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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12/31  치학신문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89>
왕궁리 유적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왕궁리 유적

 왕궁리 유적을 찾아가려면 익산 톨게이트에서 익산 시내 쪽으로 가다 나오는 금마 사거리에서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서 가다 보면 잘 가꿔놓은 구릉지에 유물전시관과 함께 나타난다. 이 유적지는 백제 왕궁터 위에 사찰이 나중에 세워진 특이한 유적지이다. 멀리 용화산(미륵산)이 보인다. 국가통치이념을 보여주는 용화산 미륵사를 배경으로 왕궁을 세웠던 것이다.


왕궁터라고는 하지만 제일 처음 보이는 것은 사찰에 있던 왕궁리 오층석탑이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가설
 나는 이곳에서 경복궁 전면을 일제 총독부 건물로 역사를 지우려 했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생각해 본다. 사라진 백제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불타버린 왕궁터를 흙을 돋아 그 위에 탑을 세웠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다. 이런 나의 생각은 역사 속에서는 무수한 전례가 있기에, 만약 그런 가설이 성립된다면, 단세포적인 인간은 천년 넘는 세월을 덮고 있어도 드러나는 역사의 진실 앞에 겸허해야만 한다. 이것은 역사를 배웠다는 사람들에 의해 오늘도 되풀이되고 있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개활지 답사 요령
 이 왕궁터를 답사하려면 왕궁 배치도를 꼼꼼히 참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금은 잘 정비되어 있고 보기 좋게 조경도 해 놓았지만 그래도 개활지여서 건물이 하나도 없는 곳이고 왕궁터와 사찰 건축물과 혼합된 곳이다 보니 지형을 미리 보고 답사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내가 처음 이곳을 왔었던 10여 년 전쯤만 해도 파헤쳐진 발굴 현장이 곳곳에 있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그저 왕궁리 오층석탑만이 덩그러니 답사객을 반겼던 기억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개활지라도 하나하나 알아보고 나서, 다시 보면 굼틀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손짓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폐사지나 이런 땅속에 묻혀있던 흔적을 찾은 곳에서 느낄 수 있는 고고학적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유홍준 선생 글에서는 답사팀의 고급반에서만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박물관에 전시된 왕궁리 항공사진인데 이런 모습을 숙지한 후 개활지는 답사하는 것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왕궁리 유적은 백제 왕궁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어 삼국시대 왕궁을 이해하는 데에 빼놓을 수 없는 유적이 되었다. 1989년부터 시작한 조사에서 궁궐, 담장, 정전, 정원, 후원, 화장실, 공방, 부엌 터 등이 확인되었다. 궁은 직사각형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담장의 길이는 동서로 약 240m, 남북 약 490m이고, 담장의 폭은 3m 정도 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담장 양쪽으로 1m 폭의 보도시설이 편평한 돌로 깔려 있었다. 궁성 안은 동서 방향으로 축대를 쌓아 남쪽인 전반부와 북쪽인 후반부로 나누었는데, 전반부에는 축대 4곳을 쌓아 경사지를 평탄하게 만들고 왕이 정사를 보고 의식을 행하던 정전 건물, 사용했던 기와를 쌓아 건물을 올린 와적기단 건물, 1동 2실 구조 건물 등을 세웠다. 후반부 북동쪽의 높은 지대는 왕이 휴식을 취하는 후원을 만들고 북서쪽의 낮은 지대에는 금과 유리를 생산하는 공방과 화장실을 두었다.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 때에 궁성으로 건설하여 사용하다가 백제 말, 통일신라 시대에 와서는 사찰로 바뀌었다. 1965년에는 왕궁리 오층석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사리장엄구를 발견하였다. 또한 대규모로 흙을 쌓은 성토층과 동서 방향으로 쌓은 축대, 당대 최고의 위생시설을 갖춘 화장실, 금속공예 기술을 보여주는 공방 등은 삼국시대 궁성의 구조와 기능을 밝히는 데 상당히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또한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된 수부명 인장와, 전달린 토기, 중국제 청자 조각 등은 왕궁리 유적의 위상과 중국과의 교류 시설도 보여준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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