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 어려울수록 당사자간의 성의와 노력 필요
소통의 근본은 내가 아닌 나머지 세계에 대한 배려
김 용 호
서울 김용호치과
재미난 얘기들을 SNS로 심심찮게 보내주는 치과의사후배가 있다. 언젠가 당혹(^^)스럽게도 아래와 같이 영어로 된 메시지를 보내왔었다. 그때는 대충 보고 피식 웃고 말았는데, 어렵고 긴 영어가 아니라 휴대폰을 열 때 어쩌다가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
Recently a survey was conducted by the U.N. worldwide.
The question was,
“Would you please give your opinion about the food shortage in the rest of the world?”
The survey was a huge failure.
In Africa, they did not know what ‘food’ meant.
In Western Europe, they did not know what ‘shortage’ meant.
In Eastern Europe, they did not know what ‘opinion’ meant.
In South America, they did not know what ‘please’ meant.
And in the U.S. they did not know what ‘the rest of the world’ meant.
맨 처음 읽었을 때는 ‘U.N.이 성의없이 설문조사를 했나보다’ 했던 것 같다. 그 다음 며칠 후에 읽었을 때는 ‘그렇지…… 아프리카는 소위 음식이라는 것이 형편따라 천지차이라 뭐가 음식인지 애매모호할 터이고, 서유럽은 부족함 없이 사는 나라가 많다보면 아쉬움이 없을 터이고, 동유럽은 제 생각 표현하기 힘든 역사를 가진 나라가 많고, 남미는 다소 거친가? 그리고 미국은 지구가 전부 자기나라라고 생각한다는 얘긴가보다……’라고 나름 생각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여러 번 읽어보며, 다른 대륙, 다른 나라간의 차이를 한 문장 안에 나열된 단어들로 재치있게 표현했구나라며 영어조크도 이 정도 이해하니 대견(?)하다며 혼자 우쭐거리곤 했다.
재작년 가을이었나보다. 필자의 치료에 만족한 60대 초반의 신사 환자분이 ‘다음에 모친을 모시고 올테니 잘 좀 봐달라’고 했다. 날을 잡아 80대 후반의 모친을 모셔 초진을 하며 이런 저런 대화 중에 이 분이 젊으셨을 때 광화문에서 큰 약국을 하신 약사님이신 걸 알게 되었다. 연세가 많으시지만 과거 직업경험상 노화현상과 치료의 개념 등을 잘 이해하실 거라는 생각에 반가웠다. 대략적인 치료계획을 설명드리고 진단모형인상을 뜨는데, 아드님(필자의 환자)이 어머니가 좀 까다로우시니 특별히 신경을 써달라고 재삼 부탁을 했다. 2개월여에 걸쳐 보철치료가 마무리되었는데, 그때까진 다 만족스러워하던 분이 다짜고짜 ‘이렇게 어색할 줄 알았으면 치료 안 받았을거다’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정말로 황망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필자는 환자와의 소통이 치과임상에서 가장 중요한 거라 후배들에게 역설하며, 어쩌다 강의제의라도 받으면 그 테마로 강연하기를 즐겨하고, 적어도 환자와의 대화와 소통에 관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진료해오고 있던 터인데……. 하지만 상세한 임상술기의 증례적용에 문제는 전혀 없었고(사실 지난 주에 오셔서는 1년 만에 이제 편하다고 웃으며 만족하셨다), 필자가 이 분을 치료하며 보철물은 ‘시간’이 지나며 적응된다는 말씀을 드렸었는데, 정말로 ‘몇 시간 지나면’ 적응되는 것으로 오해하셨던 게 화근이었다. 지난 주에도 같이 온 아드님의 말씀이 원래 그런거 자세히 되묻는 성격이신데, 아들이 치료 잘하는 선생님이라고 설득당해서 오시는 과정에서 아마 그냥 넘어가셨던 것 같다고 한다. 아무튼 필자는 이 환자분에 관한한 소통이 아니, 소통의 노력과 소통의 확인이 부족한 술자였다고 고백한다.
가끔 생각한다. 예컨대 음식, 풍요로움, 자유로움, 예절, 상대방에 대한 인정 둥의 기준의 차이가 소통의 완전한 불능을 야기할 것인가에 대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저위의 U.N.설문은 분명히 무성의한 번역으로 각 대륙에 던져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U.N.이고 worldwide survey라면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시간이 걸려도 각주를 달아가면서라도 정확한 의사전달이 된 것이 확인될 때까지 설문지를 만드는 게 마땅한 도리가 아닐까? 소통의 심각한 부전은 성의와 노력의 부족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자주 생각한다. 하루에도 수 없이 하는 말들과 표현들……. 사람간의 감정과 의사표현에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정확하고 오해없이 의사소통이 되도록 해야 적절한 것일까? 한 때는 ‘중요한 만큼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여 의사전달한다’는 나름대로의 답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은 중요한 일이 아닌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예전의 답이 마음에 안든다. 그저 주어진 삶의 유한함에 두 손 들고 내었던 답이었다는 생각이다.
필자는 齒醫로서 여태껏 진료로 대한 사람과의 만남이 적지 않았을 知天命의 시절에, 아직 이런 질문에도 밝은 답을 모른다. 마땅히 겸손할 일인데, U.S.가 ‘the rest of the world’ 가 있는 지도 모르는 채, 매일 환자 앞에서 다 아는 척하고, 심지어는 정말 못되게도 알고도 모르는 척 한다.
<다음호는 구본석원장님이 맡습니다.>
http://www.chihak.co.kr/news/9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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