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플라토닉사랑의 전설인 청마와 정운의 사랑과 매치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이 노래의 원곡은 1978년 태원(본명 박태원)이 불렀던 <너의 사랑>이다. 통영에 가면 중앙시장에 청마거리가 있다. 동피랑으로 가는 ‘통영 이야~길’이 그곳이다. 유부남 청마 유치환과 청상과부 이영도의 연모의 마음이 수놓아진 ‘사랑의 미로’다. 청마는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이라고 읊었다. 유치환이 이영도에게 보낸 사랑 작업 연애시다.
그토록 다짐을 하건만 사랑을 알 수 없어요/ 사랑으로 눈먼 가슴은 진실 하나에 울지요/ 그대 작은 가슴에 심어준 사랑이여/ 상처를 주지 마오 영원히/ 끝도 시작도 없이 아득한 사랑의 미로여// 흐르는 눈물은 없어도 가슴은 젖어버리고/ 두려움에 떨리는 것은 사랑의 기쁨인가요/ 그대 작은 가슴에 심어준 사랑이여/ 상처를 주지 마오 영원히/ 끝도 시작도 없이 아득한 사랑의 미로여// 때로는 쓰라린 이별도 쓸쓸히 맞이하면서/ 그리움만 태우는 것이 사랑의 진실인가요/ 그대 작은 가슴에 심 어준 사랑이여/ 상처를 주지 마오 영원히/ 끝도 시작도 없이 아득한 사랑의 미로여. (가사 전문)
유부남 청마(유치환의 호)는 과부 영도에게 첫눈에 반해 20년간 5천여 통의 시같은 연서(戀書, 연애편지)를 건넨다. 1946년 38세의 청마(1908년 충무 출생)는 통영여중 국어교사로 부임했으며, 이영도(1916년 청도 출생)는 같은 학교 가사교사로 21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슬하에 딸 하나를 둔 29세의 과부였다. 이러한 청마의 연정에 정운(이영도의 호)은 안으로는 뜨겁게 겉으로는 아닌 척 속내를 다스리며,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서 있는데/손 한 번 흔들지 못하고/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로 답을 한다. 노래 <사랑의 미로>와 잘 어울리는 시다.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담긴 거리를 청마거리로 부른다. 둘은 남들 눈을 의식해 저만치 떨어져서 걸어가는 은근한 데이트로 서로를 향한 타는 속을 달랬다. 동양의 나폴리, 청푸른 물결이 미륵산(458.4m, 산봉우리에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영의 봉수대 터가 있음) 그늘을 품고 있는 통영 바닷가가 환하게 내려다뵈는 꼬부랑 언덕길.
1967년 2월 13일 청마는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이후 이영도는 청마가 보낸 5천여 통의 편지 중 200여 통을 추려서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시집을 낸 후 1976년에 사망했고, 둘의 사랑은 현대판 플라토닉 사랑의 전설로 남았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