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도립병원시절 5년간 집시마을 고려인마을 봉사
몽골에선 가르쳤던 학생들과 봉고차로 시골 순회하며 진료
강 지 헌
85년 경희치대 졸업
우크라이나 몽골 말라위 선교사
요즘 아주 핫한 관광지인 몽골과 아프리카 대륙의 말라위에는 ‘에바다’라는 이름을 가진 치과가 있습니다. 물론 두 나라의 언어체계가 다르므로 약간의 차이는 있어서 몽골은 ‘에바다’, 말라위는 ‘에파타’라 합니다. 몽골과 말라위 두나라 간 서로의 연결점을 찾기는 매우 어려운 배경입니다.
지난 6월에 몽골 에바다치과 설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에 다녀왔습니다. 몽골의 제자들이 에바다치과를 잘 운영하고 설립이념을 계승하는 모습을 보고 행복했습니다. 이 두 에바다 치과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저는 2000년에 몽골에 있는 에바다치과의 원장으로 와 달라는 요청을 받고 몽골로 일하는 장소를 옮기게 됩니다. 그 전에는 지금 한창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5년동안 일을 하였습니다. 우크라아나 서부의 한 지역의 도립병원 치과에서 일을 하며 지역 주민뿐 아니라 주변의 집시마을로도 진료봉사를 다니며 낮시간이 매우 긴 여름에는 멀리 떨어진 고려인 마을을 찾아 다니며 진료봉사를 하였습니다. 고려인 마을에서 만나는 순수한 고려인 어르신들의 친절한 환대, 정성이 가득한 고려인 음식들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5년여를 지내고 미지의 세계인 몽골로부터 부르심이 있으니 그에 따르기로 하고 몽골로 거주지를 옮기게 됩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도착한 몽골은 그나마 춥다고 하는 우크라이나에서도 이전에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강렬한 추위로 저를 맞아 주었습니다. 숨을 좀 돌리고 찾아간 ‘몽골에바다치과(하나의 단어로 소개하고자 하여 띄어 쓰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사용할 말라위에파다치과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합니다)’는 그 당시 국립사범대학의 학생 기숙사의 방을 임대하여 치과로 개조한 상황이었습니다. 몇 대의 치과장비가 있었고 그래도 그 당시 몽골에서는 가장 시설 좋은 치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몽골에바다치과의 역사를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몽골에바다치과는 1993년에 몽골 국립치과대학에서 1년간 강의를 하신 연세대학출신 한상환 선생님께서 1994년에 설립하시고 그 이후 몽골현지선생님, 제가 일하기 직전에는 한국 간호사 선생님께서 원장으로 봉직을 하셨던 치과입니다. 이런 여러분들의 헌신으로 몽골에바다치과는 현지에서 인정받는 치과였습니다. 가서 처음으로 한 일은 현지 치과선생님들과 함께 공부를 한 것이었는데, 영어를 할 수 있는 분이 한 분이 있어서 통역을 통해 대화를 하였고 그 선생님이 못 오는 날은 저의 짧은 러시아어로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몽골치과의사들은 우리가 영어로 책을 보듯이 러시아어로 된 교과서로 공부를 하여서 대부분 러시아어가 가능했습니다.
몇 달을 지내다 보니 아무래도 장비를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에서 후원을 받아 새로운 치과장비들을 갖추었고 국내의 D사는 여러 첨단 장비들을 후원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장비를 개선하고 좀 더 나은 장소로 이전을 하며 몽골에바다치과는 성장을 하였고 그를 통해 몽골의 치과계에 일정 부분 기여를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중점을 두고 하였던 일은 몽골 치과대학생들과 진료 봉사를 다니면서 그들을 가르치고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지방으로 진료봉사를 가니 너도나도 참여를 원해서 봉고차량 한 대에 수용가능한 인원만 함께 할 수 있어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좀 더 많은 학생들이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관계를 바탕으로 2014년에 몽골에바다치과를 잘 이양할 수 있었음에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몽골에바다치과’를 이양하고 ‘말라위에파타치과’를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는 다음 회에 계속 이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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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시골에서 진료봉사 중인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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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에서 몽골 치대생들과 봉고차로 시골을 순차적으로 돌며 봉사하던 시절의 필자 (윗줄 오른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