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재 의
대한치과의사학회 고문
前협회사편찬위원장
1939년 12월 29일 조선총독부령(제232호)으로 금 사용규칙이 강화되었다. 치과의사의 금 사용도 모두 허가를 받게 하였다.
1. 금을 사용하는 것은 모두 허가를 요한다. 종전 9금 이하의 제품 제조 및 공업용 또는 의료용으로 사용할 경우는 허가를 요하지 않았지만 이번 개정에 의하여 금사용은 전면적 허가를 요한다.
2. 고금인 금지금의 양도는 허가를 요한다. 신산금은 산금령에 의해 일반에 그 양도를 금지하고 있지만 고금인 금지금도 이후는 원칙적으로 조선은행 이외의 매도를 금지시켰다.
3. 고금인 금지금의 양수도 허가를 요한다. 금지금의 양수도 금사용의 허가를 받은 자가 아니면 양수할 수 없으므로 치과의가 사용하는 재료 금도 금사용의 허가를 얻을 수 없다면 할 수 없다.
4. 벌칙이 엄하여 졌다. 산금령 위반자에 대한 벌칙을 강화하였다. 종전 5000원 이하의 벌금을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금고 또는 1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개정하고 더욱 범죄의 목적물을 몰수하고 또는 그 값을 납부하게 하였다.
조선연합치과의사회는 금 배급문제를 협의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한 모든 물자의 부족과 함께 금 배급은 더 어려워졌다.
1940년 조선연합치과의사회 총회는 이러한 치과용 자재까지도 관심 사항이 되었다. ‘시국’이라는 말은 어렵기 때문에 통제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 문제는 경성, 청진, 부산 치과의사회의 의안을 설명한 후, 비치과의의 단속을 강화하기로 임원에 일임할 것을 가결하였다. 1941넌 3월 23일 조선연합치과의사회 각도 치과의사회 회장 회의에서 치과용품조합장 사까이 코오이찌(酒井好一)는 치과자재 수급에 대해서 총독부 당국 및 연합치과의사회의 협조에 힘입어 최선을 다할 것이라 했다. 1941년 4월 1일 이후 조선총독부에서는 생활필수물자도 통제하게 되었다. 일제는 물자부족에 허덕이게 되자 마지막 고육책을 내놓았다. 즉 1942년 3월 25일 조선총독부는 의약품 및 위생재료 생산배급 통제규칙을 공포하고 이를 실시했다. 이 배급통제는 꼭 필요하지 않은 곳에 보급되는 것을 피하고 국민 보건에 불가결 의약품이나 위생재료는 증산을 명령, 혹은 보호하도록 하였다. 귀중 약품의 소모를 방지하고 생산, 집하, 배급 등의 각 부문에 대해서도 물자통제령에 따라 원활과 완벽을 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생명을 치료하는데 제약(制約)을 주는 일로서 일제의 한계를 뜻하는 일이기도 하다. 1939년 9월 중일전쟁으로 물자가 더욱 귀해지자 일제는 대용합금 개발에 힘을 기울였고 개발된 제품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1938년 9월 24일 경성치과의학회는 치과용 합금을 공보하기 시작하여, 1939년 10월 1일 조선치과의학회와 경성치과의학회는 학문적으로 알리기까지 했다. 이러한 공보는 1940년 경성치과의학회에서도 계속되었다. 1941년 경성치과의학회는 금을 대신한 은 합금을 사용하도록 권고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