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 윤
덕영치과병원장
본지 명예회장
이상에서 사랑의 어원을 살펴보았지만 사랑이란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뭔가 복잡한 듯한 느낌이 든다. 사랑을 한 마디로 포괄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렵다면 사랑을 분류해서 생각해보자.
존 앨런 리는 사랑의 상태를 여섯 가지로 구분하고 대부분의 사랑에는 이들 형태 중 두 가지, 혹은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섯 가지 내용을 살펴보면,
1. 에로스(Eros)：에로스 타입은 완전히 육체적이고 성적인 매력에 매료된 사랑 관계다. 그런 사랑은 ‘깜짝 사랑, 영 이별’이라는 우리 속담처럼 빨리 불붙고 쉽게 사라지는 사랑이다.
2. 루두스(Ludus)：루두스 타입은 장난스러운 우연한 사랑을 말한다.
서로 그다지 관심은 없으나 만나면 즐겁고 서로 좋은 관계이다. 상대가 다른 만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서로의 의존을 피하기 위해 서로 용납하고 관계를 유지한다. 특별한 남녀간 애정은 없으나 심심치 않아 좋다.
3. 스토르지(Storge)：스토르지 타입은 상대의 정이나 따스함에 이끌리며 열정과 탐닉은 적은 경우이다. 이 타입은 우정에서 사랑으로 변하는 경우에 흔히 볼 수 있는 상태다.
많은 경우 사랑인지 단순한 우정인지 자신도 구별 못할 때가 많다. 애정의 위기 같은 것도 없고 비교적 지속력이 강한 상태이나 극적인 정열이 없는 것이 흠이다.
4. 마니아(Mania)：마니아 상태는 감정이 세차게 일어난 사랑을 말한다.
광기와 흥분이 계속되는 상태다.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상대가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환희와 절망이 성난 파도처럼 교차되는 질풍노도 시대, 그러나 마지막은 결국 갑작스런 파탄을 가져올 확률이 많다.
5. 프라그마(Pragma)：프라그마는 보다 현실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계산적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대가 여러모로 자기에게 맞으니까 사랑한다는 타입이다. 성격도 맞고 조건도 그만하면 됐으니 한번 사귀어 보자고 하다가 시작된 사랑이다. 그러다 서로 더욱 마음이 맞으면 진한 사랑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6. 아가페(Agape)：아가페는 지극히 기독교적인 사랑이다. 이해와 양보와 희생을 통해 이루어 가는 사랑을 말한다. 엄격한 의미에서 실제로 존재하기 힘든 사랑이어서 대부분 우리의 이상 속에서만 살아 있는 실체다. 위에서 열거한 존 앨런 리의 분류를 보아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사랑은 무엇일까?
연극, 영화나 음악 등 대중예술에서 사랑의 주제를 빼버린다면 송두리째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기독교나 불교에서도 사랑을 주제로 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이토록 번성할 수 있었다.
사랑의 실체는 무엇인가?
우선 인간의 속성에 관해 살펴보자. 맹자(孟軻)는 성선설(性善說)이라 하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고 했으며, 순자는 성악설(性惡說)이라 하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생후 환경이나 교육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단순한 2분법적인 발상으로 쉽게 수긍하기 힘들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잣대 자체가 불분명하며 선과 악이 인간을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속성도 아니다. 인간 역시 생로병사하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주어진 환경과 적응능력을 감안하여 사랑을 고찰하여 보아야 한다.
우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으며 또 어머니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면서 처음 사랑을 배운다. 유아기 때는 동물과 별로 다를 바 없이 생존의 본능에 의해 행동하지만 가족이나 주위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사랑을 배운다. 이 시기에는 오직 자기에게 젖을 주는 어머니에게는 무조건 호의를 가지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호기심, 질투, 공포 등 다양한 감정을 가진다. 다른 사람이 어머니를 부둥켜 안으면 매우 불안해하며 울게 된다. 어린이가 되면 자아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주위에 대한 많은 호기심이 생긴다. 친구를 사귀고 이성에 대한 동경도 생기나 현실적으로 손에 쥐어지지 않는 막연한 형태의 사랑이다.
중학생이 되면 이른바 송아지 사랑(Calf Love)이라 부르는데, 송아지가 어미 소를 따르듯이 오빠나 선생님, 탤런트 등 나이 많은 사람이 동경하는 이성이 된다. 영어 선생님이 매력적이면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수학 선생님이 매력이 없으면 수학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이 되면 동년배끼리 서로 좋아하게 된다. 이를 강아지 사랑(Puppy Love)이라 하는데 이는 강아지 새끼 예닐곱 마리가 서로 장난치며 노는 것과 비유가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사랑은 상대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고, 사회의 인식이 결여되어 있어 금방 결혼으로 골인하기는 매우 힘들다.
사회가 인정해 주는 사랑은 대학 입학 이후에야 가능하게 되는데, 인간의 평균수명이 훨씬 길어진 오늘날의 지식 사회에서는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우리는 성장 과정을 통해 꾸준히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게 된다. 생물은 선과 악을 떠나 단지 존재할 뿐이다.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능력 있고 적응할 수 있는 자만이 살아남기 때문이다. 양은 순하며 풀을 뜯어먹고 다른 동물을 공격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리는 양을 잡아먹고 산다. 이 경우 양은 선하고 이리는 악하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그것은 생존의 방식이 서로 다를 뿐이지 결코 선악의 문제로 시비를 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제 나름대로의 사랑을 하겠지만 그 내용이나 질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생존 본능이나 2차 성장에 의한 욕구 표현, 혹은 종족 보존의 본능을 초월하지 못한 이기적인 사랑이 대부분인 사람도 있고 그것을 뛰어넘어 공동의 행복과 성장 및 창조를 가져올 수 있는 성숙된 사랑도 있고, 자기의 희생을 무릅쓰고 민족이나 인류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위대한 사랑도 있다. 예로부터 우리 한민족은 작게는 가문에서 크게는 민족과 인류를 위하여 헌신한 사람들이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많았다.
<언어학박사 jaeyoon3700@hanmail.net>
http://www.chihak.co.kr/news/14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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