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근하다’는 의미 설명해 줄 수 있는 전통음식
조 재 오
경희대 치전원 외래교수
그간 제주에 열 번이 넘게 다녀왔다. 1968년 여름방학 중에 친구 몇명이 목포에서 배를 타고 무전여행으로 제주에 갔던 것을 시작으로, 그간 십여차례 제주를 방문하였는데, 한라산 정상에 각각 다른 course로 세 번을 올라갔었고, 근간에는 새로 개발된 제주 올레길과 마라도와 가파도에까지 진출했었으니 제주 여행에 관한 한 제법 관광 안내원(?)을 맡아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제주에 가보니 필자가 가보지 못한 곳이 아직도 많았다.
지난해 11월 필자의 고등학교 동문치과의사회에서 제주도 여행을 간 김에 필자가 조선치대에 몸담고 있을 당시 학부학생이었던 박인수(조선치대 2회졸, 구강외과 수련) 선생이 이번에도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다금바리회, 싱싱한 갈치회, 고소한 대방어 회가 가득한 만찬을 베풀어 주어 제주산 소주를 정신없이 비우며 흘러간 광주에서의 추억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다. 바쁜 중에도 제주에서 개업하고 있는 이중철 선생(조선치대 8회졸, 치주과 수련)이 시간을 내어서 이박 삼일 동안 필자의 손발이 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마지막 날 점심으로 그간 제주에 와서 구경하지 못했던 몸국을 맛보게 해주었다.
제주도하면 문득 생각나는 먹거리들이 있다. 돔베고기, 흑돼지, 다금바리회, 자리물회, 고기국수, 옥돔구이, 제주감귤, 갈칫국, 빙떡, 몸국 등등…. 그런데 “몸국”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몸국은 제주도의 향토음식으로 여기서 몸은 조류인 모자반의 제주도 방언이다. 몸국 또는 국은 제주도의 향토 음식으로, 돼지고기를 삶으면서 생긴 국물에 모자반을 넣고 끓인 국이다. 원래 잔칫날에나 먹던 것으로, 제주도 음식 중 유일한 탕류이다. 맛은 기름지면서도 부드러우며, 제주도민들은 전통적으로 그 맛을 ‘베지근하다’라고 표현하였다. 이 ‘몸’을 넣고 끓인 국이라서 ‘몸국’이라고 부른다. 톳과 비슷한 모자반은 제주도에서 많이 나는 갈색 해조류로 냉이처럼 향긋하고 봄 새싹처럼 부드러워 제주도에서는 국, 나물무침 등으로 즐겨 먹었다. 해초와 돼지고기의 조합이라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나 의외로 맛이 독특하다. 예부터 제주도 사람들이 거센 바닷바람을 이기기 위해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몸국은 제주도의 혼례와 상례 등의 주요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 중 하나다. 제주도에서는 산후에 산모에게 미역국 대신 몸국을 먹이기도 한다. 돼지고기와 내장, 순대까지 삶아 낸 국물에 모자반을 넣고 끓이면 느끼함이 줄고 독특한 맛이 우러나 지금은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제주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이 몸국에는 가슴 아픈 유래가 있는데 제주도에서 잔치를 하면 돼지고기로 국을 끓였는데 처음 끓인 돼지고기 국은 고기가 많고 국물도 맑은 국으로 이 맑은 국은 지체 높은 상전이나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 밥상에 올라갔다. 국과 고기는 모자라고 나머지 사람들은 배가 고프니 남은 국물과 고기 몇 점에다가 제주도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자반을 넣고 포만감을 높이기 위해 메밀가루를 넣어서 다시 끓인 것이 몸국이다. 몸국은 척박한 땅에서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제주도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제주도내 초, 중, 고등학교의 급식으로도 가끔 나오는 편이나 몸국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그다지 인기있는 메뉴는 아니며, 일반인들의 술자리에서는 옛 추억을 회상하게하는 빠질 수 없는 음식중 하나이다.
제주도에서는 전통적으로 관혼상제가 있는 특별한 날에나 돼지를 잡았는데, 돼지고기를 삶아 수육을 만들고 그 국물에 내장과 순대(수애)를 넣어서 또 삶은 것이라 그 국물은 매우 진하다. 여기에 주로 바닷가 마을에서는 몸국을 만들었으며, 내륙 쪽 마을에서는 이 국물로 고사릿국, 또는 어린 무나 결구가 생기지 않은 배추를 넣은 국 등을 끓여 먹었다.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에 다섯 시간에서 여섯 시간 가량 불린 모자반을 듬성듬성하게 썰어서 집어넣는다. 국물이 끓으면 솥의 뚜껑을 연 뒤, 찬물에 푼 메밀가루를 넣어서 국물을 걸쭉하게 만든다. 부추와 다진 마늘을 넣고 소금으로 적당히 간하여 몸국이 완성된다.
제주의 바다와 육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몸국은 다른 음식과 달리 사철 동일한 맛을 낼 수 있어 오히려 산업화하기 수월한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많은 식당들이 어설프게 선을 보이면서 오히려 그 가치를 잠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제주의 몸으로, 제주 도새기로, 제주 몸밀로 만들어지는 푸짐한 몸국 한 그릇은 타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제주만의 표현인 ‘배지근하다!’라는 의미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전통음식임이 분명하다.
http://www.chihak.co.kr/news/13816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Powered by Newsbuil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