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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06/26  치학신문
엉뚱한 발상
릴레이수필

달콤한 광고는 쉬운 해결책을 갖고 있는 듯 느껴지는 유혹

 

지금도 치과 공포증은 큰 화두이며 두고두고 풀어야할 숙제

 

 


 김영주

 

 용산 김영주치과 원장

 

 

 

 

 

 

 요즘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커다란 데미지를 주고 있다. 특효약도 없고 예방주사가 나오려면 1년 이상의 시간이 요구된다고 한다.
 주사 한 방으로 치아가 나오게 할 방법은 없을까? 엉뚱한 발상이지만 이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좀 확대해 생각해보면 요즘 시술하는 임플란트가 그런 종류가 될 수 있다고도 느껴진다. 주사 한 방(마취 주사?)을 놓은 후 치아 뿌리에 해당되는 픽스처를 골 내에 안착시키는 것이기에 술 후 여러 과정은 남지만, 주사 한 방과 치아 재생이라는 어설픈 그림의 틀에 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좀 더 자세한 꿈은 줄기세포를 잇몸에 주사하여 분화라는 과정을 거쳐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모양을 갖춘 적절한 기능을 할 수 있는 치아가 나오는 것이지만….
 “자네는 왜 치의학과를 지망하였나?”
 ‘대학 면접 고사장에서 교수님에게서 나올 만한 말씀이 어떠한 것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고3 입시생의 머리에는 위의 질문이 떠올랐었다. 정작 실제 면접에서는 “교장 선생님 성함이 누구시지요?”라는 질문을 받았었다. 면접 교수님이 아마도 고교 동문이셨던 것 같다. 하여간에 “저는 앞으로 제3의 치아가 나오도록 하는 치료를 해 보고 싶어 치의학과에 지망하게 되었습니다”라는 대답을 준비하고 들어선 면접에서는 매우 현실적인 질문인 교장선생님의 존함에 대한 답변 요구를 받았었다. 꿈을 가지는 것이 청춘의 권리이기는 하지만 치의학의 ‘치’자도 모르는 머리에서는 위와 같은 생각이 맴 돌았었다.
 요즘은 어느덧 임플란트가 대중화된 시절이 되었다. 비교적 시술도 간소화되었고 고통도 많이 경감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 된다. 하지만 치의학의 ‘치’자 정도는 알게 된 지금에도 주사 한 방으로 줄기세포를 주입하여 치아조직이 발생되어 원시적이나마 치아의 형태를 갖춘 것이 잇몸에 자리하여, 노후의 이가 없어 저작의 아쉬움을 느끼는 분들에게 그런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면 인류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소견에는 변함이 없다.
 “스위스 유학을 하고 종로 YMCA에 개업한 #선생님치과로 여러분의 치아를 상담해 보세요.” 라디오에서 광고가 나왔었다. 아마도 사십 여 년전 인 칠십년 대 초반 정도였을 것이다. 그 때에는 대중 매체를 통한 치과 광고에 별다른 규제가 없던 시절이었나 보다. 아무튼 그 광고를 듣고 부모님께 한번 가보자고 했던 기억이 있다. 문제는 윗니에 덧니가 나와 있었고 감수성이 예민하던 사춘기의 필자에게 위의 달콤한 광고는 쉬운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매일 대하는 거울 속의 필자에게는 “빨리 종로 #선생님에게 안 가고 뭘 해?”라는 질문이 계속 메아리치고 있었다. 결국에는 집 근처에 다니던 곳에서 해당 치아를 발치하여 아쉬움은 남지만 도깨비 같던 것이 없어지게 되었다.
 세월은 어느 덧 사십 여년이 흘렀다. 여러 달 전 고관절 파절로 수술을 받으시고 지금도 고생을 하시는, 이제는 구십을 넘기신 어머님을 며칠 전에 뵈러 갔었다. “여기 네 치아이니 이제는 네게 주마.” 어머님은 말씀을 하시며 무엇인가를 싼 종이 뭉치를 내게 주셨다. 열어 보니 과거에 발치하였던 내 상악치아가 있었다. 아마도 아들에게서 덧니가 나오고 있었고 “어찌하여 내 아들이 저 모양이 되게 하였나?” 한심과 후회를 하였기에 그 때의 부모 심정으로는 아들의 치아를 빼게 하였던 것이 매우 가슴 아프셨기에 고이 잘 보관하여 주셨던 것이라 생각 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기에 이제는 부모가 된 심정에서 공감하며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아! 아아악! 악!”
 “좀 가만히 좀 있어라.”
 형과 치과를 방문하게 되면 늘 상 일어나던 수 십 년 전 형에 대한 진료 현장의 상황이다. 용감하지만 늘 통증에는 공포증을 느끼던 형은 과잉 반응을 하고 치과 선생님은 더욱 예민해져 악순환이 증폭되었었다. 사실 그 당시의 치과는 매우 열악하였다. 로터리 엔진이 둥그렇게 달려있었고 헨드 피스를 연결하던 구조는 마치 정미소의 그것을 축소한 듯 정교하게 설계는 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눈에는 그저 공포 그 자체의 대상이었다. 들-들 –들- 거리며 치아를 삭제할 때면 자갈밭 위를 달리는 오토바이에서의 느낌 아니 그 이상이었다. 참을성 없던 형에게는 그 자체를 상상만으로도 비명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지금은 칸막이 또는 격리된 방에서 진료를 하는 것이 표준이지만 당시만 해도 진료실과 대기실의 구분이 그저 이삼 미터의 거리에 오픈되어 있어 비명소리며 엔진 소리가 그대로 전달되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치과 공포증은 큰 화두이며 조금은 나아졌지만 두고두고 풀어야할 숙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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