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승 철
단국대학교 치과대학 명예교수
“교수님, 이런 일은 어떻게 처리하면 되나요?” 옛날 제자가 핸드폰 문자로 문의해 왔다. 대충 설명하는 문자로 보내주었더니 손에 감 한 알을 쥐고 있는 사진을 보내 왔다. 감 잡았다는 뜻임을 알아채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것들을 정확한 이론이나 확증 없이 자신의 감각적 본능으로 알아채곤 한다. 가끔은 정밀해야 할 화학실험에서도 시약 세 방울을 떨어뜨리라고 지시하는 설명을 하기도 한다. 몇 ml의 양을 제시하기 보다는 몇 방울이 더 정확하기도 하단다.
대중 집회나 대규모 관중 수를 어림잡을 때도 이 거리에 모인 사람 수가 대략 얼마나 될까 짐작할 때, 그런대로 공정성을 기한다는 명분 아래 과거엔 페르미 기법이란 방법을 쓰기도 했단다. 관중들이나 군중들이 점거하고 있는 거리나 장소의 가로 세로 길이를 측정하여 그 넓이를 계산한 다음 한 평 정도의 크기에 사람들이 앉아 있으면 4~5명 정도, 서 있으면 9~10명 정도로 추산하여 그 면적 속에 들어 있는 사람 수를 추산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사람은 항상 움직이는 동물이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나타나 이 계산법으로 나타난 숫자보다는 더 많을 것 같다. 근래에 와서 정치적 색깔을 지닌 양 집단이 서로 참여 군중들의 세를 과시하다 보니 수를 더 부풀려서 대략 수백 만 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공영 방송국의 보도국장인가 하는 높은 분은 어느 집회에 모인 군중의 무리를 보고 ‘이건 딱 봐도 몇 백 만’이라고 타 방송에서 말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아마 언론에 대한 감이 좀 떨어져서 생긴 해프닝인 것 같다. 결국 군중의 숫자를 추산하는 것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결론으로 마무리 짓기도 했다. 감이란 틀리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어설픈 말보다 더 필요한 감각 같기도 하다. ‘삼국지연의’에 적벽대전이란 부분이 있다. 조조가 막강한 수군을 갖고 동오를 공격할 때, 향후 위기감을 느낀 촉나라의 책사 제갈공명이 오나라와 동맹을 맺고자 오나라의 젊은 영웅 주유를 찾아간다. 둘은 마주 앉아 술을 권하고 거문고 같은 악기를 타며 주거니 받거니 즉흥 연주를 하는데 그 음악 연주가 서로의 감으로 이루어진다. 요즈음 서양 음악의 협주곡에 나오는 카텐자 부분인 셈이다. 연주 도중 정해진 악보 없이 그날의 연주자 감정에 따라 마음껏 표현한다. 먼저 평온한 감의 두 나라의 상태를 표현한 음악을 주고받다가 조조군이 쳐들어와 요란한 전투 장면 연주 후, 양국 간의 전통 음악 표현이 어울려져 그것이 승전보로 바뀌고 두 나라 간에 화평과 발전된 세상의 음악표현으로 끝이 난다. 한바탕 연주가 끝나고 두 사람은 헤어지는데, 동행한 사람들이 ‘아직 동맹에 대한 것은 말도 꺼내지 않으셨다’고 일러주었으나 제갈공명은 ‘음악 연주만으로 동맹이 약속됐다’고 말했다. 영웅들만이 통하는 감으로 대화를 한 문학적 표현이다. 언젠가 필자는 많은 교실원들과 함께, 과거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의 촉나라의 본거지이며, 중국에서 1백년이 넘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치과대학인 사천성에 있는 사천 구강의학원과 자매결연 차 성도에 갔을 때, 마침 관광차 들른 큰 강가에, 세계 최대 석불상 근처의 강둑이 가파른 붉은 진흙 절벽임을 보고 갑자기 삼국지의 적벽대전이 생각나서, “여기가 아마 적벽대전을 한 곳이 아닐까?”하며 ‘밤안개 낀 강에서 많은 짚 인형을 갑판에 세운 배 여러 척을 묶어 끌며, 북치고 징치며 움막 안에서 제갈공명이 술 한 잔 하며, 이 강을 따라 지났더니, 어두운 양 절벽 위에서 활 쏘는 조조군 덕분에 수십만 개의 화살을 잠깐 사이에 얻을 수 있었다’는 적벽대전 초전의 이야기로 교실원들에게 신나게 뻥을 쳤는데 이를 보던 중국 교수가 그곳은 여기가 아니란다. 가끔, 교수였던 필자도 감이 틀릴 때가 있다. 과거, 치과대학 학생 시절 임상실습 중, 발치술을 강의하시는 교수님께 “치근막과 치조골 사이에 엘리베이터 넣어서 어느 정도 힘을 주는지를 어떻게 확인하나요?” 여쭈었더니 간단히 대답해 주셨다. “감이지 뭐!” 하기야 보철물 제작용 지대치를 깎을 때도 치은 연하 0.5mm 깊이를 어떻게 확인 하는지 물어도 “감이지!”라는 당시 보철 교수님의 대답이셨다. 그간의 치과의업에서, 교과서적 이론과 더불어, 감도 많이 필요했다는 필자의 수십 년간의 경험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