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분열’하는데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붓고 있어요”
“아빠는 해가 뜨면 사라졌다가 나타나 친한 척 해요”
김병준
서울·에셀치과 원장
저는 김루아입니다. 우리 아빠 딸이고요 태어난지 45일 되었습니다. 제가 45일 살아보니 세상이 참 넓다는 것을 느낍니다.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는 손을 쭉 뻗으면 벽이었는데 세상에 나오니 손이 아니라 발을 쭉 뻗어도 허공인 것이 아직도 당최 적응이 안 되네요.
요즘도 손발 쭉 뻗어보고 깜짝 놀라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한답니다. 그런데 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요. 이 글의 제목을 누가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저 신생아 아니거든요? 의학적으로 신생아는 생후 4주 미만의 아기를 뜻하는 말이니까 저는 신생아 졸업한지 벌써 2주도 넘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좀 해 주셨으면 합니다.
오늘은 제 근황에 대해서 말씀드려볼까 해요. 음 제가 요즘 주로 하는 일은 자는 겁니다. 나이가 드니 잠이 약간 줄어드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은 잠자는 것입니다. 낮에 잠깐 빈둥거리면서 노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 아니 젖 먹는 시간 빼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잠으로 보낸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밥 먹고 잠만 잔다고 해서 혹시라도 저한테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하실까봐 말씀드리는 건데요. 저는 지금 엄청난 생산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설명드리자면 복잡하니까요 간단히 ‘세포분열’이라고만 해두죠. 그러니까 저는 요즘 세포를 만드는 데에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붓고 있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하루도 쉰 적이 없습니다. 저 태어날 때 2.9kg이었는데 지금은 4.2kg이니까 지금까지 만든 것만 해도 꽤 될 거에요.
요즘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뭐냐하면요, 두말 할 것도 없이 엄마,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엄마 젖이에요. 아 이건 정말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어요. 지구상의 모든 좋은 표현을 다 붙여도 부족할 정도예요. 정말이지 최고에요. 저는 이것만 있으면 제 인생에 더 이상 필요한 게 없답니다. 엄마 젖은 저에게는 일용할 양식일 뿐 아니라 친구이자 장난감이자 수면제이자 안정제에요. 무인도에 가게 되어도 저는 젖을 물려줄 엄마만 있으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엄마 젖이 무한정 나오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한번 먹고나면 좀 기다려야 해요.
저는 지금 위가 작아서 한번에 조금씩 밖에 못 먹거든요. 한번 먹는데만 30분 이상 걸리는데 먹고 돌아서면 금방 다시 배가 고파요. 엄마젖을 다 먹고도 좀 모자란 것 같으면 엄마가 분유를 타서 젖병에 넣어서 물려 주시는데요. 이건 모양만 비슷하게 흉내냈지 엄마 젖하고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정말 심하게 배고플 때 빼고는 이 실리콘 덩어리는 제가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습니다.
아빠요? 음 아빠는 엄마보다는 좀 별로인 것 같아요. 저를 안아주실 때 가슴이 좀 딱딱해서 불편하기도 하고요(엄마 품은 정말 폭신하거든요). 게다가 아빠는 해가 뜨면 저랑 놀아주지도 않고 어디로 사라졌다가 해가 져서 제가 잘 때쯤 되면 다시 나타나서 막 친한 척을 해요.
그래도 엄마가 제게 젖 물리는 데 전념하실 수 있도록 아빠가 설거지도 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갖다 버리고 하시는 걸 보면 아빠도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일주일에 세번 목욕은 늘 아빠가 도맡아서 해주고 계세요. 아직은 좀 서툴러서 자꾸 제 귀에 물이 들어가게 하고 있긴 하지만요. 곧 나아 지시겠죠. 하지만 아빠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엄마를 넘어설 수는 없는 이유는 아빠는 저에게 젖을 주실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가요? 생물학적 한계인 걸 어쩌겠어요. 제가 울음을 멈추지 않으면 아빠는 결국 저를 엄마한테 데려다 주실 수밖에 없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엄마 젖이 바로 제 울음을 멈추게 하는 조커(Joker)이자 치트키(cheat key)이거든요.
아 그리고 아빠는 센스가 좀 부족하다고 할까 저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시는게 많아요. 제가 밤에 자다가 배고프면 깨서 좀 뒤척이는데요. 이 때 엄마는 귀신같이 일어나셔서 제게 젖을 물려 주시거든요. 그런데 아빠는 세상모르고 쿨쿨 주무십니다. 제가 미처 울기도 전에 엄마가 알고 잠에서 깨시는 걸 보면 저는 뭐랄까 마치 엄마랑 블루투스 같은 걸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제가 배고플 때, 졸릴 때, 안아달라고 할 때, 귀저기에 똥 쌌을 때, 그냥 좀 짜증났을 때, 다 다르게 울거든요. 그런데 아빠는 이게 아직 구분이 잘 안되시나봐요. 엄마는 제 눈빛만 보아도 다 아시는데 말이죠.
그래도 우리 아빠 한달 전과 비교하면 엄청 발전하신 거예요. 처음엔 저를 제대로 안지도 못해서 쩔쩔매고 헤매셨었다니까요. 제가 처음 귀저기에 똥쌌을 때는 또 어땠게요.
아, 이제 또 슬슬 잠이 오려고 해요. 오늘도 엄마 품에서 젖 먹다 잠들어야지. 엄마를 불러야 겠어요. 쉼 호흡 크게 하고 아랫배에 힘주고 “응애~!”
<다음호는 이근용 원장님이 맡습니다.>
http://www.chihak.co.kr/news/10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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