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유 성
前경기도치과의사회 회장
부천·이지치과 원장
독일군의 내적 지휘(Innere Führung)는 단순한 군사 지휘 방식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반성 위에서 만들어진 지휘 철학으로, "군인은 먼저 민주국가의 시민이며, 그 다음에 군인이다."라는 원칙을 담고 있다. 이를 '제복 입은 시민(Staatsbürger in Uniform)'이라고 한다.
이 철학은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충성, 그리고 양심에 따른 책임을 강조한다.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지만, 명백히 부당하거나 위법한 명령에 대해서는 "상관의 명령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직은 복종으로 유지될 수 있지만 민주주의는 양심과 책임으로 유지된다는 역사적 교훈이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조직적 복종과 개인 양심의 충돌은 늘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군인은 어디까지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가. 최근 육군의 한 고위 장성이 독일군의 내적 지휘를 군의 지휘 철학으로 언급한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비단 군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직접민주주의가 사실상 어려운 조직에서는 대의제도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핵심 장치이며, 대의원은 구성원의 뜻을 대신하는 매우 중요한 직분이다.
지난 3월 10일 선거 이후 치협은 선출직 직무정지라는 초유의 상황을 겪고 있다. 이어 4월 25일 정기총회에서 선출된 임원들마저 직무정지 가처분 소송의 대상이 되었고, 현재 법원의 결정을 앞두고 있다.
당시 총회에서 임원을 직접 선출한 이유는 분명했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회장 당선자의 위임 선출 관행을 보완하고, 혹시라도 선출직에 대한 직무정지 결정이 내려질 경우 총회에서 선출한 임원들이 협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지난 3월 5일 임시총회에서 논의되었던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50여 명의 대의원들이 재판부에 제출한 사실확인서에는 "임원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가처분이 인용될 경우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받았다면 보다 신중한 논의와 의결을 요구했을 것"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만약 '사실확인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총회 운영 과정에 대한 중요한 문제 제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기억하는 총회 당일의 논의와, 총회 직전 여러 대의원 및 관계자들과 나누었던 대화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총회 며칠 전 당시 총회 의장 출마 예정자와 통화했고, 대의원 경험이 풍부한 현직 지부장과도 의견을 나누었다. 두 사람 모두 지난 3월 5일 임시총회에서 위임 선출 방식의 한계가 지적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총회에서 직접 임원을 선출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설명하였다. 혹시 직무정지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협회가 총회에서 선출된 임원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임원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러한 설명을 들었다면 달리 행동했을 것이다", "가처분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주장은 당시 상황과 쉽게 조화되기 어렵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사실확인서 작성 과정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몇몇 대의원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았다. 일부는 친분 있는 선배의 부탁으로 서명했다고 했고, 일부는 지역에서 오래 알고 지낸 동료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또 일부는 문서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충분히 확인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심지어 총회 당일의 서명과 제출된 서명이 다르다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례도 있었다.
물론 이러한 사례만으로 모든 대의원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법부에 제출하는 사실확인서는 개인적 부탁으로 작성할 문서가 아니다.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자료이며, 그 내용에 대해서는 작성자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대의원은 특정 진영이나 개인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라, 약 100여명의 회원을 대신하여 판단하는 사람이다. 친분이나 소속보다 회원 전체의 이익과 자신의 양심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결과적으로 치과계 최고의결기관인 총회의 권위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독일군이 '내적 지휘'라는 철학을 만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조직의 구성원이 자신의 양심을 포기한 채 타인의 판단에만 의존할 때 민주주의는 약해진다. 군인에게 '제복 입은 시민'이라는 개념이 있다면, 대의원은 '회원의 양심을 대신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임기 초 다음과 같이 선서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필자는 사실확인서를 제출한 대의원들께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다.
"대의원 여러분은 치협 정관을 준수하고 회원의 복리 증진과 협회의 이익을 우선하며, 대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하였다고 회원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특정 진영을 향한 것이 아니다. 치협 민주주의와 총회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