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을 돌봐주다가 형편이 안돼 남의 집에 보내는 심정 참담
구강악안면외과 취업할 수 있는 외상전문병원 출현하기 희망
박 용 호
서울·박용호치과원장
정형외과 군의관에게 부탁해 골편 채취를 시도할까? 그는 경북대 출신으로 군수련의 경력이고 소령이며 진료부장을 겸하고 있었다. 상관이었다. 군대는 계급순이라 한 단계라도 높으면 신경이 쓰였다. 작심하고 말을 꺼냈는데 예상외로 난색을 표했다. “혼자서 힘들기도 하고, 외래진료 빼기도 힘들고, 난 그쪽 수술 잘 몰라서…. 거기 뼈를 떼본 적도 없고….” 내 생각이 임의로 너무 앞서갔음을 깨달았다. 평소 술도 사고 인간적 친교를 맺어 놓을걸. 그게 부족했나?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무리 정형외과 의사라도 특정 부위의 경험이 없으면 솔직한 거절이 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기가 생겼다.
구강외과 책들과 해부학 도감을 뒤져 턱과 iliac crest 부위 절개선을 계획하고 신경, 혈관 위치를 숙지했다. 다시 수술실 김 중위에게 찾아갔다. 전기톱이 있느냐고. 치과 후배 군의관들(안호경, 정세현 중위)과 직접 해볼 심산이었다. 김 중위가 가져왔는데, 아! 너무 큰 정형외과 사지절단용 톱이었다. 섬세한 수술에는 부적합했다. 치과용 포터블 엔진과 대형 치즐을 써서 해볼까? 3차원 공간에 맞추려면 손이 빨라야 하는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수술이 순조롭지 못할듯 한데….
통신보안을 신경 쓰며 군통신선으로 어렵게 대학 동기에게 연락했으나 자리에 없다고 실패했다. 했더라도 그도 바쁘고, 오지라서 오기 힘들 것이다. 행정상 병원장의 승낙절차도 필요할 것이다. 벽에 가로막힌 심정이었다. 며칠 고민 끝에 원주후송병원으로 전원하기로 결정했다. 첫 후송환자라서 자존감이 상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마음이 착잡했다. 수도통합병원에서 다양한 대수술기법, 응급처치술, 중상자 수액요법 등을 연마하고픈 욕망이 솟구쳤다. 동생을 돌봐주다가 형편이 안돼 남의 집에 보내는 심정이었다.
그때 현리~원주 간은 달팽이 산길로 비포장 군사도로가 포함된 위험도로였다. 간혹 전복사고도 있었다. 나름 비장한 마음으로 선탑해야 했다. 운전병에 무조건 천천히 가라는 수밖에 없었다. 상남면에 들러서 위생병, 운전병, 입실병을 데리고 국밥 이별 회식을 했다. 입원수속 절차를 하다가 점심을 배식받지 못할까 염려돼서였다. 도착해서 그곳 군의관에게 자세히 인계했다. 수술기록지에 경과노트는 썼지만 그래야 더 잘해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등병은 마지막으로 절도있게 거수경례 했다. “군의관님, 감사합니다. 충성!” 발음은 어눌했지만 복도가 울리는 소리에 주변 사병들이 힐끗 쳐다봤다. 난 가볍게 끄덕이고 그의 어깨를 쳐주고 말없이 나왔다. 순간 연민이 생겼지만 잘 넘겼다는 안도감도 밀려왔다.
제대 후 87년인가, 대학원 특강이 있었다. 막 유럽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구강외과 선배였다. 골절상과 양악수술에서 사용한다는 기성 제품으로 정교한 악안면골 각 부위의, 크기별 플레이트와 나사를 보여주었는데, 신경지였다. 골간고정의 단점인 수술 후 와이어 감촉도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자부심이 넘쳤다. 그러자 모 교수님이 “여지껏 골간 와이어 고정으로 못하는 수술 없이 잘해 왔는데 뭐 그렇게까지 복잡한게 필요하냐”고 힐난하듯 반문했다.
선배의 반박도 만만치 않았는데, 이를 보다 못한 이춘근 교수님이 거들었다. “이 세상 모든 수술법 중에서 내 것만이 최고라 하는 자세는 곤란하다. 과거에 알라바마 치과대학에 가보니까 거기선 모든 턱 골절 환자들이 핀을 박고 얼굴에 육중하고 거대한 지지대를 헬멧처럼 착용하고 있더라. 그걸 최고라며 설명하던데, 지금 관점에서 보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 방법인가? 시간이 흐르면 수술법도 바뀌고 발전하기 마련”이라며 중재했다. 좌중이 조용해졌다.
현재는 CT, MRI, 각종 인조골과 티타니움 골체는 기본이고 3D 진단 소프트웨어가 출시되어 가상수술을 하고 미리 수술용 스프린트도 제작한다고 한다. 후학들이 대단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포기했던 것도 용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수술 實技 욕심이나 실습대상으로 삼지 않은 것은 고교 교훈 덕인 양심이 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 무리하게 수술했다면 아마도 이식골이 부골화 되고 후유증이 생겼을 것이다. 자책감으로 좌절했을 것이다. 42년간 임상을 해보니 잘한 케이스는 기억에 별반 없지만 못한 케이스는 남아있다. 그나마 큰 응어리질 케이스는 없었던 점이 다행이고 감사하다. 배움의 열정에 목말랐던 그때 나처럼, 구강악안면외과 전공한 군의관 후배들이 제대 후 취업할 수 있는 외상전문병원이 출현하기를 기대한다.
지금은 50대 후반이 되었을 그 후송환자가 괜찮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으면 좋겠다.
http://www.chihak.co.kr/news/16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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