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성
前경기도치과의사회 회장
부천·이지치과 원장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우리 사회의 정치와 권력, 언론의 문제를 오랫동안 비판적으로 분석해온 정치평론가이다. 그는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는 도발적인 표현을 통해, 정치가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된 시대에 소비 역시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표현하는 하나의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상품의 품질이나 가격만이 아니라 생산과정, 기업의 행태, 노동환경, 인권과 환경 등 보다 넓은 가치의 기준으로 소비를 바라본다. 소비자는 물건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둘러싼 가치와 태도까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또한 SNS가 진정한 소통보다는 ‘인정욕구’와 ‘신분과시’의 공간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지적한다. 또한 SNS를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동의를 확인하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이해하고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공간으로 가꾸어야 한다는 그의 지적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크다.
이러한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현재 치협의 상황이다.
지난 5월 1일 새로운 집행부의 임기가 시작된 이후 어느덧 5개월이 지났다. 직무정지 가처분 결정 이후 이의신청 판단도 아직 내려지지 않았고, 조정절차가 진행되면서 본안 소송 일정도 12월로 예정되어 있다.
소송을 제기한 사람도, 직무가 정지된 사람도, 투표에 참여했던 회원도 적지 않은 부담을 경험하고 있다. 양측에 대한 불만과 회비 납부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반복되는 선거 관련 분쟁을 바라보며 치협의 존재 의미와 역할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까지 나오는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강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누가 누구를 향해 손가락질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 사회 전체가 ‘사일로(silo)’의 수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사일로란 원래 곡물이나 원료를 저장하는 독립된 구조물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자기 집단 안에 갇혀 다른 집단과 소통하지 않는 단절의 구조를 뜻한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커질수록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치과계도 다르지 않다. 공동체의 문제를 비판하면서 정작 그 공동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은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동체의 문제를 비판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그와 함께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돌아보는 자세도 필요하다.
필자 역시 이러한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관점을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없다. 다만 현재의 상황을 공동체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발전적인 논의를 만들어내기 위한 작은 노력을 계속하고 싶다.
치과계 언론에 글을 쓰고 개인 SNS를 통해 생각을 나누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필자 역시 또 다른 사일로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공감만을 확인하고 다른 의견을 배척한다면, 그것 역시 소통이 아니라 또 하나의 벽을 세우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적 판단은 법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며 그 결과를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우리에게는 지금의 갈등이 치과계 공동체에 무엇을 남기고 있는지 성찰할 책임이 있다. 법적으로 누가 옳은가를 판단하는 문제와 이 갈등을 통해 공동체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는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공동체를 회복하는 첫걸음은 내가 속한 사일로의 벽부터 돌아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바라보고, 나 자신의 주장에도 부족함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필자의 작은 글쓰기가 그 벽을 허무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치과계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속해 있는 공동체의 미래를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