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승 철
단국대학교 치과대학 명예교수
옛날 고전적 동화에 ‘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있다. 들판에서 하루종일 양들을 데리고 앉아 있자니 너무나 지겹고 심심해서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장난을 해 보았다. “늑대가 나타났다!”라고 소리쳐서 모두가 혼비백산하고 그를 도우러 마을 사람들이 연장을 들고 달려왔지만 막상 늑대는 없었다. 한번 재미를 본 그 철부지 소년은 며칠 뒤 또 한 번 “늑대가 나타났다!”라고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달려오게끔 하였으나 거짓이었다. 마지막으로 며칠 후 정말 늑대가 나타나서 겁에 질린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으나 이번에는 아무도 도와주러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사람이 한두 번 속지, 세 번은 속지 않는다는 기본적 교훈이다. 필자가 군의관 시절 이야기다. 항상 부하 사병들에게 따뜻하게 잘 대해 주었고 그들도 나의 지도하에 군기를 잘 지킨다고 자부한 만큼 한번은 내가 며칠간 출장 가서 당분간 못 볼 것임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는 그날 밤 짠-하고 별안간 군 치과 진료실을 찾아가 보았는데, 혹시나 하는 예상대로 모두가 진료실에서 둘러앉아 PX에서 사온 군용 맥주로 술판 파티를 벌리고 있었다. 당시 고압멸균기 대신 보급된 끓는 물을 이용한 자불소독기가 가운데 있어 뚜껑을 열었더니 삶은 통닭이 한 마리 올라왔다. 모두들 밖으로 집합시켜 기합을 시키고 나서 그들과의 대화로 달래주기로 했다. 장교들이나 영외 근무자들이 모두 퇴근할 때면 일렬로 서서 퇴근 버스를 전송하며, 밖에 못나가는 사병들은 매일 외로움과 서글픔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 앞으로 내가 퇴근않고 매일 남아서 너희들과 함께 생활할게”라고 말했더니 모두들 질겁을 한다. 그 때 필자는 깨달았다 “아무리 좋은 상관이라도 윗사람은 없는 것이 더 낫다”
필자는 기껏 출장 핑계로 사기를 쳤지만 죽음을 갖고 사기 친 사람도 있어서 화제이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뚱뗑이 독재자가 갑자기 사라졌다. 세계 각 언론기관에서는 그가 심장 수술 중 사고가 생겼다, 뇌출혈로 중태다, 심지어는 사망했다는 설이 난무하였다. 이십여 일을 잠적하였기에 외국의 유명 의료진이 파견되었느니 장례 준비를 한다느니, 여러 추측이 난무하였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짠-하고 나타났다. 어느 비료공장 준공식에 테이프를 끊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세상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재밌는지, 어떤 이들은 그에게 중병설, 사망설을 말했던 자들에게 비난한다. 5년 전에도 며칠간 소식 없이 사라졌다가 사망 의혹까지 있었는데, 수일 후에 지팡이 짚고 나타나서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요즘 세상에 웰다잉 프로그램도 있어 어떻게 잘 죽는 법을 체험하기도 한다지만, 이건 마치 세상 사람들을 놀려먹는 것도 같고, 그가 제 정신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 사람을 미친 사람이라면 욕이고 문제가 되지만 미친 사람보고 그 사람 같다고 하면 큰 문제는 안 된단다. 하필이면 재등장 장소가 척박한 땅을 기름지게 할 목적의 비료공장 준공식이라는데, 정작 기름진 오일로 범벅이 된 땅은 농토로도 못쓰는데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정말 이렇게 만들까 쓸데없는 걱정도 해본다. 아무튼 그의 잠적과 중병설, 사망설과 깜짝 출현에 세상 사람들이 속았다는 기분으로 허탈하기만 하다.
과거 80년대에 우리나라에 처음 아파트 단지가 강남에 처음 들어설 무렵, 대개 10여 평의 5층짜리 아파트가 많았다. 당시에 아파트 주민 가족이 사망하면 집안에서 장례를 치르는 경우도 많았는데, 관을 창밖으로 이삿짐 올리는 도르래로 내리거나, 여럿이서 들고 계단을 통해 내려 왔다. 어느 5층 집에 암을 앓던 부인의 초상이 났는데 인부들이 관을 들고 내려오다가 3층 모서리 돌 때 그만 난간에 관을 심하게 부딪쳐 계단에 떨어뜨리는 사고를 빚었단다. 놀라서 보니 관 속에서 신음소리가 나서 뚜껑을 여니 살아 계셨단다. 가족들은 반가워서 다시 환자를 모시고 올라가 잔치도 하였고, 한 일년 잘 살았단다. 그러나 결국 그 부인은 같은 암으로 다시 세상을 떴단다. 또다시 인부들이 관을 메고 5층부터 내려오는데 3층 계단을 돌 무렵 갑자기 남편은 작년 사건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인부들에게 나직이 말했단다. “조심!, 조심!”
아무튼 그의 잠적 사망설 장난도 두 번 했으니 사람들은 이제는 더 이상 안 속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