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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9/03/01  치학신문
아버지의 칠순
릴레이수필

한국 나이는 체계가 두 종류여서 기념일 쉽게 헷갈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짊어지고 가는 일종의 책임감

 

 


 김 병 준

 

 경기도 하남시·서울네이처치과

 

 

 

 

 


 

 아버지는 1950년에 태어나셨으니 내년이면 만 70세가 되시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필자는 작년 여름부터 병원을 이전하는 일에 정신없이 바빠서 아버지의 나이는 잊고 지내고 있었다. 막연히 아버지가 60대 후반을 지나고 계신다는 것과 가끔 뵐 때마다 손에 검버섯 같은 것이 조금씩 더 눈에 띄기는 하지만 비교적 나이에 비해 건강하셔서 감사하다는 것 정도만을 스쳐가듯이 잠깐씩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슬픈 일은 길게 생각하지 않고 빨리 흘려보내려고 하는 일종의 회피본능 같은 것이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이 매년 조금씩 늙어간다는, 당연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을 떠올리면 자꾸 슬퍼지기만 하니까 말이다. 생각해보니 아주 어렸을 적이었는데, 누구나처럼 필자의 부모님도 시간이 흐르면 늙고 병들고 결국은 죽게 된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밤새도록 울어버렸던 날도 있었다.
 그런데 몇 주 전 어느 날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올해 아버지 칠순인거 알어?” 약간은 다급한 목소리였다. 진료 중에 전화를 받은 필자가 성의없이 대꾸했다. “무슨 소리야. 50년생이시니까 2020년이 70이지.”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가 틀린 것이었다. 환갑은 육십갑자가 한바퀴 돌았다는 의미가 있어서 만 60세, 우리나라 나이로는 61세인 것이고, 칠순은 우리나라 나이 셈법으로 따져서 70세, 그러니까 만 나이로는 69세로 따진다는 것이었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찾아보니 ‘너같은 사람 여럿 있다’는 듯이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필자의 누나도 오늘 그 사실을 알고는 바로 필자에게 전화했다고 했으니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약간은 상기되어 있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바로 다음 주에 아버지 생신이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칠순은 만 나이로 따지는 것이 아니고 한국 나이로 따진다는 것을 왜 필자는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왜 우리나라는 나이 체계가 두 종류인 것일까 생각하며 누나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요즘은 칠순 기념으로 어떤 거창한 잔치 보다는 해외여행을 보내드리는 것이 트렌드인 것 같았다. 그러나 부모님 두 분이 매년 한 번 정도는 해외여행을 다니시기 때문에 이것은 그다지 감동적인 선물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번에 부모님 두 분이서 계획하신 미국 서부여행 출발 예정일이 바로 내일모레였으니 칠순 기념여행은 더욱 애매모호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 칠순 기념 여행을 계획한다면 자식들인 우리 남매와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들이 함께 가야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수개월 전부터 미리 계획했어야 하는 것이었으므로 당장은 실행이 불가능했다. 결국 대가족이 함께 가는 여행은 여름이나 가을로 미루어 다시 차근차근 준비하기로 했다.
 누나와의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니 아마도 그 후로 며칠동안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벌써 70년을 사셨다니…. 아버지를 생각하니 떠오르는 게 있다. 아버지에게는 얇은 노트가 하나 있었는데, 일종의 재무 계획 노트 같은 것이었다. 적어도 필자가 가끔 곁눈질로 볼 때는 그랬다. 아버지는 거의 매일 저녁마다 그 노트를 펴보시고 무엇을 열심히 적기도 하고, 그냥 뚫어지게 쳐다보며 골똘히 무엇을 생각하기도 하셨다. 아버지는 평생을 공무원으로 사셨기 때문에 큰 돈을 만질 일도 없었고 그저 검소하게 사시는 것 밖에는 답이 없었을테니, 그 노트는 매일 펴볼 만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 그 노트에 매일 적어야 할 내용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노트에 적은 내용은 자식들의 대학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결혼자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등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버지에게 그 노트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짊어지고 가는 일종의 책임감과 같은 것이었고, 그 노트를 열어보는 시간은 하루를 마무리하며 내일도 열심히 살리라는 다짐을 되뇌이는 그런 시간이었으리라.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셨다.
 누나와 며칠간의 논의 끝에 시내의 한 호텔 뷔페식당을 예약하고, “축 칠순”이라고 쓴 떡 케이크도 주문했다. 기념 선물로 드릴 닷돈짜리 금반지도 미리 맞추었다. 부모님 두 분과 자식,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 그리고 필자의 곧 태어날 아기까지… 식당에 모여 앉으니 정말 대가족이었다. 떡 케이크에 양초 7개를 꽂고 온 가족이 축하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준비가 부실했던 아버지의 칠순 기념 식사모임은 가까스로 잘 끝났다. 이제는 불혹을 넘겨버린 자식들이 부모님을 챙겨야 할 때인데, 아직도 필자는 부모님의 챙김을 계속해서 받고 있다. 언제나처럼 아버지, 어머니는 어제도 아들의 병원에 오셔서 뭐 필요한 게 없는지 도울 것이 없는지 살뜰히 챙기고 가셨다. 이제는 자식들 뒷바라지의 책임감과 의무감에서 부모님을 해방시켜드려야 할텐데, 필자는 이제 곧 둘째 아이까지 태어나면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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