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발달한 중국에도 보이지 않는 우리 고유 음식
조재오
경희대 치전원 외래교수
오륙십년 대만해도 농촌에서 벼농사나 보리농사로 수익이 생기는 일 이외에 목돈을 만질 기회가 거의 없어 집집마다 돼지를 키우곤 하였다. 쌀 뜨물에 남은 밥을 말아 쌀겨를 섞어서 먹이로 주곤 하였다. 마을에 큰일이 있어서 돼지를 잡는 날은 온통 동네 잔치가 되었었다. 어른들은 김이 모락모락나는 돼지 간을 왕소금에 찍어서 막소주 한잔씩 하고 오줌보는 바람을 넣어 동네 꼬마들의 축구공놀이감으로 충분하였었다. 그나마도 돼지를 잡는 일은 혼인 잔치나 마을 서낭당 고사, 장례 때가 아니면 좀체 없는 일이었다. 정작 재래종 돼지는 왜그리 자라지 않는지……. 고생고생하고 가족이 정성을 들여도 100근(60kg) 넘기가 쉽지 않았다.
고기맛 좋고 빨리 자라라고 수퇘지의 불알까는 건 시골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는데 사금파리 같은 걸로 음낭을 절개하고 고환을 적출한 후에 겨같은 것을 묻혀서 지혈하고…… 별로 suture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고환은 소금을 쳐서 구어 고기 구경을 하기 어려운 꼬마들의 보양식으로 했었다.
돼지(Sus scrofa domesticus) 또는 집돼지는 가축화된 멧돼지(Sus scrofa)를 말하며, 가축돼지는 멧돼지과에 속하며 학명은 Sus domestica 이다. 전 세계에서 약 8억 4천 마리가 사육되어 사람들의 중요한 영양원이 되며 이미 약 9,000년 전부터 중국과 근동 지역에서 가축화되기 시작하였다. 멧돼지는 날카로운 엄니로 난폭하게 공격하여 맹수의 왕인 호랑이나 곰도 함부로 넘보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돼지는 우리가 연상하는 것과는 달리 개와 돌고래에 견줄 만큼 매우 영리하며 깔끔한 것을 좋아한다.
돼지는 고기를 얻기 위해 사육되었지만, 가죽은 방패, 뼈는 도구와 무기, 털은 솔을 만드는 데 쓰이기도 했다. 이슬람과 유대교같은 종교에서는 돼지를 부정한 짐승으로 보아 금기시하여 돼지고기를 식용하지 않는다. 중동지방에서, 지리적으로 사육하기 적합하지 않은 가축이라는 것은 돼지를 식용으로 생소하게 여긴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 밖에, 문화적인 요인에서 기인하는 기피현상이 있다.
돼지는 몸이 뚱뚱하고 다부지며, 털은 거칠고 뻣뻣하다. 머리는 짧고 두툼한 목으로 몸통과 바로 연결돼 있고, 머리 앞으로 툭 튀어나온 주둥이에 코가 있다. 가죽은 두껍고, 몸을 식힐 수 있는 땀샘이 없기 때문에 몸을 식히기 위해 진흙탕에 자주 뒹군다. 눈이 작아 잘 볼 수 없지만, 후각이 예민하여 먹이를 잘 찾는다. 돼지의 꼬리는 짧고 대개 말려 있다. 코는 넓은 판처럼 생겼고, 가운데에 콧구멍이 두 개 있다. 이는 모두 33~44개로 이 중 8개는 송곳니로, 다 자란 수퇘지의 경우는 날카로운 엄니로 자란다. 이 엄니는 땅을 파는 데나 공격 무기로 사용한다. 돼지는 위험에 부닥치면 보통은 도망을 가지만, 막다른 곳에 도달하면 돌아서서 덤비거나 문다. 발가락이 네 개이고 각 발가락 끝에는 발굽이 있는데 가운데 두 발굽은 갈라져 있다.
돼지는 십이지 중 열두 번째 동물로 해(亥)에 해당하며 역사 속의 돼지는 주로 제사의 희생으로 등장한다. 지금도 고사지낼 때 돼지머리는 빠질 수 없는 필수품으로 웃는 돼지는 웃돈을 더 주면서 더 비싸게 거래된다. 돼지는 복의 상징물이기도 하며. 흔히 돼지꿈을 꿨다고 하면 길몽이라고 여겨진다.
한국의 재래종 돼지는 체질이 강건하고 질병에 잘 견디는 반면 털색이 검고 몸이 작으며 배가 아래로 처지고 발달이 좋지 않다. 한배 새끼수는 7~8마리로 경제성이 떨어져 1930년대에 버크셔종으로 누진 교배시켰다. 지금은 순수한 형태의 재래종은 찾아보기 어렵다.
돼지는 오래전부터 서민의 친숙한 먹거리로 어느 부위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이 즐기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이한 요리의 형태가 태(胎) 중의 새끼돼지를 갖은 양념을 하여 찐 찜과 탕이다. 애저란 태중의 새끼돼지를 일컫는 말이며, 이 음식은 돼지고기 요리가 발달한 중국에서도 보이지 않는 우리 고유의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조선시대 문헌인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 ≪오주연문장전산고≫ ≪시의전서(是議全書)≫ 등에 나타나고 있으며, 현재도 전라도 지방에서 많이 먹고 있는 음식이다.
돼지는 보통 3개월마다 8~15마리씩 새끼를 낳는다. 사람 분뇨까지 먹는 무던한 식성에 새끼까지 많이 낳으니 농가에서는 얼마나 고마운 가축이었을까. 물론 문제도 있었다. 워낙 새끼를 많이 낳다보니 뱃속에서 죽은 채 태어나기도 했고 그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어미젖을 먹다 깔려죽기도 했다. 돼지를 치면서도 돼지고기 한 점 맛보기 어려웠던 농가에서는 이 죽은 새끼돼지를 그냥 버리지 못한 것이 애저요리의 시작이었다.
http://www.chihak.co.kr/news/8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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