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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06/12  치학신문
여행가기 전 알면 좋을 남미 여행 정보 <6>
남미 혁명의 역사, 체게바라와 아옌데

“아옌데는 의사였지만, 사회를 고치는 큰 의사를 꿈꾸었다”

 

아옌대 동상 앞에서

 

 남미 대륙 대부분이 스페인의 식민지였을 때, 스페인을 먹여 살린 것은 신대륙에서 가지고 간 금과 은이었습니다. 그 부유한 스페인의 요구에 맞는 상품들을 팔기 위해서 영국에서 노력하다가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초반에는 많은 잉카 원주민들(인디오)이 광부로 힘들게 일하다가 죽어갔고, 인력이 모자라자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데려와서 노동을 시켰습니다. 광부들의 수명이 2년을 넘기기 어려웠다고 하여, 나중에는 광산의 주인들이 노동력을 잃지 않도록 하기위해서 정해진 시간마다 지상으로 나와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 법을 만들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볼리비아는 1825년 독립 이후 156년간 무려 193번의 쿠데타와 혁명을 겪었습니다. 다른 중남미 모든 국가도 마찬가지로 불안한 정치 상황과 끔찍한 민중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체게바라에 대해서 필자는 그저 이름만 알았을 뿐이었고, 자세히 알지 못한 채로 남미여행을 떠났습니다. 도시 곳곳에 그의 동상이 서있고, 아르헨티나에서는 존경하는 인물 1, 2위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가 의사 출신 혁명가라고 하니, 더 반가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1928년 6월 14일 아르헨티나에서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5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의과대학에서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했고, 평소 여행광이던 그는 공부를 끝내고 중남미 대륙을 탐사하는 본격적인 여행길에 나섰는데, 이게 그만 그의 운명을 바꿔놓고 말았습니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대륙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면서 민중의 비참한 삶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54년 민중을 위한 개혁을 단행한 콰테말라의 정권이 미국의 사주와 지원을 받은 용병대의 쿠데타로 무너지는 걸 목격하면서 제국주의의 횡포에 분노했고, 그 편에서 함께 싸우다가 곧 멕시코로 탈출했는데, 바로 여기에서 카스트로를 만났습니다. 둘은 금방 의기투합했으며, 59년 쿠바 혁명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상공부 장관, 중앙은행 총재, 외교부 장관 등을 거치며 쿠바가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뉴욕에서 유엔 연설도 하고, 중국과 북한까지 와서 모택동과 김일성과 만나 외교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화려하고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그는 어려운 민중을 위해 콩고에 게릴라군으로 다시 나갔고, 66년에는 볼리비아로 침투하였다가, 붙잡혀서 총살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체게바라와 면담 이후 ‘금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문학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합니다. 여행 내내 들고 다니면서 ‘나의 형, 체게바라’라는 책을 몇 번을 읽었는데, 체게바라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시민군들은 스스로를 위해서 싸운다고 생각을 했는데, 스페인의 군인들은 국왕을 위해서 내가 왜 피흘려 싸워야 할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전쟁에 다녀 온 군인들이, 스페인의 국왕을 나폴레옹의 동생으로 앉히는 것을 보고서, 1810년 칠레의 독립을 선언하고, 스페인과의 독립전쟁을 통해서 1818년 독립을 쟁취하였습니다. 그러나 칠레 정치의 불안정과 민생고는 계속 극심하였고, 1908년생인 아옌데는 의사였지만, 사회를 고치는 큰 의사를 꿈꾸었고, 1970년 선거를 통해 남미 최초 좌파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개혁정책으로 기간산업 국유화, 농지개혁을 통한 농지 분배를 했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1973년 피노체트가 이끈 쿠데타군은 폭격기까지 동원하여 아옌데를 몰아내려 했으나, 그는 도망가지 않고, 대통령궁에 남아서 싸우다가 40여명의 지지자와 함께 죽었습니다. 피노체트는 수십 년 독재를 하다가 얼마 전 죽었고, 죽기 전에 재판에 회부되었다고 하는데, 현재 대통령궁 앞에는 아옌데의 동상이 서있으니, 역사의 승자가 누구인지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조남억

 

 연세조아치과 원장

 

 

 

 

 

 

 

 

와이나 포토시 산 앞에 위치한 광부들의 무덤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에 서있는 체게바라 동상

 

안데스 산맥을 넘는 고개길에 설치된 체게바라 오토바이

 

칠레 대통령궁앞을 지키는 아옌데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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