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재 오
경희대 치전원 외래교수
영양이 풍부한 소의 내장을 넣고 끓인 국으로 보양음식곰탕의 어원은 뭉그러지도록 익히다/진액만 남도록 푹 끓이다라는 뜻의 ‘고다’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까 아재 gag에서나 나옴직한 말로 ‘곰고기’를 넣고 끓인 국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영어권에서는 곰탕을 ‘beef bone soup’라 부른다.
최순실 게이트의 당사자인 최순실이 검찰 조사 중 저녁식사로 곰탕을 한 그릇 비웠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 때문에 ‘최순실 곰탕’이 한때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도 검찰 조사 도중 저녁식사로 곰탕을 먹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금 회자되기도 했다.
곰탕은 넓은 의미로는 소의 여러 부위, 즉 쇠머리·사골·도가니·양지머리·내장 등을 함께 섞거나 또는 단독으로 여러 시간 푹 고아서 맛과 영양분이 국물에 충분히 우러나게 한 국을 총칭하는 것이다. 곰탕·육탕(肉湯)이라고도 하며, 영양이 풍부한 내장을 넣고 끓인 국이라 보양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곰탕이란 1768년 조선 영조 때 간행된 몽골어 교재인 《몽어유해(蒙語類解)》에 몽골에서 먹는 맹물에 고기를 넣고 끓인 것을 ‘공탕(空湯)’이라고 적고 이를 ‘슈루’라고 읽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공탕(空湯)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고기를 푹 고은 국이라는 의미의 곰국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고문헌에서 곰탕은 ≪능소주다식 조석상식발기(陵所晝茶食朝夕上食撥記)≫에는 ‘고음탕’,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고음국’, ≪조선요리법(朝鮮料理法)≫ 이후의 조리서에는 ‘곰국’으로 되어 있다. ≪시의전서≫에서는 다리뼈·사태·도가니·홀때기·꼬리·양·곤자소니·전복·해삼을 넣고 끓인다고 하였으니, 지금의 설렁탕과 흡사하다.
사실 곰탕과 설렁탕의 차이점은 각각의 전문 음식점에서 맛본 일반인은 물론 전문 식도락가조차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곰탕은 설렁탕과 요리법은 비슷하지만 재료에서 차이가 난다. 설렁탕은 뼈와 잡고기나 그 밖의 내장으로 낸 국물이며, 곰탕은 고기와 깔끔한 내장 등 비교적 고급 부위로 낸 국물을 사용하여 고깃국물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설렁탕보다 국물이 맑은 편이다. 그러나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곰탕은 설렁탕과 마찬가지로 사골 국을 사용하여 뽀얀 색인데 아무래도 고기로만 만든 국물은 맑고 맛이 상대적으로 밍밍해서 호불호가 갈리는 반면 설렁탕의 사골 국물은 맛이 진하여 더 선호하게 되는데, 들어가는 재료로는 순 쇠고기보다 사골이 가격이 더 싸다. 곰탕은 설렁탕과 같이 사골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고기를 많이 넣고 끓이다보면 국물이 다시 맑아진다. 하지만 가끔 뿌연 설렁탕을 곰탕이라고 파는 곳이 있고 반대로 맑은 곰탕을 설렁탕이라고 파는 곳도 있으니 요새는 이런 정의가 통용되지 않는다.
곰탕 전문집으로 여러 군데가 손꼽히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주시가 곰탕으로 유명하다. 사골을 전혀 쓰지 않으며 일반 곰탕과 달리 그 맛이 아주 독특하여 따로 명사화하여 ‘나주 곰탕’이라고 부른다. 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잊지 못할 진한 맛으로, 맛들이기 시작하면 나주 근처를 들릴 때마다 찾게 된다고 한다.
광주 조선치대에 몸담고 있을 시절 점심시간에 나주에 유명한 ‘나주곰탕’을 먹으러 자주 갔었다. 광주에서 나주까지는 왕복 3-40분 정도면 충분하였고 맛집을 찾는 호사를 부리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나주에는 소위 ‘나주곰탕 골목’이 있어 좁은 골목 안에 허름하고 나지막한 추녀의 한옥집이 여러 채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저마다 원조곰탕이라는 간판을 걸었지만 맛은 별 차이가 없었다. 작은 방에서 무릎을 포개고 앉아서 먹는 곰탕의 맛은 그야말로 기가 막혔었다. 수육 한 접시를 추가하여, 토렴한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밥을 한 숟가락 크게 떠서 그 위에 큼지막하게 썬 잘 익은 깍두기를 얹어 입이 메워져라고 먹는 그 맛은 행복 그 자체이었었다.
소의 꼬리로 만드는 꼬리곰탕도 별미다. 아르헨티나에서는 1960년대 중반 당시에 아르헨티나로 온 한국 이민자들이 처음에 소의 내장과 뼈, 꼬리 같은 잡 부위는 먹지 않고 버리거나 애완동물 사료용으로 주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안심이나 등심 같은 고급부위는 아닐지라도 고국에서 비싸서 못 먹던 소고기를 공짜로 원 없이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횡재였다. 나중에는 그곳에서도 일정한 가격이 형성되어 잡부위를 공짜로 얻거나 공짜나 다름없는 헐값에 구해서 꼬리곰탕과 곱창구이, 설렁탕 등을 만들어 먹게 되었다고 한다. 현지인들은 처음에는 그런 하찮은 먹잇감을 즐기는 한국 이민자들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나중에 꼬리곰탕 맛을 보기 시작하여 그 맛에 놀랐고, 마침내 아르헨티나 꼬리곰탕이라는 요리가 등장했다고 한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데 독일은 내장부위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하기는 했지만 역시 소꼬리는 먹지 않은 부위라서 현지 한인들이 소꼬리를 거저 얻어다 먹었는데 나중에 독일인들도 맛보기 시작하면서 요즈음은 통조림으로도 개발되어 현지인은 물론 동양계 이민자의 인기 품목이 되었다고 한다. 전남치대 학장을 역임하신 양규호 교수님도 독일에 방문 교수로 체류할 시절 꼬리곰탕 통조림을 즐기셨다고 한다.
http://www.chihak.co.kr/news/15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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