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시대 치과는 따라가기 앞서 길을 만드는 주체 돼야
임 지 준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 회장
돌봄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혈압, 혈당, 약, 낙상부터 떠올린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가장 자주 쓰는 기관 중 하나가 입이다. 먹고, 씹고, 삼키고, 말하고, 웃고,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특히 노인과 장애인에게 구강건강은 단순히 치아 몇 개의 문제가 아니다. 잘 먹는 문제이자 영양의 문제이고, 구강위생은 흡인성 폐렴과 연결되며 구강건강 저하와 인지기능 저하의 연관성도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돌봄의 시작과 끝에는 생각보다 자주 ‘입’이 있다.
그래서 구강돌봄은 ‘잘 드시게 해드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구강위생을 유지하고, 통증을 줄이고, 씹고 삼키는 기능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입으로 먹고 말하며 살아가도록 돕는 일이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이상하다. 요즘 의료와 돌봄의 화두는 재택의료와 방문진료, 통합돌봄이다. 집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 어르신에게 의료와 요양, 돌봄이 찾아가는 방향은 분명 맞다. 하지만 치과는 아직 그 이전 단계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치과에 오기 가장 어려운 중증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요양원, 장애학생이 생활하는 특수학교조차 치과진료가 충분히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집으로 찾아가는 치과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한 건물 안에 치과가 꼭 필요한 어르신 수십 명이 모여 있는 요양원에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조금 이상한 순서다.
재택 방문진료는 반드시 가야 할 방향이다. 다만 치과는 현실적인 제약이 크다. 치과의사는 청진기 하나만 들고 몸 하나만 갈 수가 없다. 이동식 장비와 기구, 재료, 감염관리 물품을 챙겨야 하고 좁은 집안에서 환자의 자세를 잡고 진료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이동해가며 오전 내내 두세 명을 보고 낮은 관리비용만 받는 구조라면 지속 가능한 제도가 되기 어렵다.
장기요양시설의 계약의사 제도에 치과가 포함돼 있지만 실제 활용은 매우 제한적이다. 치과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의과의 틀을 따라가다 보니 제도가 있어도 현장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참여할수록 힘든 구조라면 결국 몇몇 사람의 선의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선의만으로 굴러가는 제도는 오래가지 못한다.
치과 방문진료는 단순한 ‘관리’가 아니다. 스케일링, 의치 조정과 수리, 우식 처치, 발치, 통증 조절 등 실제 의료행위가 발생한다. 따라서 실제 시행한 의료행위에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고, 환자의 중증도와 장애 정도, 진료환경을 고려한 가산이 붙는 구조가 필요하다. 의과를 따라가는 제도가 아니라 치과의 특성에 맞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가장 어려운 사람부터, 가장 효과적인 곳부터다. 바로 요양원과 특수학교 같은 시설이다.
시설에는 치과 접근성이 낮고 구강질환 위험이 높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 한 번의 이동으로 여러 명을 검진하고 예방관리하며 필요한 치료까지 연결할 수 있다. 재택이 한 사람을 찾아가는 돌봄이라면, 시설은 한 번의 이동으로 가장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돌봄이다. 가장 어려운 곳이면서 역설적으로 가장 ‘가성비’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시설 방문치과진료가 정착되면 이동장비, 감염관리, 진료범위, 수가, 치과위생사의 역할 등 방문치과의 기본 인프라가 만들어진다. 그 경험과 체계를 지역사회로 확장하면 재가 어르신과 장애인의 방문치과진료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 시설과 재택은 경쟁 관계가 아니다. 시설은 재택으로 가기 위한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치과계도 이제 돌봄정책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뒤늦게 한자리를 부탁하는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먼저 문제를 정의하고, 모델을 만들고, 필요한 제도를 제안해야 한다. 치과의 미래가 꼭 치과의자 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요양시설에서 자주 생기는 의치 분실 문제도 그렇다. 의치에 이름을 새기는 작은 실천만으로도 어르신의 식사와 일상을 지킬 수 있다. 기술적 안전성과 개인정보 보호가 마련된다면 NFC 등을 활용해 보호자 연락정보나 필요한 돌봄정보와 연결할 수도 있다. 작은 치과기술 하나가 치매환자의 일상을 지키는 돌봄기술이 될 수 있다.
필자가 ‘K-DOLBOM 2035’를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은 AI와 반도체만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가 노인과 장애인의 의료·요양·돌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국가의 지속가능성도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우리가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돌봄은 비용만 드는 분야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과 산업이 될 수 있다.
2026년은 통합돌봄이 본격 시행되는 해다. 치과계의 출발은 조금 늦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늦었다고 또 남이 만든 길만 따라갈 필요는 없다.
초고령사회에서 치과의 역할은 치아를 치료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잘 먹게 하고, 안전하게 삼키게 하고, 흡인성 폐렴 위험을 낮추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입으로 먹고 말하며 살아가게 하는 것까지가 앞으로의 치과의료다.
가장 어려운 사람부터, 가장 효과적인 곳부터.
요양원과 특수학교의 문을 제대로 여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그리고 그 길은 결국 집에서 살아가는 어르신과 장애인에게까지 이어질 것이다.
돌봄의 시대, 이제 치과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길을 만드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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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26일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와 대한치과기공사협회가 진행한 폐렴 예방을 위한 찾아가는 의치 케어 서비스인 ‘깨끗한 틀니, 건강한 숨결’ 행사에서 진료를 하고있는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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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지난 9월21일 오전 국회에서 이만희복지위원장을 만나 만65세 이상 구강검진 사각지대 개선을 논의 한 후(왼쪽사진 왼쪽첫번째) 오후엔 우상호 강원도지사와 통합돌봄 발전방안을 논의했다.(오른쪽사진 왼쪽에서 3번째) |