업을 ‘구강위생 철저’ 복창과 함께 실시했다. 약해 보이는 사병들은 눈감아 주기도 했다. 나중에는 점호도 스트레스려니 주 2회로 줄였다.
통솔 재미가 있었고 지휘관이 된듯했다. 군의학교와 삼군사관학교에서 배운대로 했다. 나름 사병들의 긴장이 풀리면 회복에 좋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수시로 하는 ‘충성’경례 소리와 복창 고성으로 남들이 보며 수군대며 지나갔다.
철저한 군의관으로 소문이 났는지, 병실에 지나가면 어슬렁대던 입실병들이 정자세로 경례를 했다.
어느 날 병실에서 투약 오더를 하던 중 우연히 전날 수술환자가 L/D(liquid diet) 먹는걸 보게 되었다. 그냥 흰 뜨물이었다.
수저로 간신히 떠넘겼다. 반찬은 김치, 콩나물, 동태조림, 똑같았다. 관행적으로 R/D, S/D, L/D 오더만 냈지, 영양은 고사하고 성상이 어떤지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원서에서 보듯 계란, 우유, 크림 등 3대 영양소 음식이 부실하고 1일 2500cal가 충족되지 못함에 괴리감을 느꼈다.
간호장교에게 스트로를 챙겨주라 하고 비타민을 추가 처방했다. 치과의사는 새삼 ‘먹게 해주는 봉사직’임을 깨달았다. 그 후로 악간고정 환자는 빨대흡입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지치, 치료불능치의 발거에도 신경을 썼다.
한 번은 필자의 한계를 직면하게 되었다. 폭발사고로 인한 턱의 복잡골절 환자였다.
이등병이 수류탄 폭발로 긴급 후송되어 대량 출혈로 실신해 입원했다. 방사선 촬영을 해보니 턱뼈가 5*3cm 날아가고 주변은 은하수처럼 파편들이 박혀 있었으며 반대편은 골절됐다.
구강 내로 어렵게 스플린트를 장착한 후에 절개 후 와이어 고정을 했다. 파편은 기구와 손감각으로 최대한 제거했다.
환자가 성공적으로 어느 정도 회복되어 유동식은 가능했다. 말은 못하지만 살았다고 감사해하던 눈빛이 지금도 선하다.
그 와중에도 군 기강이 바짝 들어 있었다, 열은 없었는데 환자복이 춥기도 하고 긴장했는지 회진 때면 가볍게 떨었다. 위생병에게 내의를 갖다 주라고 했다.
턱뼈 손실 부위는 저작이나 충격으로 재골절 위험 때문에 이차로 골이식 수술이 필요했다. 자신의 갈비뼈나 엉치뼈에서 채취한 골을 이식하는 기법이었다.
수술팀 4명이 동시에 투입돼야 가능했다. 본과 4년 시절 민병일, 김종원 교수님의 수술 견습을 했었다.경찰병원에서 변용성 박사님 집도로 주변 턱뼈 자가골 이식은 경험했지만 이런 중환자는 처음이었다. 고민이 시작됐다.
http://www.chihak.co.kr/news/16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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