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성
前경기도치과의사회 회장
이지치과 원장
2017년 치과계에 직선제가 본격 도입된 이후, 필자는 때로는 직접 당사자로서, 어느 경우에는 조력자로서 여러 선거에 참여해 왔다. 직선제는 치협의 민주화를 향한 중요한 이정표였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는 여전히 치과계의 숙제로 남아 있다. 이제는 그 고민들을 차분히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치과의사 중 실제로 투표권을 가진 이들의 비율은 생각보다 낮다. 선량한 회비 납부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제도적 취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과연 투표권을 그토록 폐쇄적으로 제한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회비 납부 독려와는 별개의 문제로, 더 많은 치과의사가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당한 명분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선거에는 상당한 비용이 소요된다. 특히 후보자가 납부하는 공식 기탁금의 사용처를 보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민주적 절차의 정당성에 부합하는지 의심스럽다. 기탁금 외에도 적지 않은 경제적 부담이 뒤따르는 현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동료와 선후배를 위해 봉사를 다짐한 후보자들에게 과도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면서, 당선자에게 성직자와 같은 청렴성을 기대하는 것은 자가당착에 가깝다.
셋째, 선거관리 규정의 미비는 매 선거 이후 과열 경쟁의 후유증을 발생시키는 원인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물론 규정이 아무리 완비되더라도 낙선자의 억울한 심정이 쉽게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공직선거법의 취지를 일정 부분이라도 유추 적용할 수 있었다면, 그동안 축적된 판례에 따라 선거 관련 소송의 결과를 미리 예측하고 신중하게 대응했을 것이다. 특히 공적 자금으로 법무비용을 결제하는 측과 달리, 사적 자금으로 소송을 감내하는 이들에게는 더 절박한 문제다.
넷째, 외부 소송으로 억울함을 드러내기보다는 내부 해결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 내부에 그러한 해결 시스템과 역량이 실재하는가를 자문해본다. 과거 법적 절차에 기댔던 이들조차 내부 해결을 주장한다면, 이는 자기모순일 수 있다. 제도의 보완 없이는 그 어떤 구호도 공허할 뿐이다.
다섯째, ‘대의원제’에서 ‘직선제’로의 전환은 분명 역사적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의 숙고적 판단보다는 즉흥적 여론몰이나 학연 중심의 선택이 강화되는 부작용 또한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인정보보호법 강화로 후보자들이 유권자 명단조차 알지 못한 채 선거운동을 하는 현실은, 민주적 성과와 포퓰리즘적 부작용이 공존하는 제도라는 점을 보여준다.
여섯째, 지난 선거에서는 무모할 정도의 ‘절박함의 기교’가 동원되었다. 결과적으로 당선무효 판결까지 이어지자 많은 회원들은 참담하고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판결이 지연된 이유, 소모적인 항소 결의, 억지 논리에 동조한 일부의 태도까지 모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와중에 부정선거로 당선무효 판결을 받은 측과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측에 대하여 양비론으로 이득을 챙기려는 자들은 더욱 비판받아야 한다.
일곱째, 우리는 종종 남은 임기의 애매함이나 회무 연속성의 단절, 혹은 “누가 대표이든 상관없다”는 무관심을 중립으로 포장하며 현실을 합리화한다. 그러나 외부의 시각을 의식해야만 한다. 치과의사는 단순히 치아와 구강 구조물을 치료하는 직역이 아니라, 그러한 신체 구조물을 가진, 우리와 같은 ‘그 사람’을 치료하는 전문가 직역이다.
선거를 통한 올바른 리더십의 확립에 있어서 외부의 시각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치과의사들도 민주 사회를 구성하는 동료시민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통치 조직의 중요한 부분은 반드시 선거로 구성된다. 공정한 선거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며, 치과계 선거 역시 이 원리에서 예외일 수 없다. 결국 치과계 선거의 문제는 내부의 절차를 넘어 사회적 책임과 직결되며, 전문직 집단이 민주 사회 속에서 어떤 책임과 성숙을 보여줄 것인가를 시험하는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