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노산 풍부해 떨어진 간 기능 회복 및 숙취 해소에 효과
조 재 오
경희대 치전원 외래교수
다슬기는 중복족목 다슬기과에 속하는 연체동물로 학명은 Semisulcospira libertina Gould, 1859 이다 . 다슬기는 야행성으로 낮에는 수중 돌 밑이나 틈새에 숨어 있다가, 어두워지면 슬슬 밖으로 나온다. 일반인이 보기에 닮아 보이는 달팽이와는 아강 수준에서 달라 친척이라고 생각되지 않으며, 당장 눈에 띄는 차이점으로 달팽이와는 달리 암수 구분이 있다는 점이다. 바위가 많은 강의 돌 틈 같은 데를 뒤지면 찾아볼 수 있으나, 현재는 과도한 농약의 사용과 수질오염 등으로 개체 수가 꽤 줄었다고 한다.
물환경 정보시스템에서 볼 수 있는 하천 생활환경기준에 따르면 다슬기는 좋음~보통수준의 수질에서 생활하는데, 이는 수질의 정소가 1b, 2, 3급 수준이다.
보통 유리판이 달린 플라스틱 수경을 이용해 강바닥에서 돌 틈을 뒤져 가며 잡지만, 전문적으로 어업을 하는 경우에는 한밤중에 배에 달린 그물로 강바닥을 훑어 돌 위로 올라오는 다슬기를 낚아채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방법을 쓸 경우 강바닥의 다슬기 씨를 말려버릴 수 있으므로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실제로 다슬기가 건강식으로 알려진 이후 해마다 전문 장비들을 동원해서 다슬기를 마구잡이로 쓸어가는 불법 채취꾼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 그 숫자도 늘어나면서 당국과 지역 주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슬기는 아미노산이 풍부해서 떨어진 간 기능을 회복 및 숙취 해소에 효과적이다. 아울러 저지방 고단백질 식품이어서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준다. 또 대소변 배출을 돕고 통증을 개선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충혈 등 눈의 피로회복에 좋다. 한방에서 다슬기는 찬 성질의 식품이어서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의 열기를 낮추고, 갈증을 해소한다고 알려져 있다.
다슬기는 흔히 식용으로 이용되지만 기생충의 일종인 폐디스토마의 중간숙주이므로 날것으로 먹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식감은 조그만 고무조각처럼 말랑 쫄깃하고, 맛은 고소하며 끝 맛이 약간 쓰며, 의외로 쌉쌀한 편이다. 다슬기는 익혔을 때 비취 같은 녹색이기 때문에 예민한 사람은 비위가 상할 수 있다.
아무리 해감을 잘 해도 모래 같은 게 씹히는 느낌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다슬기의 대부분이 난태생이라 그렇다. 즉 모래처럼 씹히는 것은 모래가 아니라 껍데기가 갓 생성된 새끼 다슬기인 것이다. 대략 6~7월쯤에 잡은 다슬기는 이런 식감이 없다고 한다.
다슬기는 경남에서는 고둥, 경북에서는 고디, 골배이, 골부리, 전라도에서는 대사리, 대수리, 강원도에서는 꼴팽이 등으로 불리는데 중부 지방, 그 중에서도 해산물을 접할 기회가 낮은 내륙(≒충청북도, 영서)에서는 ‘올뱅이(충주 등 동쪽지방)’, 혹은 ‘올갱이(청주 등 서쪽지방)’라고 부르며 된장을 풀어 향토 음식인 올갱이국을 끓여먹는다.
충북 괴산군은 올갱이국 거리가 있을 만큼 유명하며, 영동군, 보은군, 영월군 등 산 많고 계곡이 많은 지역에서 많이 먹는다. 경상도 쪽에서도 비교적 즐기는 음식 중 하나로 다슬기를 ‘고디’, ‘고동’으로 부르며, 따라서 ‘다슬깃국’도 ‘고디국’, ‘고동국’으로 통하고 있다. 다만 다른 지역에서는 다슬기 해장국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다슬기의 생명력이 강하여 주변 하천에서도 쉽게 볼 수 있으며, 일반인도 계곡에서 별 장비 없이 맨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채취가 쉽다. 그러나 손톱만한 다슬기를 삶아서 다슬기 하나하나마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알맹이를 껍질에서 꺼내야 하니 그 정성이 보통을 넘는다.
다슬기를 된장 푼 물에 삶아서 길거리에서 팔기도 한다. 다슬기는 필자가 어릴 적에는 심심치 않게 서울 시내 재래시장이나 뒷골목에서 자그마한 손수레에 번데기와 더불어 항상 보이는 길거리 음식이었었다. 이쑤시개로 하나씩 빼먹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에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다슬기의 수명은 3~5년으로 다른 종류에 비해 긴 편이다. 친척뻘인 우렁이는 1년인 반면, 다슬기는 수명이 길어 어항에서 완상용으로 키우기에 적절하다.
다슬기는 강에서 죽은 물고기 시체를 뜯어먹는다고도 알려져 있는데 심지어 익사체까지 먹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강바닥에 빠져 죽은 익사체를 끌어올렸는데 시신의 눈, 코, 귀 등 얼굴의 구멍에 다슬기가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물속에서 동물이 죽으면 가장 먼저 뜯어먹으러 오는 게 게와 가재, 고둥류라고 하니 시신에 고둥류에 속하는 다슬기가 빼곡하게 붙는 게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1979년 광주 조선치대에 부임했을 때만해도 광주 시내를 흐르는 광주천에서 아낙들이 유리를 댄 수경으로 개천 바닥에서 다슬기를 잡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만큼 물이 맑았었는데 수 년 후에는 그조차 오염되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경희치대로 직장을 옮긴 이후 회기동 뒷골목 식당에서 다슬기 국을 파는 집을 보고는 쾌재를 부르며 점심시간에 자주 찾곤 하였었다. 일일이 손으로 그 작은 다슬기 알맹이를 바늘로 파내어 된장을 풀고 끓인 아욱국의 아련한 맛이 일품이었고, 거기에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만든 토종 순대 한 접시까지 추가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다슬기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인지. 찾는 사람이 적어서 장사가 안 되어서인지 어느 날 그 집이 없어져서 아쉽기 그지 없었다. 요즈음 같이 다양한 먹거리가 넘쳐날 때에 다슬기 국에 대한 향수는 어머니의 손맛 같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http://www.chihak.co.kr/news/1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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