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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07/11  치학신문
뇌리를 지배하는 언어
오복만평

 

 

 이 재 윤
 
 덕영치과병원장
 
 본지 명예회장

 

 

 

 

 

 우리 한국의 말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기 전부터 시제가 분명하고 뉘앙스가 분명하여 아가 다르고 어가 다른 여러 종류의 낱말들이 과학적인 체계를 가지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태어났고 팔도강산 방방곡곡에 서로 잘 통했다.
 지방마다 조금씩 다른 사투리도 있고 억양이 달라도 결국은 통할 수 있었다.
 그 후에 세종대왕이 한글창제를 함으로써 언어의 소통이 한결 쉽게 되었다.
 우리의 언어는 이조시대에 의성 상주의 말이 서울에서 뿌리내려 표준말이 되었다고들 하는데 여기서는 그 진위를 논하지는 않겠다.
 우리 말은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하며 터키, 중앙아시아, 몽골에 걸쳐 있어 한국어, 일본어, 만주어, 핀란드어, 헝가리어, 퉁구스어 등이 여기에 속한다.
 20여년 전부터 언어를 연구하기 위하여 일본, 소련, 중국, 카자흐스탄, 티베트 등지를 여행하며 우랄알타이어를 귀 기울여 들었다.
 그것이 기회가 되어서 카자흐스탄의 알마트에 있는 예술대학에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티베트를 여행할 때 해발 3,000 미터가 넘는 하늘에 맞닿은 마을을 들렀다.
 20호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는데 우리는 해가 저물 때 내일 비행기 시간도 있고 해서 숙소를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자 함께 자리를 한 그 마을 사람들이 제발 하룻밤 묵고 가라고 애원을 했다.
 한 달이 지나도록 찾아오는 사람하나 없는 마을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한국어로 기릅다 혹은 기립다고 하는데 그립다의 방언이라고 辭典은 말하지만 기립다는 그립다 보다 한층 간절함을 나타낸다.
 그래도 우리는 일정이 있는지라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우리의 발길을 돌렸다.
 그들과 약간 멀어질 때 그들 중 한 여인이 “사-랑”이라고 고함을 쳤다.
 우리가 늘 쓰는 사랑이라는 말에 나는 놀라서 다시 가서 “사-랑”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그 뜻은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데 나를 뿌리치고 가는 남자를 원망할 때의 말”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들이 여자보고 쉽게 사랑한다고 하는데 남자들이 너무 쉽게 사랑한다는 말을 쓰지 않나 생각도 해본다.
 고전에 나오는 “가시리”와 비슷하다.

 

 

 또 우리나라의 가요 아리랑과도 너무나 흡사하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구절이 떠오른다.
 우리 말이 언어는 우랄알타이어에서 유래 되었지만
 시간을 두고, 세월을 두고, 역사를 두고 사람에서 사람에게 전해 온다.
 그 언어들은 우리뇌리에 비수처럼 꽂혀서 언어뿐이니라 우리의 관념까지 붙들고 있다.
 롱펠로우의 時를 보자.
 내가 부른 노래 내가 쏜 화살은 흔적 없이 날아갔지만 뒤뜰 참나무 둥치에, 아가씨의 뇌리에 박혀 남아 있다고 했다.


화살과 노래

 

                                   -헨리 롱펠로-

 

나는 화살을 쏘았네.
그 화살은 저 멀리로 날아가 버렸네.
하늘 높이 사라지는 그 자취
그 빠름을 미처 따를 수 없었네.
 
나는 노래를 불렀네.

 

내 노래는 숲 사이로 사라져 버렸네.
뛰어난 초인의 예리한 눈이라도
사라지는 그 노래를 잡지 못했네.

 

세월이 흐른 뒤 나는 보았네.
참나무 밑동에 꽂혀있는 그 화살을
무심히 퍼지는 목동의 피리가
가슴을 울리던 내 노래인 것을.

 


 진료실에서 의사가 한 말 한마디는 환자의 뇌리에 박혀서 잊혀지지  않는다.
 30년 전 교정 시술료가 지금에 비하여 매우 비쌀 때 교정의사가 환자에게 교정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그때는 형편이 어려워서 당장은 못하지만, 나중에 돈을 벌면 반드시 교정을 하게 된다.
 20년 전 어느 할머니를 치료하고 있을 때 데리고 온 손자가 자꾸 얼굴을 쑥 내밀어 관찰하려고 했다.
 할머니는 연방 “저리 가 있거라”고 했다.
 나는 “봐도 괜찮습니다. 그냥 보게 놔두세요.
 나중에 커서 치과의사가 될 수 있습니다.” 고 했다.
 15년이 지나서 그 할머니는 훨씬 더 늙어 거동이 불편한 모습으로 지팡이를 짚고 우리 병원에 다시 찾아왔다.
 대학병원에 갔더니 1주일 입원해서 수술하자고 제안했지만 지금 이 나이에 입원을 하는 게 마땅찮아 원장님의 친절한 “치과의사 된다는 말”이 생각나서 우리치과를 다시 찾아왔다고 했다.
 구강 내를 살펴보니 아래턱 치근골 부위가 부골이 되어서 냄새가 지독했다.
 지름 2-3cm나 되는 부골이 두 개가 있었다.
 골다공증 약을 몇 년 먹었다고 했다.
 나는 이 날 이 부골을 적출하고 일주일 후 다시 나머지 작은 부골들을 적출해서 깨끗이 낫게 되었다.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뜻은 15년 전에 대수롭지 않게 한 의사의 한 마디는 그동안 잊지 않고 그 할머니의 뇌리를 지배했던 것이다.

 

 -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

 

<언어학박사 jaeyoon37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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