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성
前경기도치과의사회 회장
이지치과 원장
최근 국회에 발의된 의료기사법 개정안을 두고 치과계를 비롯한 의료계 전체가 그 부당성을 지적하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면허 범위를 침해하여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사안임에도, 일부 직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이를 시도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외부 세력의 이해관계로만 볼 수 있을까? 정치권과 대중의 정서를 이용한 법안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를,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도 찾아보아야 한다.
대중의 입장에서는 접근성과 경제성, 편의성이라는 달콤한 유혹이 있다. 하지만 그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직 종사자들 역시 그 유혹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국민 건강의 본질적 가치보다 단기적 이해관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결국 공공적 신뢰를 우리 스스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처방·의뢰’ 제도와 같은 구체적 사안에서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철학과 명확한 설명이 없다면, 아무리 옳은 주장이라도 공감을 얻기 어렵다.
우리는 수많은 정보와 선택지 속에서 살아간다. 그 속에서도 무엇이 더 본질적인가를 분별해야 한다. 치협은 통합돌봄, 의료기사법, 수가제도 등 다양한 현안을 마주하며, 직역의 이익뿐 아니라 국민 전체의 건강권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국가지도자에게 국정철학이 있듯, 치협에도 회무철학이 필요하다. 철학이 분명해야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세대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인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힘을 얻었지만, 그 힘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무지(ignorance)와 무관심(indifference)을 21세기의 가장 큰 위기로 지적한다. 생업과 가족 돌봄에 쫓겨 중요한 문제를 깊이 고민할 여유가 없는 이들이 많지만, 역사는 그 사정을 면해주지 않는다. 치과의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경영의 어려움, 저수가 경쟁, 인력난, 행정 부담, 개인의 건강과 가족 문제까지 우리를 지치게 한다. 그 사이에 무지와 무관심이 스며든다.
치협 총회에서 대의원들의 발언을 듣다 보면, 치협은 회원의 권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주장이 자주 들린다. 물론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가 외부로 전달될 때, 과연 그 명분으로 회원의 권익을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늘날의 사회적 정서를 감안하면, 분명한 전략적 수정이 필요하다. ‘치협은 회원의 권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주장을 넘어, 국민의 관점에서 설득력 있는 명분을 제시할 때 그 권익도 함께 보호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직역의 미래를 결정짓는 선택 앞에 서 있다. 치과계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을 직시하며, 먼저 “내 탓이요”라고 고백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현실의 책임을 외부에서 찾기보다, 구조적 개선의 실마리를 우리 자신에게서 찾아야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2016년경 치협 정책전문가과정 1기 수료생들이 함께 들었던 한 정치인의 강연에서, “정치가 직업인 나는 절망적일수록 희망을 이야기한다. 희망이 없는 곳이야말로 지옥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내는 일, 그것이 우리의 과제다.
치과의사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는 여전히 복합적이다. 비급여 진료의 권유, 높은 진료비, 과잉진료 우려 등 부정적 인식이 존재하지만, 치과의료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치과 진료 만족도는 80.9%, 치과의사에 대한 신뢰도는 69.9%에 이른다. 이는 국민이 여전히 우리를 믿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전문직이다. 그렇기에 더욱 높은 수준의 윤리와 책임의식이 요구된다. 치과계의 미래는 제도나 정책보다,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한 철학과 우선순위에서 출발한다. 현실이 어렵더라도,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는 확신을 잃지 않을 때 희망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