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흥 우
李興雨齒科醫院 院長,哲博
내가 참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살면서 여러 차례 자문해 보았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쯤이었을까? 세상과 주변을 둘러보니, 맨 처음 보인 것은 부모님과 형제였다. 최소한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한 후, 그래도 남는 삶이 있다면 나중에 하고픈 것을 하겠다고 생각했었다. 국가를 짊어질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으면서 빚진 것 중에 적어도 부모님께는 우선 그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부모님 또한 주변에서 많은 것을 은혜 입고 사셨음을 깨닫게 되었지만, 젊은 나이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는 못하였다. 내 딴에는 부모님께 조금 도리를 한다고 작은 뜰이 있는 집을 마련한 뒤에, 아내의 창작 공간을 만든다고 시작한 일이 공동의 지역 문화 활동으로 다소 방향이 바뀌기도 했다.
아마 예닐곱 살쯤의 기억일까? 대농은 아니었지만, 추수가 끝나면 할아버지가 쌀 몇 가마니를 매년 보내주셨다. 쌀이 동인천역에 도착하면, 기차역 앞에 늘어서 있던 수레꾼 중 한 사람이 손수레에 쌀을 싣고 오르막고개에 있는 우리 집까지 운반했다. 지금 보면 그리 가파른 경사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그 고갯길이 얼마나 숨차게 보였는지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고 수레가 뒤로 밀릴세라 내심 조마조마 인력거꾼의 리어카를 끝에서 밀며, 마르고 힘없는 사람이 수레 끄는 모습에 목이 메어 나중에 크면 착하면서도 강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아마 최초의 사회의식이었고, 그래서 조금 여유가 생긴 나 같은 이가 지역에 도움이 될만한 일을 자진해서 해야 사회가 좋아진다며, 흉내에 불과했어도 나름 민간 문화 활동에 참여했다.
대학 진로를 결정할 때 하늘과 땅에 대한 귀소본능 때문인지 천문학자나 농부를 스치듯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사실 무엇이 되기보다는 그냥 자유롭게 있고 싶었다.
예순이 넘어 그때도 살아있다면 찾아서 해보겠다던 마음속의 소망들을 지금 진행하고 있는가. 간절하게 뚜렷한 바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책을 한두 권 쓰게 되면 쓰고 여행이나 해 볼까 하는 정도였다. 절절히 원하는 바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바라던 바에 크게 거슬리지 않게 세월이 갔다. 되돌아보면 사람과 자연을 만나 사귀고 여행하고, 때로 예술과 철학 근처를 어슬렁대고, 환자를 보고 주변 일을 하며 이나 저나 시간이 흘러갔다.
집 주변 해안가에는 하루에도 두 번, 밀물과 썰물로 파도가 인다. 우주의 물질, 에너지, 시공은 서로 영향을 주며 작용한다. 하늘에 있는 달이 지구 바닷물에 영향을 주듯, 별들의 운행이 어쩌면 나도 모르게 내 소망들과 생각들을 밀고 당겼을지도 모르겠다.
작금 1년 반 동안 코로나바이러스로 세상이 가라앉았다. 내 몸에도 2kg 정도의 미생물이 함께 살고 있다는 데, 대장균에게 나는 우주일까? 어떤 게 우주이고 어떤 게 나인가? 박테리아는 내 속에 살고, 나는 우주 속에 살고 있다. 오늘 또 아침에 일어나, 저 너머 펼쳐진 산과 갯고랑을 바라보며, 나는 무엇을 바라서 무엇이 되었는지 詩 한 줄을 풀어본다.
〈글쎄 나는?〉
예닐곱 살 옛날은 생각 안 나는데
글쎄 어느 날 보니 내가 있는 거야, 하늘을 보고 나를 보는.
사람들 말로는 하늘의 별 먼지가 날아와 내가 됐다는데,
하늘의 뭉게구름이 어느새 빗살무늬 구름이 되듯
볼 팽팽했던 내가 벌써 이마 주름진 나로 있는 거야.
나는 어디 있냐고, 뭉게구름이 나였는지 빗살무늬가 나였는지 되물어 보면,
글쎄 비가 되거나 눈이 되어 언젠가는 슬며시 땅에 스며들기도 한다는 거야.
http://www.chihak.co.kr/news/15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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