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를 살피는 치과의사지만 개원의는 치아만 살필수는 없어
병원 운영 신경써도 환자에 필요치 않은 치료는 안된다 다짐
정 석 환
감탄치과 원장
마지막 환자에게 인사를 건네고 진료실 불을 끈다. 직원들이 돌아가고 나면 치과에는 낮 동안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남는다. 냉장고의 낮은 진동, 환풍기가 멎는 소리,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시작되는 내일의 일들. 문을 잠그는 손은 제법 익숙해졌지만, 생각을 잠그는 법은 아직 배우지 못했다. 개원한 지 일 년 반이 되었다.
개원 전에는 내 병원이 생기면 조금 더 자유로워질 줄 알았다. 내 뜻대로 진료하고, 내 판단으로 하루를 꾸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틀린 예상은 아니었다. 다만 그 자유에는 퇴근 후에도 일할 자유와, 휴일에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할 자유가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계약서의 좋은 조항만 읽었던 셈이다.
치과의사는 치아를 살피는 사람이지만, 개원의는 치아만 살펴서는 지낼 수 없는 사람이다. 임대료와 재료비, 직원들의 급여일이 달력에 나란히 앉아 있다. 매출이라는 숫자는 들어올 때에는 제법 의젓하다가, 나갈 곳을 찾아 떠나고 나면 금세 초라해진다. 예상하지 못한 장비 수리비 앞에서는 한동안 말수가 줄어든다. 치과도 결국 생계를 이어가는 일터라는 사실을, 나는 진료가 끝난 뒤에 더욱 선명하게 배운다.
우스운 것은 나의 변덕이다. 환자가 많은 날에는 좀 쉬었으면 싶다가도, 예약표가 비어 있으면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부터 찾는다. 바쁜 날에는 시간이 없어서 지치고, 한가한 날에는 시간이 많아서 불안하다. 이쯤 되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예약표인지, 예약표를 들여다보는 나 자신인지 의심해 볼 만하다.
하루 매출에 기분이 흔들리는 나를 발견하면 조금 부끄럽다. 그렇다고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만큼 초연하지도 못하다. 병원이 문을 열려면 비용을 감당해야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도 지켜야 한다. 다만 숫자를 확인하는 일과 숫자에게 내 하루의 평가를 맡기는 일은 다를 것이다. 나는 아직 그 둘을 자주 혼동한다.
친구와의 약속은 다음으로 미루고, 여행은 형편이 좀 나아지면 가기로 한다. 몸이 좋지 않은 날에도 몸보다 예약표를 먼저 살핀다. 정작 쉬는 날이 와도 마음은 병원 근처를 서성인다. 누구도 출근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나는 혼자 출근해 혼자 잔업을 한다. 성실함이라고 부르면 그럴듯하지만, 때로는 불안을 내려놓지 못하는 습관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서도 낮의 장면들이 되살아난다. 설명을 들으면서도 표정이 풀리지 않던 환자, 조금 더 천천히 물었어야 했던 질문, 직원에게 무심코 짧게 건넨 말. 진료할 때에는 눈앞의 일을 처리하느라 바빴는데, 일이 끝나고 나서야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그러나 반성까지 밤새워야 성실한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닐 텐데, 내 마음은 좀처럼 그 말을 듣지 않는다.
개원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생각보다 작은 숫자에 흔들렸고, 사소한 말에 오래 마음을 썼다. 혼자 결정할 수 있다는 말에는 결과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 숨어 있었다. 환자에게는 차분히 경과를 지켜보자고 말하면서, 정작 내 병원의 성장은 조급하게 재촉하는 나를 보기도 한다.
그런 날에도 환자의 짧은 인사에 마음이 놓이곤 한다. 이제 음식을 씹기가 한결 편해졌다는 이야기, 다음 검진 때 다시 뵙겠다는 약속. 하루의 마감표에는 적히지 않는 말들이다. 그렇다고 그 말들이 임대료를 대신 내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왜 이 일을 택했는지까지 잊어버리지 않도록 붙들어 준다.
나는 좋은 치과의사이면서 형편이 나쁘지 않은 자영업자이고 싶다. 둘 중 하나를 부끄러워하거나, 다른 하나를 핑계 삼고 싶지는 않다. 내 병원을 걱정하는 마음은 필요하지만, 그 걱정이 환자에게 필요하지 않은 치료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책임져야 할 불안과 환자에게 설명해야 할 치아의 상태를 구별하는 것. 적어도 진료 의자 앞에서는 그 선을 지키고 싶다.
일 년 반의 경험으로 삶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매출을 확인하고, 뜻밖의 지출에 한숨을 쉬며, 진료가 끝난 뒤에도 내일을 걱정한다. 다만 걱정이 모두 사라진 다음에야 좋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조금 알 것 같다.
오늘도 문을 연다. 나를 믿고 찾아와 조심스레 입을 벌리는 사람 앞에 앉는다. 그분이 맡기는 것은 치아만이 아니라, 잘 알지 못하는 치료를 받아도 괜찮으리라는 믿음일 것이다. 설명을 서두르지 않고, 필요한 치료를 성실히 하고, 한 번 더 불편한 곳을 묻는다. 진료가 끝나도 내 일은 끝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를 믿고 찾아와 주신 환자들을 위해,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