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 좋지 않은 경우 자연산 어패류 날로 먹으면 위험
조 재 오
경희대 치전원 외래교수
회(膾)는 육상 동물의 날고기(생고기)나 생선의 날고기(날생선)를 잘게 손질해서 먹는 요리를 의미한다. 생선 외에도 새우류, 오징어류, 조개류 같은 기타 수산물 등이 재료가 되지만 특별한 접두어 없이 그냥 회라고 하면 주로 생선회를 지칭한다. 영어로 raw fish dish, 중국어로 生鱼片(shēngyúpiàn), 일본어로는 刺身(さしみ)로 표현된다.
회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음식 중 하나이다. 구석기시대의 인류는 수렵, 어로, 채집을 하며 살았다. 동물 중에서 가장 잡기 쉬운 것이 물고기이다. 불을 이용하지 못했던 구석기 초기에는 당연히 날것(즉회)를 먹었다. 이러한 ‘익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거는 물론 지금도 서양에서는 이색적인 식문화로 인식되어 있다.
사실 요리로서의 회가 가장 먼저 발전한 것은 중국으로, 고대 중국에서는 회가 인기 있는 음식이었다.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회자(膾炙)되다’라는 표현만 봐도 알 수 있다. ‘회자(膾炙)’는 회와 구운 고기를 뜻하는데, 회와 구운 고기처럼 자꾸 입에 오르내리는 화젯(話題)거리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로 미루어 육상동물의 고기만큼 생선회를 즐겨 먹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때 이미 회를 먹었다. 이후 삼국지의 진등(陳登)이 평소 회를 즐겨 먹었는데, 이것이 원인이 되어서 기생충으로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공자(孔子)가 즐기는 음식 중에도 회가 있으며[논어(論語) 향당편(鄕黨篇)], 주나라 때도 회를 먹었으며, 당나라 송나라 때도 문인들의 회에 대한 언급이 많다. 그런데 정작 그 중국에서는 명나라 때부터 회가 잊혀졌다. 임진 때 조선에 온 명나라 사람들이 회를 먹는 조선인의 모습을 보고 어색해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기원전부터 주나라에서 송나라에 이르는 300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음식 문화가 명나라 때에 이르러 소멸된 정확한 이유는 불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여러 문인들이 회에 대한 감상을 기록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도 여러 가지 물고기를 회로 먹는다는 내용이 있다. 조선시대 중기 홍만선( 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와 조선후기 유중림(柳重臨)의 <증보산림경제 (增補山林經濟>에는 회를 먹는 법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홍만선의 <산림경제>에는 “회를 먹고 나서 소화가 안 될 때는 생강즙 1되를 먹이면 즉시 소화가 된다”는 동의보감(東醫寶鑑) 처방까지 기록되어 있다. 또 여름에는 얼음 위에 회를 올려놓고 먹는 방법까지 알려 주었으니 조선시대 사람들의 회를 즐기는 풍습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에 반해 일본은 기록상으로는 1399년에 처음으로 나타나서, 일본의 본격적인 회 역사는 대략 600여 년 정도에 이른다. 그에 반해 한국은 최소 1천 년은 되며, 중국은 대략 3천 년 정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 일본이 회 문화를 극도로 발전시켜 세계화되어 회의 본류가 일본인 것처럼 알려지게 된 것이다.
세계 곳곳에 독자적인 회 요리들이 있다. 유럽에는 카르파치오(Carpaccio)가 있다. 얇게 저민 날생선(혹은 날고기)을 올리브유, 케이퍼, 소금, 후추 등과 함께 내는 요리다.
중남미에는 ‘세비체(스페인어: cebiche)’라는 회 요리가 있다. 깍둑 썰기한 회를 레몬즙이나 라임즙에 절이고 양파, 고추, 고수 등과 버무려 낸 음식이다.
필리핀의 ‘키닐라우(Kinilaw)’는 세비체처럼 산성 재료에 절인 회 요리다. 식초에 생선회나 조개류를 절여 만든다.
요즘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포케(Poke)’도 있다. 하와이 음식으로 토막 낸 고기를 간장이나 소금에 절였다가 야채, 밥과 함께 먹는 요리다.
그 외에도 사하 공화국에서도 ‘스트로가니나(строганина)’라는 날생선 요리를 먹는다. 겨울에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서 물 밖으로 꺼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냉동된 물고기의 날 생선을 얇게 저미고 거기에 소금과 후추를 뿌려 먹는 요리이다.
그러나 회하면 단연 일본이다. 날 생선을 워낙 많이 먹을 뿐 아니라, 자국 회와 초밥의 세계화를 위해 일찍부터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이다.
우리나라는 활어 회를 주로 먹는다. 선어 회에 비해 풍미는 떨어지지만, 초고추장이나 쌈장을 곁들여 회의 맛을 즐긴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전에는 초고추장 대신 겨자 장을 곁들였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에는 여러 가지 회 요리가 있다. 채 썬 회와 야채를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찬물을 부어 먹는 ‘물회’는 동해안과 제주도의 향토음식이다.
전라도에는 홍어를 삭힌 후 먹는 홍어회가 유명하다. 지금도 전라도에서는 애경사에 홍어요리가 빠질 수 없고, 요사이는 홍어가 예전같이 잡히지 않아서 홍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서 서민 가계에 주는 부담을 줄이려고 지방자치단체에서 홍어사용을 자제하자는 운동을 벌였을 정도이다.
이밖에 날생선이 아닌 회 요리도 있다. ‘숙회(熟膾)’는 끓는 물에 살짝 데친 음식이다. 문어숙회나 오징어숙회가 보편적이며 추어 숙회는 사대부의 음식으로 격이 높게 쳤었다. 생선이나 야채도 숙회의 재료로 쓴다. 육상동물의 고기도 회로 먹는다. 소고기로 만든 것은 ‘육회’, 닭고기로 만든 것은 ‘닭고기회’라고 한다. 제주에서는 말고기 육회도 있다.
필자가 광주 조선치대에 몸담고 있을 시절 추어 숙회, 꿩고기 회, 닭고기 회들을 즐겼었고, 수년전 정부에서 국민건강을 위해서 음식점에서 날고기 판매를 금한 때가 있었는데 전남권의 뿌리 깊은 ‘생고기 문화’ 때문에 예외적으로 전남 권에서는 생고기 판매 금지를 유예했을 정도이었다.
그러나 회에 관해서 조심해야 할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익히지 않은 고기인 까닭에 고기에 기생충이 있을 경우 기생충과 그 알까지 같이 섭취하게 되어 감염의 가능성이 있다. 일급수에서 사는 민물고기는 기생충이 없다는 설은 사실과 달리 우리나라의 하천에서 자라는 생선에는 예외없이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어 생식 시에 감염의 우려가 있다.
바다 생선에도 고래회충(Anisakis simplexRudolphi, 1809)이 서식하여 섭취시 다양한 반응을 일으키며 위 점막에 침투시 임상증상을 보이는 경우는 운 좋게 내시경으로 제거하는 방법이 있으나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기생충 외에도 비브리오패혈증에 주의해야 한다. 주로 수온이 18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때에 감염률이 높아지는 병으로 치사율이 50%를 상회한다. 평소에 간이 안 좋다면 자연산 어패류는 날로 먹지 않는 것이 좋다.
http://www.chihak.co.kr/news/16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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