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 시각보다 후각에 의한 기억이 강력하게 오래남아
기억을 잃는 알츠하이머 환자 초기 증상이 후각 잃어
염지훈
연세포시즌치과 원장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
프랑스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으면서 어릴 적 추억 속으로 강렬하게 빨려 들어갑니다. 홍차의 향이 잊고 있었던 과거를 소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것을 냄새를 통해 회상하게 되는 것을 ‘프루스트 효과‘라고 합니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유시민 작가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책과 인쇄 박물관에서 맡은 옛날 신문의 잉크 냄새로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을 갑자기 떠올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청각이나 시각으로 기억된 추억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소환하는데 한계가 있는 반면 냄새로 인한 향수는 보다 더 강렬하다는 과학적 근거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Yaara Yeshurun 박사는 이런 맥락에서 실험을 진행하여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특정 냄새를 맡으면서 사진을 보여주었고 MRI 촬영을 하였더니 뇌의 특정부위에 혈류량이 증가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 후 이전에 맡았던 냄새에 다시 노출시켰더니 이전에 같이 보여주었던 사진을 떠올렸고 MRI 촬영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에 불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진행된 또 다른 연구에서는 냄새가 단지 기억의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에도 작용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모넬 화학감각연구센터는 특정 향기를 맡으면 감정 중추인 편도의 활동이 현저히 증가함을 관찰할 수 있었으나 시각적 자극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반면 알츠하이머 환자의 초기 증상 중에 하나가 후각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역설적으로 기억과 후각이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즘 나온 연구들을 보면 단지 기억뿐만이 아니라 감정적이 부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특정 시간의 특정 추억에 관련된 자신만의 향이 있을 것입니다. 필자는 과거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시기에 머리도 식힐 겸 일본의 작은 도시에 온천 여행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머리도 복잡하고 잠도 잘 오지 않아서 매우 피곤해 있던 중에 새벽녘 쯤 혼자 노천 온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맡았던 히노끼 향이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히노끼 향을 맡으면서 온천에 들어가 있으니 신기하게도 근육이 이완되고 머릿속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그 때의 강렬한 기억 때문에 아직도 원장실 안에 디퓨저를 이용해 히노끼 향이 퍼지게 하고 있습니다. 치료가 생각처럼 잘 되지 않거나 환자와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아 스트레스가 쌓일 때 심신의 안정에 일부나마 도움이 됩니다.
반대로 좋지 않은 추억을 소환하는 냄새도 있죠. 필자가 레지던트로 근무할 때에 인두 암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았던 환자가 동네 치과에서 발치를 하고 bone necrosis가 와서 의뢰된 적이 있습니다.
이 환자분은 하악골의 1/4이 녹을 때까지 엄청나게 pus가 나왔습니다. 물론 나중에 악골재건까지 완료하여 퇴원하시긴 하였지만 더운 여름에 몇 달을 주말이나 휴일도 없이 하루 2~3번씩 드레싱을 하였습니다. 물론 저보다도 그 환자분이 훨씬 힘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필자도 당시 끝이 없는 터널을 지나가는 막막한 감정이 가슴 속에 가득했습니다. 지금도 I&D를 하면서 pus 냄새를 맡으면 그 환자와 힘들었던 그 여름이 떠오릅니다.
옛날에 치과에 들어가면 특유의 냄새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포름크레졸의 향이 가장 강렬했던 것 같고 ZOE도 빠지지 않습니다. 유지놀은 항균작용과 진통작용이 있어 지금도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예전만큼 광범위하게 사용되진 않죠. 유지놀의 독특한 향은 모기나 파리 등의 해충을 쫓는데도 사용된다고 합니다. 그 당시의 치과를 회상해 보면 대부분 원장님의 성함을 딴 OOO치과나 성만 사용한 김치과, 이치과 등의 치과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지금은 그 치과의 철학이나 특색을 표현하는 일반 명사들이나 영어 이름들이 많죠. 그리고 예전처럼 강한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강한 냄새가 나는 재료들은 덜 자극적인 재료로 교체가 되었고 포름크레졸을 사용하는 치과도 많이 줄었습니다. pulpotomy 보다는 pulpectomy를 하기 때문에 치수 고정을 할 필요성이 많이 줄었죠. 아무튼 예전의 치과 향에 대해 추억해 보면 다소나마 공포의 냄새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반대로 요즘 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분들은 나중에 우리 병원을 어떤 추억으로 떠올릴 지 궁금해집니다. 치과는 환자의 입장에서 무서운 곳이죠. 환자분들은 치과에서 통증과 소리에 대해 공포감을 많이 느낀다고 합니다. 통증과 핸드피스 소리를 제거하지는 못하더라도 줄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통증은 촉각이나 압각과 같은 일반 감각과는 달리 정서적 요소를 포함하기 때문에 개개인이 느끼는 통증의 정도는 그 사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향기를 이용한 통증의 감소는 대체의학이나 간호학에서 이미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약용식물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한 물질에서 추출한 향기성분이 인체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그리고 질병예방과 증상완화를 위한 올바른 활용법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 학문이 ‘아로마테라피’라는 이름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필자도 역시 대기실에서 디퓨저를 이용해 향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좋은 향을 만들기보다는 치과에 대한 공포감을 감소시키기 위해 심신의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는 향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라벤더나 캐모마일, 그리고 히노끼 오일을 적절히 번갈아가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저한테 치료 받았던 환자분들이 그래도 제 병원에 들어오면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해 준다면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http://www.chihak.co.kr/news/10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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